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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Aug 16. 2021

2020 부의 지각변동

#134 박종훈 [2020 부의 지각변동]


p.16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



p.37

  더구나 필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별하거나 그 경중을 따지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꼭 필요한 정보인 '시그널'과 이를 방해하는 '노이즈'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p.61

미국의 금리 인상은 모두 위기로 이어졌다.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미국 연준은 1994년, 1999년, 2004년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경제가 불안해졌다. 과거에는 대체로 달러 외채가 많은 신흥국이 위기의 진원지가 됐지만, 최근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조차 금리 인상의 여파를 피해 가지 못했다. 1994년 미국은 물가를 잡겠다며 당시 연리 3%였던 기준금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개발도상국으로 흘러갔던 자금이 금리가 높아진 미국으로 다시 되돌아오면서 당장 멕시코의 외환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금리 인상이 마무리된 지 2년 만에 태국을 시 작으로 아시아 외환위기가 일어나 우리나라까지 큰 고통을 받았다. 1999년에도 미국이 물가를 잡겠다고 연리 4.75%에서 1년 만에 6.5%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고작 1.75%포인트 올렸을 뿐인데 이 금리 인상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IT기업의 주가가 모두 폭락한 '밀레니엄 버블 붕괴'의 도화선이 됐다. 그 결과 1999년 11,500대를 돌파했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3년 만에 35%나 폭락하여 7,400 대까지 추락했다. 나스닥지수는 4,300대에서 1,100대로 4분의 1토막이 났다.

  세 번째 금리 인상기는 2004년이었다. 집값이 유례없이 폭등하는 등 자산시장에 과열 현상이 일어나자, 연준은 1980년대 이후 가장 빠 른 속도로 금리를 끌어올렸다. 무려 17차례에 걸친 금리 인상 끝에 2004년 초 연리 1.0%였던 기준금리가 2006년 7월에는 연리 5.25%까 지 뛰어올랐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끝난 뒤 정확히 1년이 지 난 2007년부터 미국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 이 조금 하락했을 뿐인데도 빚을 갚을 수 없는 가계가 급증하면서 급 기야 대규모 금융 부실 사태로 번졌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로 파장이 확산되면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신흥국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p.65

금리 인상이 멈추는 순간을 주목하라

  2015년부터 시작된 최근의 미국 금리 인상은 전례 없이 느리고 점진 적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게다가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에 앞서 시장에 정확한 신호를 주고, 그 신호에 맞춰서 인상하고 있다. 왜 연준은 이렇게 느리고 친절하게 금리를 인상하고 있을까? 이런 점진적이고 미약한 금리 인상을 마냥 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한없이 느리고, 인상폭도 크지 않은 것을 무조건 좋은 시그널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연준이 신중한 태도 를 보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마다 세계 어디에선가 경제 위기가 일어났다는 것을 연준이 잘 알고 있어서다. 연준이 금리를 크게 올렸다가 신용경색이 일어나면 자칫 그 위기가 세계로 파급되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가까스로 회복한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역시 금리 인상 여파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해도 신흥국에서나 위기가 일어났을 뿐 미국 같은 선진국은 안전지대처럼 여겨졌다. 이 때문에 미국은 다른 나라의 위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심지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발생한 신흥국 위기는 미국 월가에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주가와 통화 가치가 함께 대폭락하자, 선진국 금융자본은 반의 반값 이하로 떨어진 한국과 동남아시아 자산을 헐값에 사들여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됐던 미국은 그 이후 부터 금리 인상에 매우 신중해졌다. 미국 경제가 돈의 힘으로 간신히 이어난 만큼 이번에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잘못했다가는 자칫 1930년 대 후반처럼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후반 미국은 세계 대공황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금리를 올렸다가 극심한 불황을 맞았던 경험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2008년 이후 오랫동안 미국의 기준금리가 제로금리 상태여서 금리를 조금만 올려도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큰 충격 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 5%였던 금리가 연 7.5%가 되 면 금리는 1.5배 인상된 것에 불과하지만, 0.25%였던 금리가 2.75%가 되면 11배가 인상된다. 똑같이 금리를 2.5%포인트를 올린 것이지 만 애초에 금리가 어느 수준이었느냐에 따라 그 충격은 다를 수밖에 없다.

