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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Nov 12. 2017

사라 아줌마의 마지막

내가 요크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0.

취직을 하기까지 꽤 오래 놀았다. 나는 늘 취직이란, 어느 나라의 꿈같아 보였던 그것을 생각하며 취직을 하면 바로 요크로 놀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2016년 1월, 드디어 취직이란 걸 했다. 


1.

처음 요크에 도착한 날부터 꼭 7년이 됐다. 2009년 1월, 그리고 2016년 1월. 

똑같이 비가 오는 날도 비가 안 오는 날도 아닌 그런 날, 요크에 도착했다. 


2. 

생전 처음으로 비행기를 놓쳐봤다. 그래서 다음날 같은 시간 비행기를 급히 예약했다. 돈을 억수로 물었지만, 꼭 가야했다. 그래도 하루만 일찍 왔으면 좋았을걸. 내가 쉐필드에서 요크로 가려던 날 아침 일찍 아줌마는 돌아가셨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면, 아줌마를 봤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취직이 되자마자 아줌마의 아들에게 이메일을 했었다. 오래 걸렸지만 그리 기다리던대로, 기자가 되었으니 일단 이것만이라도 전해달라고. 아줌마는 그 소식을 듣고 아주 기뻐했다고 들었다. 그때 전해서 너무 다행이다. 





3. 

아줌마를 만나러 호스피스로 갔다. 참으로 영국답게, 대체 왜 이렇게까지 걸리는 걸까 싶을 정도로 기다렸다. 아줌마에게 주려고 산 꽃이 시드는 것마냥 마음이 급했다. 두 세 사람을 만나고서야 들어간 방에, 숨을 쉬지 않는 아줌마는 자는듯 누워있었다. 암 진행이 너무 빨라 살이 많이 빠지지 않은 채로, 거의 원래 모습 그대로. 간호사가 자리를 비켜줬고 그 다음은 생각나는대로 혼자서 마구 지껄였다. 예상했던대로,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준비했던 순서대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4. 

아줌마를 보고 다시 이스트퍼레이드로 가서 아줌마네 집에 있는 가족에게 꽃을 주려고 했는데 만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았다. 나의 조문이 그들에게는 손님맞이 일거리가 될 수도 있다. 꽃은 아줌마가 있는 방 안에 두고 왔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겹쳐 스티브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서로 거의 말을 못했다. 내가 아줌마를 처음 만난 2009년에 스티브와 아줌마는 벌써 12년째 연인관계였다. 그 후로 지금까지 또 7년이 지났다. 


거의 20년지기 연인을 보낸 사람이 멀쩡할 리 없는 게 당연하지만, 스티브의 얼굴이 너무 수척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5. 

그냥 이스트퍼레이드로 가야될 것 같았다. 아줌마의 가족들을 만날 계획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있는, 우리가 살던 집을 봐야할 것 같았다. 우연찮게 아줌마네 집에 처음 가던 날과 똑같은 스트림라인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내렸다. 


처음 도착했던 날, 짐을 다 잃어버리고 택시에서 울다 내린 나를 보고 아줌마는 따뜻한 파자마를 내줬다. 열심히 준비했을 저녁은 그냥 다시 넣어두고 놀란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보통 홈스테이를 거쳐가는 학생들과 달리 나는 요크에 있는 내내 아줌마네 집에 있었다. 그 따뜻한 파란 대문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7년 만에 내린 이스트퍼레이드. 파란 대문 색이 바뀌어있었고,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던 창문은 다 가려져 있어서 쓸쓸했다. 집이 잘 보이는 곳에서 서서 그냥 집을 바라봤다.


6. 

요크에서 서울로 돌아가던 날, 아줌마는 여긴 네 집이니까 언제든 돌아오면 이리로 오라고 했다. 


내 집.


홀리도 아줌마도 없는 이스트퍼레이드에 이제 내 집은 없어졌다.

7. 

내가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아줌마는 굳이 주소를 다시 적어줬다. 주소를 잊어버릴 일은 없을거라고 했는데도 아줌마는 돌아가면 어느새 주소는 잊게 될거라고 했다. 7년이 지났는데 이스트퍼레이드 집주소는 우편번호 하나 잊은 적이 없다. 


그러니 그 집을 지탱하던 아줌마는 영영 잊지 못할거다.

8. 

처음으로 학교에 가던 날 아줌마가 알려준 길보다 나는 히워스그린을 통해 걸어가는 길을 더 좋아했다. 히워스그린이 더 예쁘고 조용했다. 그치만 오늘은 아줌마가 알려준 길로 걸었다. 예쁘지도 않은 그 길을 쭉 걸어 시티 센터로 걸어오는데, 7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줌마가 알려주던 것들이 너무 생생했다. 건널목, 대체 장사가 되는지 의문이던 가게, 슈퍼마켓. 괜찮다 괜찮다 하고 걷다가 매번 속도방지턱을 만난듯 울컥했다.


9. 

아줌마가 마치 자는 듯 누워있던 방에서 혼자 두서 없이 지껄이며 이젠 요크를 생각해도 아줌마와 홀리가 없어서 마음이 너무 아파 이곳에 다시 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10.

사실은 아줌마가 알려준 그 길을 걸어오며, 나는 다시 요크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스트퍼레이드에서 센터로 걸어오는 길, 15분 남짓 걸리는 그 짧은 길만 해도 아줌마가 깃든 좋은 날들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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