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된 나에게 #01
이제 내 삶이 얼추 3분의 1은 지났나 봐. 어쩌면 이미 절반 지나버렸는지도 모르지. 인생이 3부작이라면 1막이 막 끝난 걸까? 아직 특별한 무언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20대의 마지막은 예상했던 것만큼 심란하지 않았어. 찬란한 20대를 보내야 한다는 압박이 없어서 오히려 편안하기도 하고. '20대가 끝나기 전에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해! 안 하면 후회하겠지?' 이런 생각 다들 한 번씩은 하지 않아? 스무 살이 될 때는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마음이 깨끗한 걸 보니, 나는 30대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나 봐.
어릴 때는 서른쯤엔 제법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난 아직도 애 같아. 사실 마음은 점점 더 어려지고 말랑말랑 해지는 것 같기도 해. 중고등학생 때는 툭하면 벌컥 화내는 주제에 뭐든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는데, 정작 제대로 나이 든 지금은 더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 같아. 좋고 싫은 마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혼자서 한참 울고 나서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런 서른 살이 되었어.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스무 살을 넘기고 스스로 돈을 벌어서 생활하게 되면 철없는 친구들도 다들 어른이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고, 사회인 모임을 다니면서 나보다 훌쩍 손윗사람들을 만나보니 별로 그렇지도 않던데? 나이가 몇이든 어른인 사람은 어른이고, 애 같은 어른은 애더라. 싫은 사람을 만나면 '저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고, 따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든 쫓아다녔어. 어쩌면 내 20대는 롤모델을 찾아 헤매는 시기였는지도 몰라.
사실, 어른이 된다는 건 해내는 게 아니라 당하는 일 같아. '아,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순간마다 어렸던 내 모습에서 훌쩍 멀어지는 걸 느꼈어. 처음은 대학교 입학 때문에 집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어. 그전에도 몇 년을 쓰던 방이었는데, 무심코 본 야경이 너무 예쁜 거야. 그때 갑자기 '우리 가족이 한 식구로 다 함께 사는 시대가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다음은 신장 이식 수술을 마치고 이동식 침대에 실려 나온 아빠와 엄마를 봤을 때, 영원할 것 같았던 아빠의 장례식이 끝난 후 서늘한 집에 돌아왔을 때. 그리고 첫 회사를 그만두던 날도.
바깥이 조금씩 차가워지고, 마음은 쓸쓸해지고, 어렴풋하지만 그런 기분이었어. 꽤 오랜 시간 동안 어른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이젠 영영 어른이 되기 싫은 것 같아. 20대의 나에겐 참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안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자라려고 힘냈어. 30대 때도 많은 일이 있겠지만 아이처럼 자유롭고 순수하게, 하지만 마음은 단단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10년이었으면 좋겠다. 마흔 살을 맞이할 때 '아, 그동안 참 재미있게 지냈다'라고 할 만한 30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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