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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Nov 12. 2017

Joyful Joy

사랑이 많은 사람



1.

요크에 처음 도착한 날, 나는 짐을 몽땅 잃어버렸다.


항공사 실수로 경유지인 파리에서 섞여버린 짐을 맨체스터 공항에서 다시 찾아주기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혼자 살아본 일도,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살아본 일이 없던 나에게 그 일주일은 한 달처럼 길었다. 노트북 전원코드가 없어 가족이나 친구와 연락도 할 수 없었지만, 학교 수업을 가고 그곳에 적응해야 했다.


학교에 처음 간 날, 마지막 4교시 내내 잃어버린 짐 생각을 하며 멍하게 앉아있었다. 커뮤니케이션 시간에는 특별한 교재가 없었기 때문에 나 하나 조용히 있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그곳에 조이가 있었다. 시끄러운 학생들 속 홀로 유체이탈 중인 내가 참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조이는 예의 그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What do you think?” 


그 질문을 받자마자 나는 소리 내서 엉엉 울어버렸다. 사실은 ‘내가 짐을 잃어버려서 지금 아무 생각이 없어.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교실에 있던 모두가 당황해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울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갔다. 드라마를 찍는 줄 알았겠지만 사실 너무 창피해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다들 교실을 빠져나갈 무렵 나는 멀쩡한 표정으로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을 빠져나오는 학생들 사이에 묻혀 조용히 가방을 가지고 도망치고 싶었다.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기도 했다. 남모르게 가방을 쥐고 거의 빠져나오는데 성공할 뻔한 나를 조이가 잡았다. 나는 그녀가 묻지도 않은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조이는 내 손을 잡았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와서 말해.”


그날부터 조이는 나에게 선생님이 아니라 따뜻하고 특별한 친구가 됐다. 일주일 후 짐을 찾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늘 조이의 4교시를 기대했다. 조이는 나와 가장 친했던 미카엘라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방과 후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미카엘라가 가는 날은 수업 대신 송별회를, 내 생일에는 다른 선생님과 수업을 바꿔 생일파티를 해주기 위해 왔다.


내가 좋아하던 친구들이 떠나고부터 나는 꽤 오래 밖으로 돌았다. 수업도 나도 예전 같지 않았다. 학교에 갔지만 중간에 자주 빠져나와 거리를 방황했다. 4교시를 담당하던 조이를 만나는 일은 점점 줄었다. 그래서 나는 늘 조이에게 미안했다. 학교에서 가끔 조이와 마주치는 때면 인사 대신 사과를 하기 일쑤였다.


“괜찮아. 네가 왜 수업에 안 오는지 이해해. 미카엘라가 간 이후로 수업에 와도 예전 같지 않았잖아.”


조이는 항상 따뜻했다. 그 이후에도 조이의 4교시를 듣는 일은 적었지만, 나에게 조이는 늘 특별한 친구였다.


학교에 마지막으로 나가던 날, 거의 한 달 만에 조이의 4교시를 들었고 수업이 끝나면 기념사진이나 한 장 찍자고 말하려고 했다. ‘나 오늘이 학교에 오는 마지막 날이야’라는 말을 듣자 조이는 울었다. 카메라를 든 손이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 감사했다. 내가 조이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만큼 조이도 나를 여전히 좋은 친구로 생각해준다는 게 고마웠다. 둘이 서서 울다가 사진을 찍고, 며칠 후 조이와 한국인 친구들과 술을 진탕 먹고 헤어지며 또 울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요크에 돌아가기까지, 조이에게 많은 엽서와 편지를 보냈다. 어딘가를 여행할 때면 꼭 그곳을 나타내는 엽서를 조이에게 보냈다. 조이는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특별한 친구였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조이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술 마시는 걸 좋아했고, 유쾌했다. 우리는 금요일 밤에 펍 세 개를 돌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조이는 여전히 미친 듯이 유쾌했다.


5년 만에 만나고 헤어지면서 조이는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야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뜻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서로 쓸데없는 이야기만 나눴던 것 같다. 조이는 자기를 만나러 다시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나를 위해 선뜻 시간을 내 준 조이에게 고마웠다. 그녀는 이번에도 헤어지면서 울 수는 없으니 울기 전에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물이 왈칵 흘러내리기 전에 서로 급하게 헤어졌다. 골목 길을 따라 걸어가는 조이는 훌쩍거리면서도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먼저 집으로 돌아온 새미는 언제나처럼 수면 안대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자고 있었다. 집은 조용했다. 나는 바닥에 앉아서 엉엉 울었다.



2. 

나는 그날 아마도 처음으로 조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이는 16살 때 싱글맘이 되어 열심히 살아가는 여동생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었고, 지적 장애가 있는 남동생을 언젠간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가 성폭행 트라우마에서 회복해가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친구가 조금씩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돕고 있었다. 조이는 늘 유쾌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감정적으로 기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웠지만, 동시에 나는 조이를 걱정하게 됐다.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감정적으로 그녀를 지치게 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여행을 끝낼 무렵까지 늘 조이를 떠올렸다.


오늘 조이는 안녕할까.


6주가 지나 빈을 홀로 여행하면서 걱정을 그만두기로 했다. 조이와 마지막으로 들렀던 펍에서 만난 노숙자를 떠올리는 순간 해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날 조이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노숙자에게 조이는 선뜻 말을 걸고 손을 내밀었다. 나와 조이, 그 노숙자 여인은 꽤 오래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를 누군가와 이렇게 오래 이야기를 해 본 일이 너무 오래된 일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조이는 돌아오는 길에도 그 여자가 견딜 외로움을 걱정했다.


감정적으로 기대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일도, 또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조이가 돌봐야 할 사람이 많다는 건 그녀에게 나눠주기에 충분한 사랑과 유쾌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이는 분명 오늘도 안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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