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흑백요리사를 보며 만약 중국의 숏드라마를 요리에 비유하면 어떤 것과 비슷할까? 재미있는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머릿속에 많은 음식들이 떠올랐지만 이것저것 다양한 방면을 놓고 생각해보니 아마 마라탕과 제일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훠궈 아님)
2. 먼저 즉흥적 소비와 감각적 충족 면에서 비슷한 것 같습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에 큰맘 먹고 예약해서 방문하는 파인다이닝이 아닌, 그냥 점심시간에 매운 게 땡겨서 먹는 마라탕과 숏츠 보다가 눈에 띄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결제해서 보는 숏드라마. 깊은 서사나 복잡한 플롯 대신, 순간의 임팩트로 승부를 보고, 다 보면 그만인 숏드라마와 정교한 플레이팅이나 미슐랭의 완성도가 아닌, 그 순간의 얼얼한 맛으로 승부하는 마라탕. 심오한 기획의도나 예술성보다는 당장의 감각적 만족을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소비되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죠! (둘 다 안 먹고 안 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유사...)
3. 제작과정과 접근성의 측면에서 보면 마라탕은 파인다이닝처럼 수년간의 셰프 경력이나 고가의 주방 설비 없이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숏드라마도 마찬가지로 기존 영화/드라마가 요구하는 거대 자본이나 수개월의 제작기간 없이도 제작이 가능합니다. 마라탕에선 셰프의 개성보다 마라소스의 품질, 식자재의 신선도, 매장의 접근성이 중요하죠. 숏드라마도 마찬가지로 감독의 미학보다는 대본의 임팩트, 배우의 매력, 마케팅 전략이 성패를 좌우합니다.
4. 현금흐름 구조도 비슷한데요. 중국의 마라탕 대표주자인 장량/양궈푸는 투자 없이 현금흐름만으로 성장했고, 중국의 주요 숏드라마 플랫폼들도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회수 주기가 빠르며, 규모의 경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죠.
5.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숏드라마 업계 투자는 기존 콘텐츠 산업의 프레임으로 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마라탕 투자할 때 파인다이닝 셰프의 이력보다 마라탕 비법 소스 그 자체나 공급망 관리, 프랜차이즈 경험을 보는 것처럼, 숏드라마도 감독의 필모그래피보다는 마라 소스(?)를 잘 갖춘 곳에 투자를 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대본과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초기 투자보다는 검증된 시스템 이후의 확장 자금이 더 효율적일 수 있고요.
6. 지금 중국 숏드라마 업계는 마라탕이 한국 요식업계를 공략했듯 전 세계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는 마라탕을 만들지 떡볶이/불닭볶음면을 만들지 고민하는 지점인 것 같고요. 여기서 어떤 전략으로 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겠지만 마라라는 본질을 먼저 꿰뚫어본 후, 마라엽떡 마라불닭 등 한식을 서포트하는 또 하나의 소스로 승화시킨 요식업의 사례를 응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즉 중국 숏드라마의 그 핵심을 잘 잡아내고 우리가 잘하는 영역에서 재구성하는 방법 말이죠. 마라엽떡의 케이스를 보면 꽤나 유의미한 결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라탕도 중국이 원조라지만 저는 중국 마라탕보다 광화문역 라향각이 더 맛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