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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Jul 19. 2020

하이데거,사르트르 그리고 키에르케고어의 인간관에 관하여

#132 2020.07.17

 

    하이데거, 샤르트르, 키에르케고어는 실존주의 철학자입니다. 모두 실존의 관점의 인간관을 갖지만, 각자 ‘실존’ 개념을 다르게 설명합니다.


    키에르케고어는 가장 먼저 인간의 삶을 실존개념으로 바라본 철학자로, ‘실존’을 인간에게 주어진 차이를 종합하는 과정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다양한 종류의 두 극단에서 선택을 합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되는 ‘사이존재’ 입니다.


    하이데거는 이성 중심의 전통철학을 거부하고 실존을 ‘현존재의 본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의 ‘실존’은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이는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존재 양식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가능존재’라고 말합니다. 고정된 본질을 갖는 존재가 아닌, 각자의 실존 방식으로 밖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인간은 세계에 던져진 ‘현존재’로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기투성을 갖는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실존적 행동을 통해 사물을 변형하고 가공합니다. 그렇게 형성된 자신의 세계를 통해 도구의 세계, 문화의 세계, 사회적 세계를 만듭니다. 


    샤르트르는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실존’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샤르트르는 실존을 ‘대자’의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있는 ‘즉자’와 달리 ‘대자’로 실존하며, 그렇기에 인간 존재는 고정되고 현실화된 존재가 아닌 ‘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 그 자체로서 인간은 자유를 갖습니다. 이에 인간은 ‘자유존재’와 구별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인간은 자유를 통해 운명을 만들어가는 가능성의 상태에서 삶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자유와 선택을 하이데거가 언급했던 ‘기투’로 표현합니다.


    이 세 사람은 실존 개념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키에르케고어는 인간이 죽음과 대면했을 때, 무차별적이고 일반적인 시간이 질적으로 고유한 ‘실존의 시간’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 시간 속에서 인간에게 죽음은 ‘현재적’이 되고 순간은 ‘영원’이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실존적 결단을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하이데거는 현존재를 ‘죽음을 향한 존재’로 규정해 인간의 고유한 죽음의 의미를 찾습니다. 죽음은 인간 자신의 모든 가능성의 완성을 차단해 인간이 갖는 유한성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동물과 달리 미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키에르케고어의 주장과 비슷합니다. 하이데거는 더 나아가 ‘역사성’과 죽음을 연결합니다. 인간이 죽음에 의해 미완성으로 남긴 것은 후손에게 전해져 자유의 가능성이 세계 문맥 속에서 새롭게 던져진다고 봅니다.


    하이데거, 샤르트르, 케에르케고어 모두 삶과 죽음에 대해 실존의 의미로 접근하는 실존주의적 인간관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운명이 가능성 속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존재구조를 갖고 있으며 스스로의 선택과 결단이 인간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을 이성적으로 규정하기보다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보았다는 점에서 서양철학사에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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