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국변호사 Violett Oct 03. 2023

초보 리더의 내려놓기 연습

우리의 가치관이 항상 같을 수는 없으니까


리더로 승진한 지 만 1년이 지났다. 고작 1년이지만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고 절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지난한 시간이었다. 실무자에서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마치 다시 신입사원이 되는 것과 같았다. 아는 것이 없어도 당장 새로운 일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상황에 다시 놓였다. 당연하지만 회사에서도, 어느 누구도 어떻게 하라고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고, 혼자서 또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적확한 방법을 찾아나가야 했다.


직속 상사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궁금한 모든 것에 대한 정답을 달라고 하기는 쉽지 않았다. 알고 싶은 것에 대한 정답을 빠르게 찾고 싶어 하는 내가 의지한 것은 결국 이번에도 활자였다.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니까. 어려운 것이 있을 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마다 책의 도움을 받아왔는데, 역시나 리더십 분야에는 이미 좋은 책들이 많이 발간되어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대로 책을 골라 밑줄을 그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대한 수많은 에피소드와 조언들이 넘쳐나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책 외에 HBR(Harvard Business Review), 링크드인, 퍼블리의 아티클도 읽었고 출퇴근길에는 Coaching Real Leaders나 Women at Work와 같은 팟캐스트를 들었다.  


그러나 실전은 이론과는 다른 법. 공부와 달리 리더십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생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곤 했다. 대부분의 아티클에서는 업무 의욕은 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도움이 필요한 팀원을 상정하곤 했는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완전한 솔직함'이 중요하다고 해서 완전히 솔직해보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얼굴과 이름을 감추어야 완전히 솔직해지곤 했다.


기대만큼 잘 되지 않는 상황에 마음만 급해졌고 정말 다시 신입사원이 된 것처럼 실수를 반복했다. 그렇게 1년 동안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내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걸 해야 했었다. 내려놓기였다.  




욕심이 났다. 내가 다녔던 첫 회사와 달리, 현 회사의 업무환경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잡무(커리어에 도움 되지 않는 행정 업무를 낮게 지칭하는 말)가 적은 편이고, 평균 연령이 높지 않으니 다른 부서 사람들과도 편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여성 비율이 높으니 성차별적인 언행도 거의 없었다. 팀원 수가 적어서 일은 많지만 그만큼 업무의 한 부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업무를 더 넓게 경험해 볼 수 있고, 원하는 업무가 있다면 자원해서 직접 추진해 보는 것도 가능했다. 이러한 업무 환경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는 것이니까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욕심이었다. '그들의' 욕심이 아니었다. 이걸 간과했다. 나에게 결핍된 것인데 다른 사람도 같은 결핍이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나의 욕심을 팀원들에게 투영했다. 주어진 업무만 하며 성장할 수 없었던 업무환경을 겪은 건 나였다. 그래서 더 압축성장을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기회가 있을 때 압축성장을 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성장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누구나 성장하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일하고 회사 밖의 시간에 더 집중하길 원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신 포도 기제(Sour Grape Mechanism)가 발동했을 거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커리어 개발을 열심히 할 자신이 없거나 막상 했는데 잘 되지 않을까 봐 커리어에 관심이 없는 척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신 포도든 단 포도든 포도 자체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는 건데.




포도를 좋아하는 사람과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무엇을 좋아하든 그건 선호도의 차이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커리어 개발에 관심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이지 무엇이 더 바람직하냐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나의 가치관과 그의 가치관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의 가치관이 다를 뿐이었다.


이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고 매일 아침 내려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과를 더 내고 싶다면 팀원들이 성과를 더 내도록 하기보다는 내가 더 하는 것으로, 팀원들은 그들의 속도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거라고. 팀원들이 자기 계발을 하든 말든, 내가 자기 계발을 하면 되는 거라고. 압축성장은 내가 하면 되는 것이고 팀원들은 그들에게 맞는 속도로 성장하면 되는 거라고.




"노력이나 성실함 같은 단어를 쓰는 것이 촌스럽거나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열심히 해보자, 성실하자는 말을 쓰면 인간이 우스워지는 시대에도 난 적응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난 늘 자극받고 힘을 얻어왔으니까. 나도 더불어 힘을 내야지, 같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p.167, <태도에 관하여>, 임경선


내가 좋아하는 건 계속 좋아하기로 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나도 덩달아 의욕이 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어도, 이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유형이고 노력과 성실함의 힘을 믿는 '나의' 가치관이니까 나는 계속 좋아하기로 한다.


일에 몰입하며 일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 커리어패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있다. 이것 또한 결핍 때문일까, 오히려 그 마음이 커졌다. 그러면 나도 힘을 더 많이 낼 수 있을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