  네 번째 이유는 제로금리와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물가 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준이 아무리 신중하게 금리를 인상한다고 해도 물가가 급등하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따라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미국 경기가 활황 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물가 오름세가 높지 않아서 신중하게 금리 인상을 결정할 수 있었다. 2008년 이후 아무리 천문학적으로 돈을 풀어도 저물가가 지속된 원인은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추정컨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 진국에서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마치 1990년대 일본처럼 생산 연령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로 경제 활력이 약화되어 물가 상승 압력 이 크게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글로벌 공급 체인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얼마든지 저비용 생산이 가능해진 것도 물가 안정의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 중국의 기업들이 임금과 정부의 보조금, 그리고 국영은행의 저금리 자금 덕분에 감 공산품을 전 세계로 수출하면서 물가 상승 속도를 늦췄을 것이다.


  연준이 금리를 느리게 인상한 가장 큰 원인은 미국 경제의 기초력이 저하된 탓이 크다. 과거 미국 경제는 호황기에 연리 5~6%의 기 준금리는 충분히 버틸 만한 저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 경제는 10년 장기호황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연리 2%대 후반의 금리조차 견디지 못할 만큼 기초체력이 약화됐다.

  만일 연준이 연리 3% 초반대도 넘지 못한 상태에서 금리 인상을 멈춘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시그널이다. 천문학적인 양적완화와 제로 금리로 만들어낸 2008년 이후 지난 10년간의 호황이 그동안 다른 호황에 비해 얼마나 취약한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시그널은 바로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하는 시점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면 언론과 증권가는 이제 금리 인상 걱정을 덜었다며 주가 상승을 점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1995년과 2006년에는 금리 인상 중단 이후 주가가 10% 넘게 상승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가 상승은 오히려 불이 꺼지기 직전 타오르는 마지막 불꽃과 같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중단은 결코 긍정적인 시그널로만 볼 수는 없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추었다는 것은 미국경기의 활황이 끝나고 경기 둔화의 신호가 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금리 인상을 중단한 이후 6~24개월 뒤에는 대체로 주가가 급락했다. 심지어 2000년에는 금리 인상 중단 직후 닷컴버블이 붕괴되면서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사실 연준은 미국 최고의 경제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연준보다 더 경제를 꿰뚫어 보고 있는 곳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연준의 기준금리는 연준이 어떻게 경기를 판단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시그널인 셈이다.



p.70

장단기금리 역전은 시작 버튼이 아니다.

  금리는 돈을 빌리는 기간이 길면 더 높아질까? 아니면 짧을수록 높아질까? 보통은 돈을 빌리는 기간이 길수록 금리가 높은 게 정상이다. 예를 들어 똑같이 1억 원을 빌려줄 때 10년을 빌려주는 것과 1년을 빌려주는 것을 비교해보자. 10년을 빌려줄 경우 온갖 위험이 더 커지기 때문에 금리가 1년보다 높지 않으면 돈을 빌려주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 10년 만기 장기 국채와 1년 만기 단기 국채가 거래될 경우, 대체로 1년 만기 국채보다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가 높다. 그런데 가끔씩 예외적으로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낮아지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질 때가 있다. 대체로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경기 불황을 미리 알려주는 중요한 시그널로 알려져 있다. 

