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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13. 2019

그렇게 고양이가 된다 - 3

그렇게 고양이가 되길 바랐다


탯줄이 떨어졌다. 탯줄이 떨어진 시기로 보아 세이는 길에서 발견되기 전날 태어난 것 같았다. 세이의 수유 상황을 꼼꼼히 기록해두는 노트에 특이사항 한 줄을 추가했다. 그 노트를 채워 입양 갈 때 새 가족에게 전해줄 계획이었다.



수유를 시작한 후로 일주일 정도 되니 우리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서로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적었고, 나름의 요령도 생겼다. 세이는 그동안 아주 조금씩 자랐다. 손을 잡고 매달리는 힘이 약간 생겼고, 귀도 많이 펴졌다. 배변 상태가 좋지 않아 많이는 아니었지만 몸무게도 조금씩 늘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면 수유 간격을 늘여도 될 때가 곧 올 것 같았다.


집으로 온 지 일주일 만에 세이는 케이지 안에서 코이, 아이와 대면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상태의 아기를 코이와 아이는 흥미롭게 구경했다. 세이가 눈을 뜨고 조금만 더 크면, 코이와 아이에게 맡겨 사회화를 시켜볼 예정이었다. 부모 형제들과 함께 지내다 와 사회화가 잘 된 코이와 아이는 든든한 누나들이었다.


세이의 가까운 미래를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때도 나는 매일 슬슬 기어 나오는 불안과 싸우고 있었다. 세이는 너무 작았고, 인터넷에서 찾은 수유 고양이들의 기록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몸무게가 많이 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재택근무를 ㅈ에게 양보(?)하고 출근하려고 했다. 집에 혼자 남았을 때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서 회사로 도망가는 편을 택했다.  



ㅈ은 의연했다. 세이가 젖병을 잘 빨지 않고 배변이 원활히 되지 않는데도 ㅈ은 세이와 둘이 집에 남겨지는 시간을 마다하지 않았다. 퇴근 후에 집에 도착하면 매일 하루치의 요령이 생겼다. 나는 아직도 ㅈ이 어떻게 매일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다.


다음날은 ㅈ이 회사로 출근했다. 집에서도 매일 의연하게 세이 수유를 하는 ㅈ을 보고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조금 생기기도 해서, 아침 수유를 시작으로 상큼한 재택근무의 날을 맞았다. 세이의 상태는 ㅈ에게 전해 들은 것처럼 좋지 않았다. 먹는 양은 확연히 줄었고, 배변 상태는 좋아졌다가도 금방 다시 돌아왔다. 그날은 수유 사이에 계속 젖먹이 돌보는 법을 공부했다. 너무 먹지 못해 사람들이 많이 쓰는 대로 이온음료를 희석해 먹였다.



요령이 생기면서 줄어들었던 수유시간은 세이의 몸상태 때문에 한 시간 반으로 늘어났다. 오후 12시 40분에 시작해 겨우 끝나고 나니 어느덧 오후 2시 20분이었다. 세이는 거의 먹지 못했다. 따뜻했던 몸도 조금은 차가워진 것 같았다. 수유와 배변을 계속하기엔 지친 듯해서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재웠다. '다음 텀에는 야무지게 먹여야지. 아프다고 엄살 피워도 내가 봐주나 봐라' 다짐하면서.


세이는 새로 갈아준 따뜻한 물병에 기대 곧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집에 온 지 9일, 태어난 지 10일째 되던 날에 세이는 안개꽃에 쌓여 누웠다. 올 때처럼 눈도 뜨지 못한 작은 몸으로 누웠다. 탯줄도 떨어지고, 귀가 많이 펴져 매일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인사하려고 손에 쥐어보니 처음 왔던 날처럼 참 작고 가벼웠다.


우리는 3개월만 잘 돌봐 좋은 곳으로 입양을 보내자는 얘길 하면서도 세이가 좀 자라 가을이 되면, 코이 아이와 벚꽃을 구경했던 것처럼 낙엽을 보러 가자는 얘길 했었다. 중성화 수술 후 끙끙 앓고 있으면 코이와 아이를 돌봤을 때처럼 휴가를 내고 실컷 도닥여주자며 웃었다. 예쁘고 씩씩한 고양이가, 어쩌면 우리 집 막내가 되었으면 했다. 그렇게 고양이가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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