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알림
... 열두 작가를 묶는 공통분모는 여기까지입니다. ‘구성을 고민한다’는 점이 같을 뿐 이들은 무엇이 구성에서 중요하냐는 판단부터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방법론까지 세세한 쟁점 하나하나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팩트스토리 대표 고나무 작가는 캐릭터와 장면을, 장강명 작가는 기승전결의 전통적 서사 구조를 강조합니다. 잭 하트가 《논픽션 쓰기》(2015)에서 내러티브의 핵심으로 ‘발단-상승-위기-절정-하강’ 구조의 포물선을 언급한 것과 결이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 《한겨레》 이문영 기자는 “기법으로서의 내러티브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의 책 《노랑의 미로》(2020)는 통상적 기삿거리와 작법에서 벗어날지라도 등장인물 개개인에게 ‘말할 공간’을 주는 데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때로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는” 그의 문장은, 실은 독자들이 “멈춰 서서 생각해보도록” 부러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조갑제 작가는 또 달라서, “작법보다는 영향력에 주목해야 한다”며 “특종”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사실의 함량 차도 눈에 띕니다. ‘진짜 이야기’라고 할 때 ‘진짜’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논점입니다. 김동진 작가는 “논픽션은 70%의 팩트에 30%의 상상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1923년 경성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본 경찰과의 총격전 당시 김상옥 의사의 내면 풍경을 묘사하지만, 정작 김 의사는 격전 중 사망해 조사 기록을 남긴 것이 없습니다. 반면 김당 작가는 취재로 밝힌 사실 외의 것은 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첩보의 세계를 다룬 저술 특성상 법정 분쟁 등을 대비한 것이라고 짐작합니다만, 논픽션이 ‘역사적 기록’이라는 작가 본인의 신념이 일단 강해 보입니다. 그는 취재 대상을 꼭 실명으로 적고, 자동차 번호, 호텔 방 넘버 같은 어찌 보면 불필요한 디테일까지 정확히 씁니다. 이범준 작가는 취재 기간, 참고한 자료의 분량, 인터뷰한 사람의 숫자와 녹음 시간까지 공개합니다.
이 차이를 저는 각자의 소재나 추구하는 바가 다른 탓으로 짐작합니다. 예컨대 김동진 작가의 재료는 ‘닫힌 과거’입니다. 사안의 실체는 이미 존재하며, 작가의 역할은 이를 ‘발견’해 현재의 독자들이 전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전달하는 것입니다. 인터뷰 내내 그가 “인터프리터(통역사·해설자)”를 자처한 것은 이 같은 생각의 발로 아니었을까요. 한편 “특종”을 강조하는 조갑제 기자에게 어떤 사안은 ‘발굴’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문영 기자라면 ‘재발견’을 주장할 것 같습니다. 엄연히 존재함에도 지배적인 목소리에 밀려 묻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누군가는 그것을 굳이 찾아내려 애써야 한다고 그가 믿기 때문입니다. “편을 들수록 꼼꼼해야 한다”는 희정 작가의 말은 또 어떻습니까. 이들의 다름은 ‘사실’과 ‘진실’이 맺는 미묘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진실은 사실의 종합인가요, 사실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먼 존재인가요. 이 책은 선뜻 답하기 어려운 이 물음에 대한 열두 번의 대화이기도 합니다.
- <논픽션 글쓰기 전설들>, 프롤로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