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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13. 2019

그렇게 고양이가 된다 - 2


몸을 살짝 감싸 쥐고 목을 검지 손가락에 걸쳤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들 중에는 젖병을 못 무는 아가들도 있다던데, 세이는 다행히도 금방 젖병에 적응했다. 꼴깍꼴깍 한 모금씩 삼킬 때마다 목에서 배로 분유 흘러가는 게 손가락과 손바닥에 느껴졌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 자세가 제대로 된 건지 계속 의심했다.


수유를 해보기 전에는 2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한다길래 2시간에 한 번씩, 약 30분이면 끝나는 건 줄 알았다. 거기다 ㅈ과 번갈아서 하면 한 사람이 4~5시간씩은 쉴 수 있는 시스템. 별로 어려울 건 없네? 나는 그만 자만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른들 말대로 하는 걸 어려서부터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조들이 나대지 말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수유 경험이 없는 우리는 한 번 수유하는데 1시간이 꼬박 걸렸다. 밥을 먹이는 것, 트림시키는 것, 배변 유도하는 것 모두 느렸고, 설상가상 경험이 없으니 스스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에 대한 의심마저 데카르트적 사고를 하느라고 더욱 늦어졌다.



내가 고대했던 수유 후 2시간 텀은 수유 뒷정리 30분, 새로 수유하기 전 준비 30분으로 한 시간이 날아간 바람에 깔끔하게 반토막 났다. 초보라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남은 한 시간 동안 이것저것 찾아보고 불안을 잠재우느라 거의 쉬지 못했다. 돌아가며 수유를 했다면 4~5시간의 휴식 시간이 생길 줄 알았는데, 너무 초보라 혼자 수유를 하러 들어갔다가도 꼭 도움을 청하게 됐다. 서로 돌아가며 재택근무를 하면서 버텼지만, 피곤했다. 도대체 길고양이들은 무슨 수로 혼자서 길에서 몇 마리씩 수유하는 걸까.


수유로 몸 상태가 곤죽이 되어가고 있던 차에 편집장의 권유로 (피곤한 와중에) 세이 육묘 일기를 회사 SNS에 쓰기 시작했다. 나는 걱정이 많은 타입이라 수의사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 이 육묘 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까 봐 망설였다. 사실 나는 세이가 숨을 쉬는지 수시로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는데, 수유를 하느라 수면부족이 며칠 이어지니 이성적 판단이 흐려져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그만 우주의 기운을 믿어버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이 얘기를 읽고 있는데, 제아무리 아기 고양이라고 해도 쉽게 죽을 리는 없을 거란 주술에 판돈을 걸고 덜컥 육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육묘 일기가 제발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라면서.


해피엔딩을 꿈꾸는 내 현실은 5월, 가정의 달답게 엉망진창이었다. 수유에 조금씩 익숙해졌지만, 세이의 컨디션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고, 1년 만에 똑같은 증상으로 코이가 아팠다.


코이를 치료하는 김에 세이 얘기를 들은 의사는 말했다.


“어미가 새끼 중 제일 약한 아이를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그랬다. 지금은 너무 어리니 몸무게가 좀 늘면 전염병 검사를 해보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날은 저울과 작은 노트를 샀다. 밥을 먹일 때마다 체중을 재고 변화를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는 살을 찌워보겠다는 각오기도 했다. 동물과 함께 살다 보면 마음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처음 발견했을 때, 세이는 눈도 못 뜨고 끼약끼약 울고 있었다. 제일 약한 아이를 버리고 가기도 한다는 말과 길에서 살려달라는 듯 버둥거리던 모습이 겹쳐 젖병을 물리면서 고 작고 얇은 몸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엄마가 길에서 키우기 어려웠다는 뜻이지 너한테 가능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야.”


분유가 목을 타고 배로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그날은 처음으로 세이 몸무게를 쟀다. 80g.

이 사진을 찍은 내 아이폰 8+가 202g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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