  왜 불황을 앞두고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단기 금리는 현재의 경제 여건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당장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냉장고 같은 내구재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단기 자금 수요가 늘어난다. 이에 비해 장기 금리는 먼 미래의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경기가 좋지만 현재의 호황이 미래에도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제 주체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단기 자금 수요가 많아지면서 단기 금리는 장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올라가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저축을 늘려 장기 채권을 사두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면 장기 금리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 때문에 호황의 끝으로 갈수록 장기와 단기 금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우려가 점점 더 커지면 장기와 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마저 일어난다. 이처럼 장기와 단기 금리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 거나 심지어 역전되는 것은 경제 주체들이 현재 경기가 호황의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얼마나 강하게 느끼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실제로 장기 금리와 단기 금리가 역전되거나 그 차이가 축소된 이 후 통상적으로 6~18개월 뒤에 경기 침체나 위기가 찾아온 경우가 많았다. 이 떄문에 장단기 금리 차 축소나 역전은 경기의 향방을 알리는 강력한 시그널이라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2년물이나 6개월물 단기 국채 금리가 10년물 장기 국채 금리보다 높아지면 이를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이라고 한다. 

        


p.104

  미국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를 하는 시기에는 선진국의 자금이 신흥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면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서 교역량이 점차 늘어나고 원자재 가격도 덩달아 상승한다. 수출에 의존하는 신흥국이나 원자재에 의존하는 자원부국은 무역수지가 개선되고 투자 유치도 늘어나면서 외화자금이 더욱 풍족해져 통화가치가 치솟아 오른다. 

  이런 상황이 되면 신흥국 정부는 풍부한 외화자금을 유치해 성장속도를 이웃 국가보다 가속화하여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욕심을 낸다. 신흥국의 기업들도 마치 공짜처럼 보이는 값싼 외화자금으로 투자를 대폭 늘리려 한다. 결국 경쟁적으로 외화자금을 빌리고 이렇게 유입된 외화는 개발도상국의 통화 가치를 더욱 끌어올린다.

  과도한 외화 차입을 통한 성장 전략은 그 과욕만큼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경쟁적 투자 때문에 과잉생산이 빚어진 상황에서 통화 가치까지 치솟아 오르면, 신흥국 기업들은 수출물량이 늘어나도 손실을 보는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한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일단 몸집부터 불려야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생산과 수출 증대에만 전념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미국 연준이 금리까지 올리면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당장 신흥국으로 몰려들었던 해외 자금이 선진국으로 되돌아가면서 신흥국은 자금 유출과 통화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미국 금리 인상에 맞추어 자국 금리를 올려야 한다. 그러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위축된 국내 경기가 더욱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신흥국에 대한 불안 심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신흥국이 아무리 적극적인 방어에 나선다고 해도, 해외 자금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빠져나간다. 통화 가치는 더욱 급락하고 그 여파로 수입 물가가 올라 국내 수요가 위축된다. 이 같은 경기 위축으로 신흥국의 주가나 부동산 가격 등 자산 가격은 동반 하락한다. 



p.115

  그렇다면 앞 절에서 도이체방크가 고평가된 통화 7위로 지목했던 우리 원화는 어떨까? 우리 원화는 사실 중국만큼 고평가된 통화는 아 니다. 게다가 물가 상승률도 높지 않아서 국내 요인만 보면 크게 흔들 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몇 가지 측면에서 우리 원화의 미래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첫째, 우리나라는 2017년 이후 반도체 슈퍼사이클 초호황으로, 반도체 기업들의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으로써 외화가 쏟아져 들어와 원화가 고평가된 측면이 있다. 반도체 기업들의 호황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반도체 호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반도체 경기가 언제 꺾일지도 알 수 없다. 만약 반도체 경기가 의외로 급격 히 냉각되면 원화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둘째,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동안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크게 높아져 원화 환율이 위안화 환율에 밀접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동안은 중국 정부가 위안화 환율 방어에 전력을 다한 덕분에 원화 가치도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면 그 영향으로 원화 가치도 급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그동안 우리나라 증시는 중국에 대한 대체투자처로 각광을 받아왔다. 중국에 투자하고 싶지만 갖가지 자본시장 규제 때문에 중국을 꺼렸던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택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앞으로 중국 경제가 흔들릴 경우에는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 원화 가치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원화 가치가 급락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원화 가치가 오 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 이유는 2020년 이후 생산연령인구의 감소 같은 원인으로 우리나라의 경기 둔화가 본격화되면 수입이 줄어들고 일본식 불황형 흑자가 가속화되면서 원화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1989년 일본이 버블 붕괴 이후 장기불황에 빠지면서 엔화 가치가 거의 2배 가까이 급등했던 현상을 염두에 둔 전망이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일본과 일부 비슷한 점은 있지만 소재·부품 산업이나 강소기업들의 경쟁력은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반드시 일본 형 불황 구조를 따라갈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장기적으로 불황형 흑자가 심화되어 원화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 이 있다고 해도 단기적으로는 중국발 위기 가능성과 반도체 호황이 끝날 가능성 그리고 무역 분쟁 속에 무역 규모 축소 가능성 등으로 원 화 가치가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수년간 은 환율의 시그널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p.141

