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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변호사 Violett Dec 11. 2022

서른두 살에 다시 신입생이 되다니

한국에서 미국 로스쿨에 다닐 수 있다고?

이직하고 이 주 정도 지났으려나? 팀장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커피 한 잔 하러 가자고 하시길래 신규 입사자와 하는 뻔한 면담이겠거니 하며 일어났다. 역시나 커리어 패스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미국 변호사에 대해 관심이 없냐는 질문을 하셨다. 한참 진로 고민이 있을 때 "일단 이직하고 생각하자"며 전 직장을 퇴사한 것이어서, 예전이었다면 "내가 어떻게 미국 변호사를 해?"라고 생각하고 말았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미국 변호사"라는 직업이 새로운 탈출구로 다가왔다. 팀장님께서는 퇴사하지 않더라도 회사를 다니면서 한국에서도 미국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간략하게 알려주셨고, 앞으로의 커리어가 막막하기만 했던 나는 그날 저녁 퇴근을 하자마자 리서치를 시작했다. 블로그와 대학원 홈페이지와 네이버 카페 등등 여기저기 흩어진 곳에서 리서치하다 보니 미국 변호사가 되기 위한 대략적인 루트를 찾아낼 수 있었다.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정식 루트를 통하는 것. LSAT이라는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을 보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로스쿨 과정 3년을 거친 후 변호사 시험을 보는 방법. 3년짜리 로스쿨 과정을 마치면 J.D.(Juris Doctor)라는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번째는 한국에서 법학사 취득 후 3년이 아닌 1년짜리 로스쿨 과정을 거치고 변호사 시험을 보는 방법. 1년 과정을 마치면 LL.M.(Legum Magister)이라는 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미국이 아닌 국가에서 법학과를 졸업한 미국에서 법학석사과정을 밟는 경우이다. 번째는 미국 로스쿨 위를 취득하지 않고 일정 학점 이상만 취득한 변호사 시험을 보는 방법. 특정 주에서는 미국 로스쿨에서 일정 학점 이상의 학점을 취득하게 되면 미국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주고 있다. 미국 로스쿨 입학이나 졸업을 하지 않더라도 미국 변호사 시험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중 첫 번째 방법은 회사를 다니면서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에 가야 한다. 한국의 한동대 로스쿨에서도 Executive J.D. 학위를 취득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Full-time Student이기 때문에 퇴사 또는 휴직은 해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의 정석은 미국에 유학 가서 1년 동안 미국 로스쿨에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가지 않더라도 한국 대학원과 미국 로스쿨을 함께 다닌 후 공동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을 통해 LL.M.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한국 대학원 2년 과정과 미국 로스쿨 1년 과정을 모두 거쳐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세 번째는 국내 학원에서 미국 로스쿨 비학위과정을 수강하고 학점을 취득하는 방법이었는데, 금전적인 면과 시간적인 면에서 가장 효율적이었다. 빠르면 1년 안에 과정을 모두 마칠 수 있었고 학비도 거의 반 정도였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직한 회사가 전 직장에 비해 나쁘지 않았고 퇴사하고 3년을 투자할 비용은 나에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첫 번째 방법은 당연하게도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학위 취득 여부와 비용에 차이가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결국 두 번째를 선택하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석사학위라도 남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반이었고, 미국 변호사가 될 것이라면 1년짜리라도 미국 로스쿨 학위가 있어야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반이었다. 금전적인 면에서는 두 배의 비용이 들겠지만 학위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석사 학위에 대해 일정 기간의 연차를 인정해 주는 회사도 실제로 있으니까.


변호사 시험을 보기 위해 LL.M. 과정을 수료하려면 최소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니 아마 사람들은 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당시 답이 없는 진로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새로운 길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국 로스쿨보다 졸업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적었고, 한국 변호사 시험보다 변호사 시험 준비기간도 상대적으로 적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회사에 다니면서 시험에 합격한 사례를 실제로 보았고 그 사람들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과 해보지도 않았지만 일종의 자신감까지 약간은 있었다. 


며칠에 걸친 결정을 하고 나서는 퇴근하고 나서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썼다. 사실 거창한 학업계획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고 회사에서 주간 보고자료를 작성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빈칸을 채웠을 뿐이다. 지금 학업계획서를 다시 열어보니 "Global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법무 실무자로서, 향후 기업 법무 경험과 미국법 관련 지식을 겸비한 국제 법무 전문가가 되어 전문성 있는 법무 컨설턴트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당당한 포부가 쓰여 있다. 심지어 "기업에서 Compliance 제도 및 지침을 수립하고, 새로운 Compliance 영역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여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합니다."라며 지금 하고 있는 Compliance에 대한 내용도 있다. 신기하게도 그때 해보고 싶다고 썼던 국제 계약 검토, 협상 그리고 Compliance업무까지 그 이후로 해 보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도 와닿지 않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멘트일 뿐이었다. 


역시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다. 그렇게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내고 얼마 뒤 대학원 입학 면접을 보았고 합격 통지를 받게 되었다. 서른두 살에 다시 신입생이 되었다. 신입생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학비를 내고 수강신청도 했다. 오티도 하나? 개강파티 같은 것도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저 설렜다. 미국법과 변호사 시험공부에 대한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어져버렸다. 


그러나 나의 원활한 대학원생 생활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그건 코로나19였다. 개강일이 계속 연기되었다. 대학생 땐 그렇게 학교 가기 싫더니 대학원생이 되고 나서는 오랜만에 학교에 간다고 신났는데, 결국 코로나 때문에 화상수업을 한다고 했다. Zoom과 함께 하는 나의 방구석 대학원생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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