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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의숲 Apr 17. 2021

엉킨 선 게워내기

그림에 기억이 3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름의 시즌제를 도입했다. 버릇을 들이기로 작심할 땐 분명 제대로 달려드는 편이다. 일정 기간 하고 끝낼일이면 그 기간만 집중하고 볼 일이지만, 습관처럼 거의 평생을 둔 장기적인 작심은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다. 상세한 계획은 없더라도 기간을 쪼개 시간과 분량을 정한다.


이를테면, 14개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한 시즌으로 하여, 이번에 드로잉 시즌 2를 맞이했다. 그림을 그리고 기록해보자는 생각으로 소셜미디어에 그림을 올리는 중이다. 계정을 관리할 때 사람들이 늘 말하는 전체적인 통일감, 뚜렷한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나에겐 아직 어려웠다. 수년간 그림을 그려온 사람들은 나름의 스타일을 갖기 마련이지만, 그릴 수 있는 스타일은 여럿인데 반해 아직 이렇다 할 나만의 스타일을 찾진 못했다.


여러 드로잉 툴을 사용하는데, 각종 디지털 드로잉 소프트웨어나 앱을 시도했고, 새로운 핸드 드로잉 재료들을 사용해 이전에는 그려보지 않은 텍스처와 색다른 색감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까진 어떤 스타일 안에 나를 가둬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어떤 독창적인 그림을 뽑아낼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드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어디서 본 듯한 스타일을 단편일률적으로 고수하고 싶진 않다. 그건 아직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 마다 일정량 '자신이 뽑아내야 하는 선의 양'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라면 글을 쓸 때 쓰이는 선의 양일 테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리는 선의 양,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음표가 그려지는 양이나 악기 위로 움직이는 손의 동선의 양,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습득하는 정보가 텍스트로 옮겨질 때 쓰이는 선의 양. 그 선의 양과 규모는 선의 종류가 너무나 달라 동등하게 비교하긴 어렵다. 분명한 건 선의 길이, 양은 제각각이더라도 그 사람 안에 있는 ‘다 쓰고 나야만 나올 수 있는 자신의 컬러’ 같은 게 있다는 거다. 


처음에는 그 선의 모양이 제각각이고, 온갖 잡색들이 쏟아져 나와서 나중에 그 선들을 모아두면 정신 사납고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모르겠고,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더라도. 그 과정을 거치고 나야만 그제야 ‘그 사람의 것’ 이라 말할 수 있는 ‘자신의 색’이 나와 그 만의 작품 세계를 보일 수 있는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그려내는 선들이나 쓰고 있는 텍스트가 어설프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도 끊임없이 쓰고 그려낼 작정이다. 어제는 그림을 그리다가 하루에 끝내야 할 양을 다 채우지 못했다. 그림이 막히니 손을 풀어볼 요량으로 선 연습도 하고, 그다음에 그릴 그림의 러프한 모양새를 몇 장 잡아 스케치도 했다. 다른 종이 위로 순회공연을 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어떤 형태가 있었는데 그게 잘 표현 되질 않았다.


기지개를 켜고 부엌으로 가 물을 붓고, 쓰던 유리잔을 씻어 옆에 두고, 그 안으로 찻잎을 덜어 넣었다.

펄펄 끓는 물을 따라낼 때, 주전자가 부르르 떨 때나, 주전자 코에서 올라오는 김, 찻잔에서 조금씩 번지는 물 색, 통통하게 올라오는 찻잎의 모양을 구경하는 순간을 정말 좋아한다. 그 모습을 구경하다 보면 잠시 내가 아까 무슨 고민을 했는지 잊는다. 아직 차는 뜨거우니 베란다로 넘어가 해를 쐬고 바깥 구경을 한다. 어제는 황사가 일어 어플에 미세먼지 최악이 떴다. 그래서인지 비가 온 다음 날인데도 하늘이 뿌옇다.


바깥을 내다보면서 어쨌건 나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심하고 그리기로 작정을 했으니 정말 오래도록 쉼없이 내 안에 뭉친 선들이 모두 쏟아져 나올 때까지 그림을 그리겠다고. 고양이가 그루밍을 하다가 뭉친 털을 토해내는 것처럼, 나는 계속해서 아침이나 낮이나 밤이나 가릴 것 없이 내가 해야 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것이고. 푸릇푸릇하고 몸에 좋은 캣잎을 먹다가 내 속에 뭉쳐있던 털들을 모두 토해낼 거다. 


더 이상 그리는 게 두렵지 않다. 못생기게 그려진 그림도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고, 정이 간다. 나는 스타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오는 그림들이 내가 아는 다른 그림들과 다름에 감사할 때도 있다. 스타일이란 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데 올 수도 있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전혀 다른 대비를 가져오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색을 채워 넣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오리지낼리티는 지금 내가 쏟아내는 선 그 자체 있을 수 있다.


선이 고르지 않아서 속이 상하고, 좀 더 바른 선을 그리고 싶어 욕심이 날 수 있겠지만, 각자가 갖고 있는 조금은 강한 선. 조금은 강약을 조절하지 못하고 갈길을 헤매는 힘없는 선. 너무 뭉치고 투박한 선 그 자체가 그림의 빛깔을 다르게 하고, 느낌을 다르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가 오리지낼리티가 아닌가 생각한다. 똑같은 장면을 보고 그림을 그려도 그려내는 모습이 모두가 다르니 나에게 나만의 스타일이 전혀 없다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어떤 스타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하지 못하는 것에 낙담할 필요도 없다. 아직은 내가 어떤 스타일을 뽑아낼 수 있을지 계속해서 그려나갈 뿐이다. 십여 년 전에 중저음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가수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그 가수의 목소리는 정말 다르게 변했다. 왜냐면 그 가수가 본인의 마음속에 있었던 선을 계속 뽑아냈는데, 그 음악을 대하는 가치관이나 생각, 나름의 철학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 안에 뭉쳐있던 어떤 선들을 모두 뽑아내고 나니 자신이 정말 가고 싶은 음악의 방향이 보였던 게 아닐까.


나는 그의 앨범들을 들으며 예전의 목소리가 아쉬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지금 그가 부르는 그 노래가 얼마나 귀하고 값진지 알게 된다. 그래서 과거의 그의 앨범을 들으면 전혀 다른 사람의 앨범을 듣는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 긴긴 시간 고유의 목소리를 득음하기 위해서 얼마나 자신의 목소리를 갈고닦고, 시간을 가졌을지,  그 사람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물론 모두가 좋아하는 어떤 스타일에 머물러 그 그림을 추구하더라도, 결국엔 그 머물러 있는 스타일이라는 것조차 내가 계속 뽑아 나가는 어떤 과도기그림의 하나일 뿐일거다. 세상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물이 늘 맑고 아름다울 순 없다. 그 물은 계속 흘러내려가야 하고, 계속해서 그려져야 한다. 설령 그 선이 길게 그려지고 돌고 돌아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오더라도. 새로 그려져야 할 선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그려져야 한다.


오늘도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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