  인구와 관련된 가장 위험한 시그널은 바로 생산연령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다.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들면 적극적 인 소비 계층도 줄어든다. 사실 65세가 넘은 고령층이 가구나 자동차 같은 내구재나 첨단 IT 신제품을 구매하는 주된 수요층이 되기는 쉽지 않다.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들면 자산시장의 수요 기반도 그만큼 약화되 기 때문에 대체로 주가나 부동산 가격이 정체되거나 하락한다. 또한 고령화에 따라 재정지출이 늘어나고 세수 기반이 약화되면 정부 부채가 급증한다. 일본의 경우 1990년만 해도 GDP 대비 정부 부채 비 율이 66%로 비교적 건전한 편이었지만 고령화가 가속화된 2018년에는 무려 253%로 세계에서 정부 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또한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일단 줄어들면 경제 성장률은 끝없이 추락한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자랑하던 일본은 생산 연령인구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한 1992년부터 2012년까지 20년 동 안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고작 0.85%에 불과했다. 그나마 경제 상황 이 나아졌다는 아베 총리 집권 이후에도 2013년부터 2018년까지의 연평균 성장률은 1.22%밖에 되지 않는다.



p.148

  이처럼 저출산은 단지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년층이든 모두가 함께 고통을 나누게 될 우리 모두의 문제다. 지금 당장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다시 도약을 꿈꾸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우리의 미래는 더욱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2018년 7월에 이미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14.3%를 기록해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26년이 되면 20%를 넘어 초고령 화 사회가 될 전망이다. 65세 이상 인구는 근로소득보다 자산소득이나 사회보장제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고령인구가 일정 비율을 넘으면 사회보장비용이 증가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는 실질 은퇴 연령이 73세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OECD 회원국들의 실질 은퇴 연령이 대체로 65세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무려 8년이나 더 일하는 셈이다. 이는 노후 준비가 되지 않아 60세 정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이가 들어서도 끝없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 때문이다.

  실질적인 은퇴 연령이 높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나라는 고령화에 따른 부작용이 덜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안이한 시각이다. 은퇴 연령이 높다는 것은 고령화의 문제를 다소 늦출 수는 있어도 피해 갈 수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은퇴연령이 70세로 OECD 회원국 중에서 세 번째로 높았지만 고령화의 부작용을 피해 가지 못해 결국 장기불황에 빠졌던 것이 대표적인 반증이다.

  우리 경제의 또 다른 문제는 빈부격차 확대에 있다. 소득격차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유럽보다 다소 큰 편이지만 미국이나 중국보 다는 작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1차 베이비붐 세대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차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를 해도 국민연금 같은 사 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이 은퇴하면 대거 저소득층으로 전락해 소득격차는 급격히 확대될 것이다. 

