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 Apr 27. 2021

욕심이란 씽크홀

욕심 죽이기

욕심이 많다는 게 어떤 말일까.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몫보다 많은 걸 원하는 게 욕심이다. 분수를 모르는 것. 그런데 그 분수란게 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욕심으로 선 긋게 만들까. 나는 당장 100을 해내고 싶은데, 넌 아직 3-5밖에 안된다는 자각을 하게 되면, 정말이지 스스로 견디질 못하겠다. 남들에게 질투를 잘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분명 내가 도달하고픈 뛰어난 능력의 경지는 존재한다. 내가 도달하고 싶은 수준의 능력, 내 눈에 가장 내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갖춘 사람은 아직 보질 못했다. 그게 내 목표고, 내가 도달하고픈 비전이다. 내가 얻고 싶은 능력에 대한 집착은 대단해서인지 지금 내가 원하는 능력을 못 갖는 상태를 납득하질 못한다. 어렸을 적엔 몰랐지만, 이런 게 오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믿고 남들이 그 능력을 갖추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을 들인 시간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거기까진 생각이 다다르질 못했다.


계획을 세울 때 난관은 욕심을 죽이는 일이다.

딱 어제보다 1보만 전진하면 된다고 명상을 통해서 끝없이 마음을 비운다. 멍청하게 머리로 이해를 못할 땐 몸을 혹사시키고 어느 순간 몸이 망가진 걸 깨닫고 상태를 회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욕심을 다스리는데 가장 좋은 게 '달리기'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욕심이 마라톤 선수더라도 내가 당장 5km도 20분으로 달리기 어렵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딱 어제보다 1보 더 거리를 늘리고, 어제보다 아주 조금 더 시간을 의식하면서 지금의 내 마음을 다스린다. 재능이나 타고남도 숙련의 기간이 필요하듯, 스스로가 현재의 내가 '평범한 인간'임을 납득시키며 스스로 겸허해지길 바란다. 과욕, 강박은 독이다. 내가 원하는 능력을 갖춘 상태에 도달하고 싶은 것도 결국 내가 이루며 살고 싶은 그 행복한 순간을 누리기 위해서이지. 과거의 내가 나에게 했듯, 나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 그건 내가 누리고 싶은 성공적인 삶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게 오늘의 평범한 나는 욕심을 잘게 쪼개서 하루하루 쓰일 적당한 크기의 다짐으로 바꾼다.


하루 한 보 더 나아가고 필요하다는 직감이 들 때마다 짧은 유예기간을 만든다. 1보, 2보, 3보 전진에서 3 보전진 기간 유예기간 이삼일, 그리고 다시 4보, 5보, 이렇게 전진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딘가에 만들어 놓은 발전시켜 둔 구간을 만나게 된다. 그럼 그 스톱 구간을 없앤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 전보다 5보 전진해야 할 구간이 어느 순간 10보 전진한 구간이 된다. 이 순간을 빠르게 단축시키려고 욕심을 부렸다면 지금 이 10보를 견딜 때의 힘든 순간들을 감당하지 못했을 거다.


매일 아침 달릴 때마다 스톱 구간을 조금씩 뒤로 미루면서 거리를 확보해 나가다가 스톱 구간을 넷에서 셋, 둘을 줄였다. 스톱 구간을 줄이는 순간마저도 그냥 컨티션이 좋을 때 내가 터닝 구간까지 논스톱해버리고 싶다는 욕심이 솟구쳤다. 하프도 달리는데 겨우 5km에 스톱 구간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재개하는 시기이고, 하루 이틀 달리고 말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달려버리고 말아야지 하면서도 몸이 그걸 거부하는 걸 느꼈다. 때가 아니란 걸 알았다.


어젠 수면시간이 네 시간으로 목표 수면시간에 미달했다. 주말에 푹 쉬지 않고 몸을 굴려서 몸이 잔뜩 피곤한 상태로 월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눈은 너무 무거웠다. 이불을 정리하고 환기를 시키고, 영양제를 먹고, 명상을 하고, 모닝 저널을 작성할 때 까지도 오늘 뭔가 해야겠다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어폰을 끼고 모자를 쓰고 현관으로 내려가 몸을 스트레칭을 하고 횡단보도를 기다렸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오늘 터닝 지점까지 완주해야겠다.'


