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의 무모한 시작-
때.마.침
긴 여행을 결정짓게 한, 단 한마디, 때.마.침. 40대 직장인이라는 단어만으로 예상될 수 있는 업무의 번아웃. 숨을 쉬고 싶었으나,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랐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그 방법을 찾지도 않았다. 그저 일상처럼 집-직장-카페의 무한 동선을 반복하던 어느 날, 카페의 잡지책 속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공기가 흐르는 카페의 전경, 안전모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여자, 때.마.침. 몬트리올의 그 사진 몇 장이 나를 당겼다. ‘여기서 숨을 쉬어…’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일의 공백 이후의 앞 날이 걱정되지도 않았다. 문득, 고민이란 어설픈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은 그저 완벽했다. 몬트리올행을 결심하게 한 가장 적절한 단어, 때.마.침. 나는 그곳이 필요했다.
나는 지금 몬트리올에 힘을 빼러 가는 거야!
무작정 유학원을 찾았다. 공부라는 작은 빌미를 주어 균형 잡힌 쉼을 주자는 것! 그리고 자전거를 배웠다. '자.탈.못'에 속하는 인간 중 하나로서, 잡지 속의 자전거 이미지가 뇌리에 박혔는지, 왠지 자전거는 배워가야 할 거 같았다. 그리고 자전거학교에서 난 또 하나의 불변의 진리를 깨달았다. 살짝 오르막에서 내려오는 중심잡기 연습이었는데, 계속 비틀비틀거리다가 몸에 힘을 뺀 찰나의 순간, 중심이 잡히면서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역시, 모든 일에는 힘을 빼야 하는구나... 그래, 나는 지금 몬트리올에 힘을 빼러 가는 거야!'
프렌치 캐나다, 영어-프랑스어 이중언어 지역, 영어를 제대로 배울 생각이라면 선택지에 두지 않았을 몬트리올, 나는 사진 몇 장의 이미지만을 머릿속에 담아, 드디어 긴 여행길에 올랐다.
내가 결국 일을 저질렀구나!
몬트리올 공항에 발을 디딘 첫날의 이미지는 ‘으스스한 밤, 보슬보슬 비’였다. 안내자를 만나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마음을 서두느라 몬트리올에 도착했다는 벅찬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홈스테이에 도착한 건 자정 즈음의 늦은 시간. 집주인이 준비해준 음식으로 간단히 허기를 달래고, 피곤함을 풀기 위해 서둘러 침대에 누웠다. 삐그덕 삐그덕 침대 소리…. 불편함이 느껴지는 침대 위에서 어제와 다른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비로소 내가 만든 이 용감한 현실을 실감했다. ‘내가 결국 일을 저질렀구나!’
일 걱정도, 돈 걱정도 하지 않고 오로지 몬트리올행만 바라보고 그 땅에 내디딘 첫날, 삐그덕거리는 침대가 주는 현실감이 있었다. 나는 무언가 ‘우리나라보다 더 나은 것’을 은연중에 기대했었나 보다. ‘소설 키다리아저씨의 주인공, 주디의 고아원 시절 침대도 이거 보단 나았겠네…’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의 보슬 보슬비, 6월이라면 느낄 수 없는 차가운 한기…. 그렇게 삐그덕거리는 침대 위에서 불편함과 현실감의 상관관계를 느끼며, 몬트리올의 첫날밤은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