  보다 큰 문제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마저 꺾이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30년 전 까지만 해도 부모의 소득격차가 자녀의 성적이나 성공의 결정적 원인이 되지는 않았다. 아무리 가난해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값비싼 사교육에 의존하면서 부모의 소득 수준이 자녀의 성적까지 결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13년 서울시 교육청 의 조사 결과, 부모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인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주 요 세 과목 평균 점수가 218.3점으로 200만 원 이하로 버는 부모를 가진 학생들의 점수인 192.6점보다 13%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입시 결과는 학생들의 점수 자이보다 훨씬 더 크게 벌어졌다. 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이 대학 합격에 결정적인 현행 입시제도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이 김세직 교수의 연구 결과에서는 학생 100명당 0.1명에 불과했지만 강남구에선 2.1명으로 강남구가 강북구보다 21배나 많았다.

가난을 이겨내고 어렵게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계층 이동 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1989년 대학 등록금 자율화 이후 등록금 이 무려 5배나 오르면서 부모가 재력이 없으면 빚 없이 대학을 졸업 하기가 어렵다. 또한 '괜찮은 직장'의 취업문이 극도로 좁아지면서 대 학생들은 각종 어학 점수와 자격증 등 '스펙'을 쌓는 데 엄청난 비용을 쓰고 있다.

  이처럼 치열한 취업 전쟁에서 한 번 밀려나면 다시 역전할 기회를 잡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의 임금이 대기업 정규직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다 일단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대기업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기 가 쉽지 않은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그 모든 악조건을 딛고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더라도 부모의 지원 없이는 평생 집 한 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서울에서 집 한 채를 마련하려면 수십 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할 정도로 집값이 치솟아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계층 이동을 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2017년 2월 여론조사업체 입소스Ipsos는 뉴욕, 도쿄, 마드리드 등 세계 25개 주요 도시에 사는 청년18~24세들을 대상으로 성공 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청년들에게 원하는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 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고, 긍정적으로 답변한 비중이 서울 은 고작 38%로, 25개 도시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이런 식으로 부의 세습이 고착되어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야심찬 도전자가 나오지 않으면 경제는 점점 더 활력을 잃어갈 것이다. 또한 부유층의 자녀도 별다른 도전을 받지 않고 쉽게 부를 거머쥘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면 자연히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 노력이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면 저소득층이든 부유층이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의 대물림이 고착 화되어 경쟁 자체가 실종되면 경제 전체를 몰락의 길로 이끌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5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은 5.32%였지만 노무현 대통령 때는 4.48%로, 이명박 대통령 때는 3.2%로, 박근혜 대통령 때는 2.98%로 떨어졌다.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들이 저성장에 돌입했던 절차를 그대로 밟고 있다.


  누구나 꿈을 갖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던 시대가 저물어가면서 우리 경제는 빠르게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다. 인구구조의 악화를 막 고 다시 역전의 꿈을 불어넣을 특단의 대책을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 경제는 성장을 멈추고 일본처럼 수십 년간 장기불황을 겪거나 이탈리아처럼 역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추락하는 한국 경제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 무너진 '역전의 사다리'를 바로 세우는 것만이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p.152

한국 경제의 위험을 알리는 시그널, '쏠림'

  역동성이 사라진 한국 경제의 심각한 증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쏠 림이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투자 수익이 전반적으로 낮아지자 경제가 한 곳으로 몰리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역동성이 사라진 것이라면 '쏠림'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인 셈이다.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분야가 수출이다.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2011년 이후 급격히 약화되어 특히 2015년에는 수출이 8%, 2016년에는 6% 급감했다. 수출에만 매달렸던 우리 경제에서 수출마전 둔화된 것은 총체적 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 못하고 중국에만 매달렸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수출의 26%를 대중국 수출이 차지 한 정도로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새로운 시장 개척 대신 추국으로의 쏠림을 택한 대가로 중국 경제가 조금만 흔들려도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정도로 연관성이 커졌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중국 경제가 세 마리의 회색 코뿔소 때문에 급격히 둔화되거나 심지어 위기에 빠질 경우 중국 경제에 쏠려 있는 우리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수출의 문제는 반도체 쏠림이다. 다음 그림을 보면 2015 년부터 2016년까지 급감했던 수출이 2017년과 2018년 2년 동안 다 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12대 주력 산업 가운데 수출이 눈에 띄게 늘어난 품목은 반도체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나라의 2년 수출 호황은 전적으로 반도체의 슈퍼사이클 덕분이었다.

