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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전일생 Nov 20. 2021

관계는 언제나 쌍방향이다


이혼 숙려기간. 큰 아이만 데리고 집을 나온 나는 어쨌든 물리적인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물론 한번에 딱 정리가 될리가 만무한 과정이고

아이 둘을 남겨놓고 나온 상황에서 마음이 편할리는 없다.

그런 불편한 마음이 나를 집어삼키게 놔두기 싫어서 기회가 될 때 친구도 만나고 산책을 하기도 한다.


아이가 다니는 병원을 옮기는 것도 다니던 천문대의 수업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단칼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들 투성이다.

그렇게 나는 일산에서 오산까지 왔다갔다해야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


조발사춘기. 혹은 성조숙증 주사를 맞으러 동탄에 갈 일이 있었는데 친구가 그 날 백신 휴가라며 밥이나 먹자고 연락이 왔다. 너무나 고맙게도 딸아이 병원을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아직 뚜벅이로 차가 정말 필요한 경우 플랫폼을 이용해 차를 빌려타고 있는 나에게는 거절할 수 없이 너무 매력적인 제안.


그렇게 우리 셋은 동탄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걸려온 남편의 전화.

내 감정을 건들이는 말을 받아 줄 수 없었기에 아이들 문제나 일 문제가 아니면 통화를 하지 않는 상태라 일단 받았다.


이야기가 좀 길어지자 결국 우리는 서로 감정이 상한채 전화를 끊었고 운전하던 친구는 남편이냐며 말을 건넨다.


처음엔 누군가했는데 이야기하는거보니 남편같아서…

대화가 길어지면 항상 이모양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묻는다.


‘그런 상황이면 왜 그런지 물어봐야하는거 아니야?’



맞는 말이다.

우리 소통의 문제는 남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껄끄러운 말이나 내 주장을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편이다.

일을 구하고 있는 지금 면접에서 당당하게 연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당연히 상대방과 이야기해서 풀어야하는 문제임에도 말을 꺼내기 앞서 많은 생각과 걱정이, 말이 되어 나오는 것을 가로막는다.


‘넌 확실히 공대생같은 면이 있어’


애매모호하고 화려한 수식의 말을 하지 않는다. 좀 더 심플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어쩔 때는 너무 감정이 배제된 이야기만 늘어놓기도 한다.


왜일까.

어떤 연유에서든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아마 내 감정을 내비치고 그게 수용되었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입을 닫았을까.

아님 묘한 나의 고집이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걸까.

혹은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쌓여서 드러내놓기가 무서웠을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결혼을 하고 상황이 바뀌면서 그런 특징이 더 도드라지고 불거져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



문제해결능력.

특히 사람사이에 명확하게 맞다 틀리다를 논할 수 없는 문제에서 상대방과 조율하는 것이 나는 너무 힘들다. 차라리 어려운 수학문제가 더 쉬울정도로.

이 능력의 부재는 온전히 나의 문제이긴하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면 내가 그것을 헤쳐나가는 데 힘이되고 도움이 되는 사람과 함께 하고싶은 건 너무나 당연한 바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편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정치적인 사람이다. 아니 시댁식구들은 대체로 그렇게 느껴진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 이익을 잘 챙기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이나 상황을 잘 관철시킨다.

받아들이는 상대방이 속으로는 맘에 들지않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잘 이끌어간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내 주장이나 감정은 존중받지 못한 채 억눌린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마음의 상처는 계속 쌓여가고 풀 길은 없었다.



그게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내가 견딜 수 없는 상황이고 나를 챙기기 위해 그곳에서 나온 것이다.



학생때도 이토록 치열하게 나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 30대 후반인 지금에 와서야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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