가까운 친구 Y는 하루 걸러 한 번 ‘브이’ 이야기를 꺼낸다. 브이는 Y 부모님이 기르는 개의 이름이다. 2013년 입양해 10년 동안 정이 들었다. 종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쫑긋 선 귀, 긴 코에 다리가 쭉 뻗어 진돗개나 사냥개 혈통이려니 한다. 노란 몸 군데군데 흰 털이 자란 모습도 추정에 힘을 보탠다. 잘 생겨 도베르만 같다가도, 끝이 처진 슬픈 눈 탓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브이를 두고 Y 가족이 신경쓰는 건 혈통이 아니라 버릇이다. 몇 년 전 자취를 시작한 Y는 명절이나 돼야 브이의 하루를 긴 시간 본다. 브이가 ‘왈왈’ 짖고 날뛴 뒤에야 그 앞에서 해선 안 될 행동을 깨닫는다. 예를 들어 브이는 대화 중 한 사람이 다른 이 몸에 손을 올릴 때 참지 못한다. 만지는 사람을 물어뜯으려는 듯 달려든다. 아버지가 어머니 어깨나 허벅지를 다정히 만지는 게 왜 문제인가. Y 가족은 차츰 브이가 손대는 행동 자체나 손 닿는 신체 부위 말고, 건드리는 속도에 민감하단 걸 알게 됐다.
Y는 TV 프로그램 <무한도전> 속 일화를 꺼냈다. ‘토토가’ 섭외차 유재석이 이효리를 찾아간 날, 그녀 집 개 모카가 춤추는 유재석의 다리를 물었다. 방송 자막은 ‘모카는 까부는 유재석이 못마땅했다’는 내용이었지만, 이효리가 후일 개인 블로그에서 전한 배경은 달랐다. 모카는 폭력적 남성과 살던 한 여성이 동물 보호소에 맡긴 아이로, “누가 큰소리로 말하거나 큰 몸동작을 하거나 엄마에게 손을 대면 예민해져 공격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브이의 예민함도 같은 이유일까. 연유를 묻는 대신 Y는 브이 앞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방문객에겐 미리 ‘브이가 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쁜 마음은 아니라고 애정어린 경고를 날린다.
이따금 기사 댓글을 볼 때면 Y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사회 곳곳을 취재한 기록에 독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공감보다는 분노 또는 증오와 가깝다. 소년범 처벌 강화를 주문할 뿐, 이들이 어떻게 학대당하고 버림받았는지, 왜 범행까지 나아갔을지 짐작하는 시도는 찾기 어렵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관련 기사 반응도 대개 비슷하다. 애도보다 지겹다는 말이, 당사자의 슬픔보다는 정치적 이용에 대한 근심이 앞선다. 유족이 혹여 날선 말이라도 내뱉으면 한 줌 동정마저 짜증과 손가락질로 전환된다. 타인의 상처에 공감 못하는 것 이전에 공감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읽힌다.
Y가 보여준 또 다른 영상엔 동물보호센터 직원이 내민 손을 보고 몸을 기이하게 꺾는 강아지가 나왔다. 평생 학대받다 보니 쓰다듬는 손마저 주먹질의 전조로 오해한 듯했다. 영상의 조회수 백여만, 댓글은 공감 일색이었다. 말 못하는 동물엔 공감이 쉬운 반면, 이것저것 본인 피해에 악다구니하는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걸까.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애석하게도 (우리는) 동료들에게는 보여주기 꺼려지는 과도한 친절함을 아이들에게는 쉽게 베푼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어린애 같은 면에 조금 더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면 더욱 멋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예전엔 제도니 시스템이니 하는 거창한 것이 변해야 세상이 나아진다고 믿었지만, 요즘의 나는 이런 문장을 지지한다.
가수 이효리가 반려견 모카를 끌어안은 모습. 모카는 지난 7월12일 세상을 떠났다. SNS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