반도체 호황 덕분에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원화 가치 강세가 이어졌다. 인도나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다른 신흥국 통화 가치가 3분의 2 수준으로 추락할 동안 우리 원화는 유독 견고한 흐름을 보였다. 이 같은 원화 강세로 반도체를 제외한 철강, 조선, 자동차 등 다른 주요 수출 품목의 경쟁력은 크게 약화됐다.


  반도체산업이 세계 최고라는 점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반도체산업은 철강이나 조선, 자동차 등 다른 주력 산업과 달리 아 무리 수출이 잘되어도 고용 창출 효과가 미미한 편이다. 반도체산업 의 경우 최종 산출액 10억 원에 대해 직접적으로 창출되는 고용 효과 를 나타내는 취업 계수는 1.4명에 그친다. 우리나라 전체 산업 평균 인 6.6명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해외 부품에 대한 의존도 가 높아 국내에 남기는 부가가치가 크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산업에 비 해 경제 전반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더구나 수출의 대부분을 반도체에만 의존하는 형국이라 반도체 산업의 상황에 따라 우리 경제까지 흔들릴 수 있다. 물론 반도체 호황 이 끝나 수출이 줄어들면 언젠가 원화 가치가 하락해 다른 산업이 수출 경쟁력을 회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 쏠림이 해소되어 타 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통화 가치가 요동치며 큰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내수 경제에서도 또 다른 쏠림 현상을 찾을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이 건설 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해왔다는 점이다. 2016년 역대 최악이라고 할 만큼 급격히 수출이 감소했지만 경제 성장률은 2.9%로 비교적 양호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 제에서 수출 급감에도 불구하고 성장률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성장률 하락을 막아낸 특효약은 바로 건설 경기 부양책이었다. 정부가 온갖 부동산 부양책으로 천문학적인 건설 투자를 유도했다. 2016년 당시 경제 성장에서 건설 투자 기여율이 50%에 육박했다. 즉 경제 성장의 절반 가까이가 건설 투자 덕분이었던 셈이다. 만일 건설 투자가 없었다면 2016년 성장률은 2%도 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 럼 겉으로 드러난 성장률뿐만 아니라 산업별 구조와 쏠림 현상까지 정확히 파악해야 경제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또 다른 쏠림은 자영업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중은 2017년 기준으로 전체 취업자 중 25.4%나 된다. 4명 중에 1명이 자영업에 종 사하는 셈이다. 이 같은 자영업 비중은 그리스나 터키, 멕시코, 칠레에 이어 5위에 이르는 수치다. 관광대국인 그리스나 터키의 경우 자영업 비율이 높은 게 당연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산업구조가 고도화된 영업 비율이 높은 게 당연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로 자영업 비중이 높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높은 자영업자 비중은 일그러진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의 단면을 보여준다. 수출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는 기업과 대기업의 양극화를 가중시켰고 대기업 임금이 중소기업의 1.7배나 될 정도로 노동시장을 양분했다. 이 때문에 한 번 노동시장 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예전처럼 '괜찮은 직장'으로 재취업이 어려워 자영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외환위기 이후 평생 고용이 무너지고 퇴직 시기가 빨라지면서 1차 베이비붐 세대가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을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이 크지 않은 세대인 만큼 퇴직금만으로 길어진 노후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쏠림 현상은 우리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일그러진 단면이다.

