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중2 시절 처음으로 파란 화면의 통신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밤마다 채팅방을 전전했다. 한 달 정도가 지나면 다들 시들해지고 사람들이 바뀌었다. 일명 물갈이. 새로운 사람과 처음부터 다시 나를 소개하고 알아가는 건 참으로 번거로운 일인데 그런 사람들이 한 달 만에 떠나버리는 건 어찌 보면 참 허무했다.
그리고는 당시에 빠져있던 판타지 소설 동호회가 있기에 들어가서 동호회 사람들과의 채팅을 시작했다. 지역은 다들 멀었지만 비슷한 취향을 공유한 덕인지 그들 중 몇몇의 인간관계는 꽤나 오래 유지가 되었다. 물론 오프라인으로 만남이 있을 때도 있었기에. 그렇게 대학시절까지 연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싸이 시절.
그렇게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동호회를 든다. 사진에 관심이 생겨 함께 취미를 공유하기 위해 사진동호회에 가입하고 출사도 열심히 다녔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달랐지만 계속 추억을 쌓고 공유해갔다.
결혼 후 육아와 가사를 하면서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냈는데 당연히 교류하던 관계들과도 연락도 뜸해지고 그냥 그리 흘러갔다.
그리고 이혼 후.
친척들과의 만남도 부담되고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면 사실을 오픈하지조차 않았다. 당장에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산더미인데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설명하는 게 사실 지쳤었다.
그럼에도 외로움이 짙은 나는 또한 누군가와의 소통을 갈망했다. 친한 친구가 없다기보다는 나의 힘듦을 그들에게 지워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다. 친구가 질리지 않을 정도로만 이야기하기.
뭔가 사람들과 대화하며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도 잘 추스러지는 나는 결국 앱을 선택했다. 평소에 해오던 소셜 앱은 더 이상 업로드가 부담이었다. 그리하여 가까운 동네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만남 앱을 깔았다.
그냥 호기심이었다. 정말 세상에는 많고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다. 무용하게 보낼수록 시간은 잘 흘러갔다. 그곳은 여타 다른 소개 앱에 비해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본성과 외로움과 현실도피와 자기 자랑도 난무한 곳이었다. 이틀 만에 바로 적응을 마치고 나도 그 익명성 뒤로 숨었다.
오프라인으로 동네 친구를 사귄다는 환상은 버렸지만 나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써 글을 쓰고, 타인의 감정의 민낯도 보면서 뭔가 해소되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기대를 버리고 나니 재미가 있어졌다. 마치 클럽에서 원나잇 상대를 고르듯이 감정적 원나잇 상대를 찾았다. 그냥 호기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그걸로 끝. 정말 일회용 혹은 인스턴트 같은 느낌이었다.
얼굴이나 나이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써놓은 글들을 보고 호기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었다. 뭐 대부분은 한잔 하실래요, 드라이브 갈래요 라는 저급한 의도가 분명했는데 어느 날 너무 친근하게 대화를 거는 이가 있었다.
37살 30여 킬로 떨어진 곳에 사는 남자애.
18살로 설정이 된 나에게 나이를 묻길래 써놓은 글에 20대 추억의 노래 리스트도 써놨겠다 당연히 30대라고 생각하겠지 싶은 마음에 아홉수라고 했다. 에이 아홉수가 어디 있냐며 그래서 안 좋은 일이 있었냐 묻지만 나는 짐짓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렇네요 했다.
뭔가 다르다 이 아이.
급하게 만남을 원하지도 않고 너무 사적인 질문을 앞세우지도 않아 정말 편하게 대화를 이어갔는데 알고 보니 진지하게 결혼이 하고 싶은 친구였다. 돌싱이라는 말에 일찍 결혼했냐고 하길래 그렇다 했다. 그렇게 결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나보다 어린 거 아니었어요?’ 한다.
아 순간 나를 29로 생각했겠구나. 의도한 건 아닌데 싶어 바로 이야기를 했다. 순간 이 아이가 나를 연하로 봤다가 연상에 돌싱인걸 알았으니 이제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해졌다. 실은 뭔가 목적하는 바가 있었다면 이대로 이 관계는 끝이겠지.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의 감정교류는 어렵겠다 생각했다. 그럼 내가 먼저 정리하는게 쿨하다 생각했고 넌 좋은 사람이니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자기가 긍정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그 에너지 다 가져가면 안 되잖아하니 받아서 본인에게도 달란다. 마음 약해지는 멘트.
사실 내가 제일 원하는 부분이 건드려진 거지.
그냥 그렇게 카톡으로 넘어왔다.
보통은 대화를 걸어오면 상대방이 취하는 스탠스에 따라 나도 맞받아치곤 한다. 싸가지없으면 나도 싸가지없게, 장난을 좋아하면 나도 장난으로, 어버버 하는 사람이랑은 애초에 재미가 없으니 거른다. 그런데 이 아이는 너무 다정한 캐릭터다. 뭔가 꽁냥 거리는 느낌은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인가 싶어서 혼란스럽다.
너무 가지 않으려고 노력은 한다. 그런데 한 번씩 훅 들어온다. 마음에 살랑거리며 봄바람이 스미듯이. 카톡 하는 나를 보며 ‘엄마도 넷상 친구가 있어?’ 묻는다. 어어 그럼.
위험해. 과연 무슨 생각일까.
떠보려고 해도 잘 안된다. 생각보다 거울 같은 아이다. 조금 불투명한 유리라면 짐작이라도 갈 텐데 어렵다.
내 친구들에게 나의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마음처럼 이 아이에게도 짐을 지우고 싶지는 않고 그저 그냥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좋다. 그 아이가 정말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면 좋겠다는 응원의 마음과 계속 이렇게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그게 어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