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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전일생 Nov 21. 2021

지금 이 순간이 쌓여 내가 된다

사람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참으로 불편한 진실이다.

사람의 성격이, 인생이 그렇게 단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도 없고

그리 쉽게 바뀔 수도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이혼 서류를 법원에 던지고 집을 나왔음에도 사실은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이제 곧 다가올 대선. 나는 항상 그다지 관심없는 척 후보들을 관찰하고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들을 거른다. 그리고 남은 후보들 중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투표를 하곤 했다. 그건 아마도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거다. 그냥... 최선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최악의 선택을 피하자는 마음으로. 나의 이혼도 마찬가지이다. 최선의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최악을 피하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막상 첫째만 데리고 나오자 육체적인 노동이 확실히 줄었고 그 시간은 나의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한 시간으로 지난 일을 회상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기도 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보고자 오은영박사처럼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글이나 영상을 찾아보기도 한다.



사실 나는 굉장히 불완전한 인간이다. 알고있다.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 나온 초아의 영상을 보다가 또 울컥해진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래요. 완벽주의자이긴 한데 기대에 못 미칠것 같으면 하지않고 미루는거죠"



나도 그랬다.

뭐든 시작하는데 있어서 '동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마음이 동하는 일은 시작도 진행도 수월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한없이 하기가 싫어지고 시작을 하더라도 그 결과는 꼭 그 사실을 반영하듯 형편없었다. 요리를 예로 들면 먹는 사람들이 맛있어 한다거나 내가 좋아하고 먹고싶은 음식을 할 때와 그저 의무감에 하는 음식을 할 때 그 맛이 천지차이다. 천천히 즐기며 하는 요리와 급하게 하는 요리가 차이나듯이.


부정적인 의견을 접하면 더더욱 하기가 싫어졌다. 음식취향 자체가 너무나도 다른 시댁에서 내가 요리를 한다는 것은 정말 싫은 일이었다. 아이들이야 엄마의 음식이라 맛있게 먹어주었지만 어른들의 경우는 그러기가 힘들었다. 워낙에 예민들했고 어떤식으로든 표현이 되고 전달이 되었다.


예능 삼시세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하루 세끼를 만든다는 것이 녹록한 일은 아니다. 정말 준비해서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하니까. 그런데 그 일이 재미가 없고 하기 싫은 일이라니. 내 아이와 남편외에도 챙겨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렇게 부담일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100미터 달리기는 잘 했지만 장거리 달리기는 힘에 부쳤다. 일년에 몇 번만 보면 되는 관계에서는 잘 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 순간만 넘기면 된다라고 생각하면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고 노력할 수 있다.그렇지만 시도때도 없이 부딪히는 환경에서는 너무 힘든 일이 된다. 대학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집안일은 네거티브한 일이다. 잘 하면 티가 안나고 안 하면 티가 나는 일이다' 라고 하셨는데 이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잘 하려고 노력을 해도 내가 한 노력은 티가 나지 않고 그것이 default가 되어버리니까.



'그냥 나와서 살면 안돼?' 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정말 다 같이 살고 있으니 그 곳은 '내 집'이라는 생각이 없었고 애정도 없었다. 남편에게도 넌지시 이야기한 적은 있었으나 결국 그것보다 우위에 있는 요인들은 많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편의 가족의 범위와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날 에일리의 고민을 듣다가 진짜 나랑 똑같은 사람이 여기있구나 싶어서 펑펑 울었다. 오은영박사님은 에일리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냐를 물었고 에일리는 없다고 했다. 힘들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가서 진단만 받고 더이상 가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와의 관계는 어땠는지 묻는다. 문득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하고 또 지금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다. 정말 벼랑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거라고 합리화하면서 번아웃되어버린 나를 위해서 나왔는데 아이들을 생각하니 혼란스럽다. 우리 아이들도 작은 경험들이 쌓여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자라겠지.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최선일까. 항상 최악을 피해왔다면 이번에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할 때가 왔다.


그 결과는 또 십년은 지나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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