  네 번째 증상은 가계 자산의 부동산 쏠림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가구 순자산의 80~90%를 부동산에 올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에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 부동산 광풍이 또다시 일어났다. 이렇게 부동산 쏠림이 강해진 이유는 우리 경제에서 역동성이 사라져 더 이상 투자를 해도 부동산 말고는 돈 벌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산업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경제에서는 시중 자금이 혁신 기업이나 신산업으로 몰려가지만 혁신성과 역동성이 사 라진 경제에서는 돈을 벌 곳이 부동산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성장률이 둔화되면 처음에는 부동산으로 돈이 몰려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만 들지만 결국 성장률 하락이 굳어지면 치솟아 올랐던 부동산 가격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1980년대 일본 경제가 플라자 합의 Plaza agreement 이후 수출 경쟁력을 잃어 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어버리자 일본 정부는 내수 산업 을 일으키겠다며 막대한 돈을 풀었다. 이미 역동성을 잃어버린 일본 경제에서 풀린 돈은 대부분 부동산으로 몰려들었고 도쿄 23구의 부동산 가격은 불과 2~3년 만에 2배 넘게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1989년 버블 붕괴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그동안 올랐던 부 동산 가격을 고스란히 반납하게 됐다. 

  이미 성장률이 정체되고 더 이상 돈을 벌 곳이 사라진 경제 환경에서 부동산 가격만 오르는 것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한 일시적 인 쏠림 현상에 불과하다. 성장을 동반하지 않은 부동산 가격 폭등은 마치 촛불이 꺼지기 직전에 잠깐 타오르는 불꽃과 같다. 소득 증가와 경제 성장을 동반하지 않은 과도한 부동산 가격 급등은 '쏠림 현상의 시그널로 보고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p.202

  현재 해외에 주식을 투자할 만한 나라는 크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가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이미 저출산·고령화가 시작된 선진국에 대한 투자는 우리나라와 차별화된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선진국 중에서는 장기적으로 미국이 투자 매력이 큰 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다른 선진국과는 다른 것일까?

  첫째, 미국도 생산연령인구가 줄고는 있지만 그 속도가 매우 완만 하며 워낙 이민자가 많기 때문에 그 효과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이민자 중에는 과학 Science, 기술 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 Math을 뜻하는 STEM인재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미국의 생산성을 끊임없 이 자극하고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둘째, 미국이 여전히 기술을 선도하면서 세계 표준을 장악하고 있 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공장이 완전히 자동화되면서 기업들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리쇼어링 Reshoring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기술과 제조를 모두 도맡아 할 수 있는 나라로 거듭나고 있다.

  셋째, 미국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갖게 된 지 벌써 70년이 넘어가면서 미국은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활용해 정교한 금융통화 정책으로 다른 나라의 부를 끌어들여 자국의 부로 바꾸는 기법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p.204

  이런 나라에 투자할 때 가장 큰 위험요소는 환율과 정치적 안정성 이다. 신흥국의 경우에는 경제가 한창 잘나가더라도 정치 불안으로 인해 경제가 악화되고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많다. 또한 주가가 아무리 올라도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인도의 주가다. 인도는 젊은 인구가 많고 놀라운 경제 성장이 지속되는 신흥국답게 주가지수가 끊임없이 상승해 2009년 에서 2018년까지 142%나 올랐다. 만일 2008년 말에 인도의 주가지 수에 투자했다고 치자. 단 10년 만에 142%라는 놀라운 수익률을 누릴 수 있었을까?

  이런 수익률을 온전히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도 루피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2008년 1루피에 29원에서 2018년 말에는 16원으로 거의 반 토막 가까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0년 동안 142%란 놀라운 수익률을 원화로 환전하면 33%로 낮아진다. 같은 기간에 우리나라 주가에 투자한 것보다도 못한 수준이 되는 셈이다.