이제 마지막 남은 스톱 구간을 유예한 기간이 4일 정도가 되었다. 러닝을 재개한 지 30일이 넘은 시기이고, 바로 오늘이 터닝포인트까지 달리기에 가장 알맞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눈 주위가 시큰하고, 눈이 잘 안 떠질 정도로 눈이 무거웠지만, 몸은 그간의 훈련 덕분에 낙타고개도 수월하게 넘어갔다. 예전에 훈련을 왕성하게 할 때만큼 호흡이 가볍진 않았지만, 처음엔 겨우 코앞에 있는 낙타고개 하나 넘어가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지금의 내가 대견하고 만족스럽다고 여겼다. 만족감은 내가 100을 이뤄서 얻는 게 아니라, 10을 얻어도 어떻게 얻었느냐에서 온다. 그걸 이루기 위한 내 마음가짐, 생각 방식, 태도, 그런 요소 하나하나가 10에서 완전한 10을 얻게 만든다. 완벽한 시나리오가 걸작을 보장할 수 없듯, 모든 요소들, 심지어 타이밍마저도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터닝 지점까지 도달했을때의 성취감은 몇 달간 지독하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준비하던 하프 때 보다 어쩐지 더 컸다. 지난 경기보다 20분이나 단축시켰고 기록도 만족스러웠지만 당시 감회는 '올, 했네?' 이정도였다. 이미 성공을 예견했었다. 그리고 어제 터닝포인트까지 논스톱으로 달렸다고 만족한 구간이 정말 귀여운 수준이다. 진짜 우습겠지만, 겨우 매일 아침 도는 5.5km에서의 터닝 지점이다. 그리고 시간으로 따져도 겨우 15분이면, 내가 원하는 5km 20분 페이스에 한참 뒤처진다. 어제 그 터닝 구간에서 돌아오며 몸을 하나씩 풀어주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성취감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는 터닝 지점까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기간까지 유예기간을 갖고 달릴게 될 거다. 건널목을 지나 낙타고개를 향하면서 아 여기도 정말 힘들어했었지, 생각한다. 이젠 터닝 지점에서 돌아오는 구간도 거리를 확보하게 될 거다. 왕복 30분 페이스를 목표로 하게 될 거고 나중엔 한 바퀴에서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까지 행보를 이어나가겠지.


지금은 도보를 달리지만 나중엔 뒷산도 달리며 속도 훈련, 근력 훈련도 하게 될 거고, 지금은 30분 페이스지만 나중에 28분, 26분, 23분, 마침내 20분 페이스를 자유롭게 달리게 될 거다. 만약에 내가 첫날부터 혹은 훈련 한 달이 되자마자 '나는 한 바퀴 20분 페이스로 총 네 바퀴를 논스톱으로 도는 훈련을 할 거야'라고 마음먹었다면, 나는 설령 그걸 이루더라도 매번 좌절감도 느끼고 계속 나를 괴롭혀 오던 오른쪽 어깨와 오른쪽 무릎의 시큰거림, 목의 뻐근함 등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다. 지금 당장 100을 이루기 위해 내가 이루고 싶은 1000, 10000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똑같은걸 바라더라도 지금 당장은 욕심이 될 수 있고, 나중엔 확신에 차 단 번에 그 목표를 이뤄낼 수 있기 때문에.


오늘 나는 모닝 루틴 작심 36일 차이고,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원하는 모닝 루틴을 해냈다. 솔직히 다들 미라클 모닝이라고 말들 하지만, 매일 하는 일이지만 내겐 모닝 루틴에 그리 큰 의미가 있진 않다. 그냥 내가 귀하게 여기는 새벽시간을 좀 더 잘 쓰고 싶을 뿐이다. 지금은 초기 30일간 진행해온 모닝 루틴의 시간이 좀 아까워서 좀 더 내 목표에 맞는 형태로 루틴 패턴을 조금씩 변경해보며 내게 맞는 방식을 시험해보는 중이다. 더 큰 목표는, 하루하루를 더 촘촘하게 더 완벽하게 보내고 싶다. 이것도 욕심일까. 사실 아무리 달리기와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려도 마음이 쉽게 다스려지질 않는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욕심에 치여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는 걸 나중에 이 글을 볼 나에게 고백한다. 왜냐면 나중엔 지금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


때때로 나와 나이도 얼마 차이 나지 않는데 더 많은걸 인정받고 잘하는 사람의 능력을 보고, 스스로 아직 그곳에 도달하지 못해 괴롭다고 여긴 적도 있었지만. 사실 그 능력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봤기 때문에 괴로웠고, 신선놀음을 하는 듯한 사람들을 보면서 존경심을 품었다. 누군가의 능력이 정말 실제로 날 괴롭게 하진 않았던 게 맞다. 그냥, 아 난 아직이라는 현실이 힘들었던 거겠지. 사실 가장 나를 힘들게 한건 어린 시절 다재다능하던 나의 모습, 마음에 늘 꿈틀거리는 선명하고 밝게 빛나는 미래에 대한 상상, 늘 애달픈 마음으로 하루를 살던 그 시절의 나다. 더 빛나고 싶다는 욕심, 더 이뤄내고 싶다는 그냥 흔한 사람들의 흔한 욕심.


지금은 그런 흔함을 받아들이고, 다스리고, 인정하고, 매일 어설픔을 쌓아 좀 더 단단한 것을 만들고 있다. 욕심으로 쌓아 올린 탑을 무너뜨리지 말았으면, 욕심으로 쓸데없이 내가 걸려 넘어질 마음의 씽크홀을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차분하게. 매일 어제보다 일보 더 행진 중.

작가의 이전글 악습을 버리는 순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