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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Nov 21. 2021

350만 원짜리 바이올린을 샀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다


바이올린 선생님은 만삭이었다.

내게 본인이 떡볶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얘기하곤 했는데,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했던지 그때는 선생님의 눈이 더 반짝이곤 했다.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던 나는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선생님 눈이 반짝반짝거리는 게 신기하고 보기 좋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즐거운 분위기지만 진지하게 가르쳐주셨고, 나는 쾌활한 선생님을 만나는 날을 기대하곤 했다.

어느 날 레슨 중에 내가 알 수 없는 빈혈 때문에 바이올린을 하다 그대로 뒤로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좀 더 오래 수업을 했을 것이다.

선생님이 쓰러지는 나를 안아 악기도 나도 다치지 않았지만, 고마움을 표할 기회는 없었다.

그 일로 크게 놀란 만삭의 선생님은 일을 그만두셨고,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레슨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친절하고 따뜻했다. 전공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어린 학생들이니 흥미를 잃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그 학생의 삶을 위해서도, 레슨이 생계인 선생님의 삶을 위해서도 나은 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 머릿속 바이올린 선생님들은 환하게 웃어주는 천사나 요정 같은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마지막 바이올린 선생님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야, 그만해.
아이씨 못 들어주겠네.
이게 배운 거냐?
야. 됐고, 처음부터 다시 해.


마지막 선생님에게 배운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즐거웠던 날이 없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갈 때마다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면서 뭘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선생님은 무서웠고, 내 말을 비웃으며 얘기할 때가 많았다. 레슨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레슨이 아니라 바이올린 배우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 바이올린을 연습하면 레슨을 받으며 느낀 모욕적인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레슨 가는 날은 침울했고, 다녀와서는 이제 바이올린을 배우지 않겠다고 울었다.


이것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사람은 이모였다. 이모는 처음엔 내가 나이가 어려 적당한 꾸짖음을 참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학원을 옮기거나 선생님을 바꿔달라고 학원에 말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이미 선생님에게 질릴 대로 질려 바이올린을 누구에게도 배우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리 타일러도 내가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모는 나에게 새 바이올린을 사주었다. 그땐 그냥 사주는 선물이라고 했으나, 나중에 얘기하길 좋은 바이올린을 사주면 내가 다시 흥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2000년 겨울, 소개를 받아 어느 개인 제작자의 공방에 갔고, 여러 바이올린을 보았다. 5년을 배웠지만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고, 악기를 골라본 적도 없기 때문에 뭘 어떻게 봐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만 내 취향을 조금 반영한다면, 밝은 호박색의 제작된 지 좀 오래된 악기를 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묻기에 나는 너무 낯을 가리는 사춘기 청소년이었다. 악기 몇 개를 보여주어도 내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자, 제작자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악기 하나를 더 들고 와서 보여주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악기라고 했다. 붉은빛이 났고, 모양이 조금 특이했다.


나는 그 악기를 샀다. 내가 제일 사고 싶지 않던, 붉은빛의 새로 만든 악기를. 내가 그 악기를 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는 없다. 내가 너무 조용하고 반응이 없으니 엉겁결에 보여주긴 했으나, 사실 무척 팔기 아쉬워하던 제작자의 태도를 보고 샀으니까. 갑자기 그걸 사겠다고 하자 그는 황급히 조금 더 좋은 악기를 보여주며 같은 가격에 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그때 극심한 사춘기 중2였다. 중2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결국 제작자는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바로 다른 악기로 바꿔 줄 테니 꼭 가지고 오라는 말과, 나중에 이 악기를 팔고 싶으면 꼭 자기에게 팔아달라는 당부를 하며 악기를 내게 쥐여주었다.


그렇게 350만 원짜리 악기를 샀다. 좀 좋은 케이스도 샀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비싸고 귀한 것. 나는 귀한 악기를 등에 메기도 아까워 그 겨울에 추위도 모르고 맨손으로 케이스를 들고 눈길을 걸었다.


집에 와 새 악기로 처음 연주한 곡은 마지막 선생님에게 배웠던 곡이었다. 비웃음 사면서 배웠던 그 곡을 내가 배웠던 모든 곡 중 가장 자신 있게 연주할 수 있었다. 실수할 때마다 비웃음 소리 듣는 게 싫어서 열심히 연습했기 때문이다. 깽깽이라고 놀리던 가족들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그런데 하기 싫었다. 내가 배웠던 곡 중 처음으로 음악 같은 소리를 내게 된 곡이었는데 그 소리를 만드는 나는 음악이 싫어졌다.


그렇게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다.

다시 케이스를 열기까지 20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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