  물론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환 헤지 Hedge 상품에 투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도처럼 변동성이 높은 통화를 헤지할 경우에는 그 비용이 너무 커서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불러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신흥국에 투자할 때에는 그 나라의 환율 변화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베트남도 최근 인기 있는 투자처로 떠오르지만 과거 베트남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동đông화 가치가 끝없이 떨어져 큰 피 해를 입어야 했다. 달러에 대한 동화 환율은 1986년 1달러에 23동에 서 2018년에는 2만 3천 동으로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달러 대비 동 화 가치가 32년 만에 1000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이처럼 베트남 동화 가치가 빠르게 추락한 탓에 과거 베트남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투자자가 한둘이 아니다. 

  2006년 당시 베트남 주가가 폭등을 시작하자 수많은 투자자들이 열을 올리며 베트남 펀드에 가입했다. 마치 한강의 기적처럼 베트남 주가가 끝없이 고공행진을 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베트남 동화 가치가 폭락했다. 우리나라 원화 가치는 위기가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회복됐지만 고율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베트남 동화는 그렇지 못했다. 주가 하락과 통화 가치 하락의 이중 폭탄을 맞으면서 투자한 원금의 5분의 1토막만 간신히 건진 경우까지 있었다.



p.208

  부동산 불패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달리 부동산 수익률이 생각보 다 저조한 것이 의아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 중에는 은행 예금보다 부동산을 활용한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의 고수익 비결은 집값 상승률이 주가 상승률이나 채권 수익률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 아니라 전세를 끼고 사는 레버리지 투자 덕분이었다. 전세를 끼고 부동산을 살 경우 전세가율이 집값의 70%라고 가정하면 1983년 이후 30년 동안 부동산 투자 수익률은 1,000%까지 뛰어오른다. 또 집은 주식과 달리 환금성이 떨어지는데 다가 거래비용도 커서 한 번 사면 좀처럼 팔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장기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아 부를 축적하는 데 더 유리했다. 

  앞으로 저성장·저수익 기조가 고착화되면 일본처럼 채권 수익률 은 물론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수익률도 과거보다 훨씬 낮아지게 될 것이다. 채권 수익률이 낮아진다는 것은 채권 가격이 올라간다는 뜻 이다. 따라서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기 직전 채권에 투자하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



p.242

안전자산금, 언제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금은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와 경쟁하는 대안 통화로서 특성뿐만 아 니라 실제 소비되는 귀금속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금값은 이 2가지 특성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아 결정되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대안 통화로서의 특성이 더 커진 상황이다.

  금값은 금리에 큰 영향을 받는다. 금은 엔화와 같이 이자가 전혀 없기 때문에 금을 오래 보유하면 은행에 돈을 예금하는 것에 비해 기 회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의 금리가 오르 면 금값은 떨어지고, 금리가 낮아지면 금값은 상승한다. 

  금값은 또 달러화 가치와 반대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즉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금값이 떨어지고 달러 가치가 내려가면 금값은 상 승한다. 그래서 달러 가치가 뿌리째 흔들리거나 달러에 대한 불신이 커질 때마다 금값이 폭등해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미국의 경제가 흔들리면서 불안감이 커지자 금값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금 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연준이 천문학적인 양적완화를 시작하 자 달러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금값은 더 빠르게 치솟아 올라 1트로이온스약 31.1g에 1,8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그런 금값이 다시 하락세를 보인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로존 더블딥 위기가 끝난 2012년 하반기부터였다. 2015년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금리 인상을 시작하자 금값은 1트로이 온스에 1,060달러 선까지 급락했다. 그 뒤 2016년 이후에는 미국이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점을 높여가며 2018년 까지 안정세를 보였다.

  지금까지의 금값 흐름으로 볼 때 미국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금 리 인하를 시작하는 순간 금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경기 둔화가 가시화되면 금리 인하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여기에 경기 불황에 대한 우려로 주가지수까지 하락해 위험자산에 대한 매력이 감소하면 금값을 더욱 자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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