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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변호사 Violett Oct 09. 2023

미국변호사 자격 취득 후 커리어패스

미국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요즘 한국에서 미국 변호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한국 변호사 시험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합격할 수 있다거나 회사와 병행할 수 있다는 얘기가 많이 퍼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진로 고민이 해결되는 것도, 갑자기 처우가 엄청나게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미국 변호사가 되는 과정에 대해 기록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미국 변호사가 되었기 때문에 장점만큼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사람마다 기존 경력이나 역량에 따라 진로는 다를 거라 일반론을 쓰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학원이나 학교에서는 잘 알려주지 않는 현실 얘기를 쓰고 싶었다. 준비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으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커리어패스를 먼저 충분히 고민한 후에 준비하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커리어 목표가 있다면 덜 헤매고 더 빨리 가까이 갈 수 있을 테니까.




미국 변호사가 되는 정규 코스는 미국 로스쿨 JD(3년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시험을 보는 것인데, 나처럼 한국에서 비학위 과정을 거치고 시험을 보거나 LL.M.(1년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시험을 보게 되면 향후 진로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 로펌 또는 미국에서 사내변호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미국 로스쿨 JD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 비학위과정을 수료하거나 미국 LL.M. 과정을 졸업하고서 바로 미국 로펌이나 사내변호사로 일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 로펌을 개업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미국에 인맥이나 연고가 있어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한국에서는 어떨까. 사실 한국 로펌에 가는 것도 쉽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내변호사는 기존 경력에 따라 그래도 도전해 볼 만한 것 같다. 기존에 관련 직무 경험이 없더라도 나이가 적다면(한국 회사는 나이를 보니까) 사내변호사로 이직하거나 같은 회사에서 법무팀으로 전배도 가능하다.


만약 기존에 법무 또는 계약관리 경력이 있었다면 사내변호사 포지션으로 이직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미국 변호사 자격증 취득 년을 일했는지를 경력으로 보기 때문에 기존에 법무 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외국계 기업 채용공고를 보면 PQE(Post Qualification Experience, 자격증 취득 후 경력) 몇 년 이상이라고 지원자격을 한정한 것을 볼 수 있다. 국제법무 경력이 없다면 어차피 일을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차가 조금 깎이는 거라면 이직해서 일을 처음부터 배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직이 아니라 같은 회사에서 법무팀으로 옮기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긴 하다. 실제로 옮긴 사람들도 봤다. 그 시기에 법무팀에 자리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데 그럼에도 제일 중요한 것은 그 팀에 잘 적응하고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지인 것 같다. 스펙이 좋은 사람이야 외부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외부 채용은 애티튜드 검증이 어려운 것이 단점인 반면, 사내 전배를 통한다면 회사를 얼마나 잘 아는 사람인지, 팀원들과 잘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알고 뽑을 수 있을 테니까.




나의 경우엔 30대고 이미 법무팀 재직 중이라 사내 전배는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사내변호사 포지션으로 이직이 가능하긴 했다. 현재까지 쌓은 경력을 포기한다면 타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 사내변호사로 가서 국제법무 업무를 다시 처음부터 배우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로펌에서는 보통 JD 졸업생을 채용하기 때문에 기회가 없었고, 싱가포르나 홍콩과 같은 해외 취업은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


옵션은 둘 중 하나였다. 경력을 포기하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까지 경력을 유지하고 있던 곳에서 경력 개발을 시도해 볼 것인가.


결정에는 나의 성향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지금까지 쌓은 경력을 모두 포기하면서 다시 1년 차로, 신입사원으로 가는 것은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물론 신입 사내변호사는 신입사원보다는 잡무를 도맡아서 한다거나 불합리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비교적 낮긴 하겠지만 그래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신입 생활이 어떨지 아는 채로 쉽게 새로 시작하기는 어려웠다.


현재 회사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종종 있는 국제법무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고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살려서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상사로부터, 일로부터 배울 것이 아직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직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 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걸 모두 배우거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면, 또는 나름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지금 같은 업무환경이 달라진다면, 그땐 준비를 해 볼 것 같긴 하지만.




미국변호사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현실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변호사 자격증 없이 법무, 컴플라이언스, 계약관리 직무 등 법무 관련 직무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특히 법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에겐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자격증 없이 법무 직무에서 일하면서 느끼고 있을 한계를, 자격증을 따고 나서 일할 때엔 더 이상 느끼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법무 관련 직무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미국 변호사가 되고 나서 어떤 커리어패스를 가져가고 싶은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고 도전한다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 그때서야 진로 고민하며 방황하는 시간을 줄여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시험 공부할 때에도 원하는 미래가 확실하니까 덜 흔들리면서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든 없든 자신이 원하는 미국변호사의 이상향이랄까 모습 같은 게 있다면 그게 생각보다 강한 동기부여가 되어서 실제로 공부할 때 꽤 많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엔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뉴욕 월 스트리트에 있는 로펌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 뉴욕 Southern District Court에 간다고 Yellow Cab에서 내려 바쁘게 뛰어가고 있는 나, 또 Yellow Cab에서 서류를 보며 Big Deal 관련 급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나, 그리고 회의실이나 세미나에서 변호사님이라고 불리고 있는 나와 같은.. 말이 되든 안 되든 매우 구체적인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공부했다. 그리고 마지막의 나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의 나도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버리지 않고 있고.



*주의: 기존 경력과 역량 등에 따라 진로는 무궁무진하게 달라질 수 있음, 미국 JD 졸업자는 상기 내용 해당사항 없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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