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계엄군이 4일 국회 진입을 시도하자 시민들이 서로 손을 잡고 저지하고 있다. 2024.12.04 경향신문 한수빈 기자
3일 저녁 나는 여의도 국회 인근 음식집에 있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였다. 대화 주제는 감사원장·검사 탄핵, 채상병·김건희 특검 등 정치 현안부터 의원 본인의 인생 철학까지 다양했다. 때로 비판이 오갔지만 대체로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나이 지긋한 여성 점원은 의원에게 “팬”이라며 “정치를 잘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10시 23분 가게 TV에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담화 화면이 떴다. 비상계엄 선언이었다.
“당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나.” 의원은 전혀 몰랐다며 분노했고, 곧 긴급 회의가 열린다며 자리를 떴다. 점원은 화장실에 가는 나를 복도까지 따라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가족이 1980년 광주를 겪었다며 몸을 떨었다. 나는 “지금은 그때와 다를 것”이라고 답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급히 찾은 국회 정문은 차단 상태였다. ‘탱크가 간다’는 등 두려움 섞인 소문이 핸드폰을 울렸다. 계엄 해제까지는 대략 6시간이 흘렀다.
계엄 해제 전후로 윤 대통령은 웃음거리가 됐다. 어느 ‘짤’에서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내가 어제 2차 끝나고 뭘 선포했다고?” 질문한다. 김은혜 전 홍보수석이 “‘계엄 선포’가 아니라 ‘개헌 선포’”라고 말하는 짤도 유행이다. 대통령의 음주 풍문과 ‘바이든-날리면’ 해명을 연상시킨다. 상당수 국민이 평소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이들이 상징한다면 과언일까.
걱정스런 일도 지나고 나면 무게감이 줄어드는 법이다. 우려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에는 12·12 군사반란에 참여했던 소위 ‘1공수’가 투입됐다. 계엄군은 총과 야간 투시경을 소지한 완전 무장 상태로 시민들과 대치했다. 무사한 오늘을 두고 어떤 이는 계엄 시나리오마저 서투른 정권의 무능을, 누군가는 현장 군인마저 ‘이건 아니다’ 자체 판단하게 만든 민주화 역사의 교훈을 거론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돌발이나 실수 하나 벌어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결과 아닌가.
AP통신, 뉴욕타임스, 아사히신문은 물론 중동 전쟁 보도에 바쁜 알자지라까지 한국 상황을 앞다퉈 보도하는 통에 국제 망신이란 생각도 불현듯 했다. 돌아보니 망신 정도면 다행이다 싶다. 세계 역사는 우연이 큰 비극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로 가득하고, 이번과 같은 군의 ‘조용한 퇴각’은 초현실적인 성취에 가깝다. 지나갔으니 ‘땡’이라기엔 위험한 시간이었다. 마냥 웃을 일도, 민망할 일도 아니다.
정색하고 나는 알아야겠다. 대통령은 언제, 왜 이런 무서운 결정을 내렸나. 누구와 상의했나. 국무회의에는 누가 참석했고, 누가 어떤 근거로 동의·반대했나. 계엄군 운용 계획은 누가 세웠나. 현장 지침은 어땠나. 계엄 해제까지 몇 시간 대통령은 뭘 했나. 이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대한민국 시스템을 다시금 신뢰하기 어려울 것 같다. 몸을 떠는 누군가에게 멀끔히 “괜찮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대통령실 이전, 의대 증원 같은 그 동안의 결정도 몽땅 의심스럽다.
결혼한 지 이제 막 세 달째인 아내는 그날 밤새 끙끙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비상계엄 위험이 상존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