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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h Nov 11. 2024

할머니의 사랑에 대하여

지속적이며 크고도 깊은 울림 에너지, 사랑

1.

지난 주말

동생과 함께 외할머니를 뵈러 진주에 다녀왔다.


마지막 할머니를 뵌 것은 2년 전 즈음.

외할아버지 장례식에서 뵈었다.


회사를 다닐 땐

주말엔 쉬어야 한다는 이유로 진주에 간 적이 없었다.

물론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가보다는 외가에

조금 더 내적 친밀함을 느끼는 나이지만,

할머니나 할아버지 그리고 외가 친척분들을

따로 챙기거나 찾아간 적은 없었다.


2.

난 지금도 철이 없지만 어릴 땐 더 철이 없었다.


나는 늘 엄마에게 섭섭했다.

칭찬과 표현을 좋아하는 나는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를

딱딱하게 느꼈고, 다른 친구들 엄마처럼

사근사근 대해주고 표현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소위 엄청 개겼다.

엄마에게 말과 행동으로 많은 상처를 주었다.


나이를 먹고, 독립하고

또 퇴사를 하고 내가 힘든 시절을 보낼 때

도움을 주는 엄마를 보며


비로소 엄마는 내게 표현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 아닌 행동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묵묵히 행동으로 챙겨주는 외삼촌 역시

엄마의 사랑법과 유사하다 생각되어,

다시 한번 나는 나와의 다름을 틀림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음을 느꼈다.)


3.

이번에 진주를 찾아간 것은

외할머니께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서였다.


늘 유쾌하며 동네 핵인싸이신 할머니가

허리를 다치신 후로는

집에서 거의 누워서 시간을 보내시는 데다,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내시기에


시간이 자유로운 지금, 찾아뵙기 딱이라 생각되었다.


4.

할머니께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 찾아간 진주에서,

나는 할머니께 가슴 한가득 사랑다발을 받아왔다.


적절한 표현일 진 모르겠으나,

부모에게 받은 사랑보다 더 깊고 큰 사랑 같았다.


난 부모님께 잘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할머니 그리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껜

사소한 것 하나 해드린 게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몇 년 만에 찾아간 나와 동생을

두 손 벌려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마음.


그리고 핵인싸인

우리 할머니와 나눈 몇 시간의 대화들.


할머니라기보다는 정말 친한 친구와 나눈 대화처럼

너무도 재미있었다.

(주제 : 나- 아기 낳는 법, 동생-남자 만나는 법 등)


5.

할머니껜 퇴사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걱정만 끼칠 뿐.


그래서 일요일 저녁 버스로 올라왔는데,

사실 할머니가 아니라 나를 위해 며칠 더 있고 싶었다.


6.

할머니께 급하게 내려가면서

지난여름, 쪽 천연염색했던 스카프를 챙겨갔다.


핑크 공주님인 할머니가

파란색을 좋아하실까 싶어 가져갔는데,

(엄마 말론 할머니가 파란색을 싫어하신다 했다.)


그럼에도 소재가 좋다고, 좋아해 주시는 할머니를 보며


생각이 짧고 시야가 좁아

내 부모만 내 동생만 챙기며

난 가족을 잘 챙기고 있다 생각한 것

역시 어리석었다 싶었다.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렸어야 했다는 마음과 동시에,


앞으로 할머니도

내 부모라는 마음으로 더욱

잘 대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톡을 보내진 못하지만 읽을 순 있는 할머니께

매일 하나씩 카톡을 남겨드려야겠다 생각했다.


7.

쿨하고 젊고 대장부이신 우리 할머니.


외삼촌의 사법고시를

끝까지 지원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눈뜨고 자는 순간까지

마음이 먹먹하다는 할머니.


허리 수술을 3번이나 받았지만,

죽을 때까지 허리통증은 친구처럼 여겨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고,

매일 허리가 너무 아파 입이 쩍 벌어진다는 할머니.


그런데,

나와 성경이가 허벅지 뒷부분을 주물러드리니

훨씬 덜 아프다는 그 말씀 속에서


5분도 채 안되게 주물러드린 마사지로

할머니는 조금 더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실 수 있는데

그런 5분의 노력도 하지 않고 살아온 지난날들을

반성했다.


받는 사랑의 일부라도 돌려드릴 수 있는 손녀가

되고 싶어졌다.


8.

그리고 할머니께 받은 사랑을 기반으로

서울에서 다시 내 인생을 잘 살아내보고 싶다.


분별력을 가지고

내게 오는 수많은 사람과 상황을 대하고 싶고,


형식적으로 채워나가는 이력서가 아니라,

정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길 원한다.


내가 잘 살아내야

내 기반이 잘 잡혀야


결국 나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을 언젠가 블로그에 남긴 것 같은데,


난 어느새 그 말을 잊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뒤엎은 채

핑계에 숨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진 않나.


할머니의 사랑을 다시 떠올리며 정신을 차려봐야겠다.


사랑 더하기 사랑
파란쪽 스카프를 한 핑크 공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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