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된 나에게 #02
대학교에 입학했던 열아홉 살부터 술을 마셨어. 물론 그전에도 기회는 많이 있었지만 '아, 어른이 됐다'는 느낌을 아껴두고 싶어서 미뤘거든. 지금껏 약 10년간의 음주 역사 동안 내 술버릇은 몇 번인가 바뀌었지.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진상이 따로 없었어. 친구들에게 그렇게 넋두리를 하고, 울기도 자주 울었으니까. 아직 뭐 하나 제대로 실패해본 것도 없었던 스물다섯 살의 나는 뭐가 그렇게 슬펐을까.
'졸업하고 나면 취직을 하고, 몇 년인가 회사에 다니고. 서른이 좀 넘으면 아마 결혼을 하겠지? 그럼, 그다음에는? 아이를 낳고 나서는?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승진 순서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육아 휴직 후에 확실하게 돌아갈 수 있는 회사에 다녀야겠어. 그러려면 대기업에 가야겠지? 아, 미리 준비해둔 게 너무 없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데, 눈이 어두웠던 그때의 나는 그 길 밖엔 몰랐던 거야.
질문에 질문을 거듭해도 뾰족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고, 나는 결국 영영 꽃 피우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어. 아직 내 꿈이 뭔지도 잘 모르는데 시작조차 하기 전에 끝나버린 느낌이랄까. 계속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던 거지. 마음은 답답하고, 크고 번듯한 회사 들어가기는 역시나 녹록지 않고. 그러니 술에만 취하면 뭘 위해 대학 입시를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왜 비싼 등록금을 4년 동안 냈냐며 울 수밖에.
뒤늦게 준비한 대기업 입사는 문 앞까지 갔다가 결국 실패했고, 다음 공채 시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중견기업 계약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지. 원래 계획이랑 달랐지만 후회하진 않았어. 어쨌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고, 당장 월급이 들어오는 게 행복했고, 눈덩이처럼 커지는 불안함을 더 이상 멈춰 서서 감당하기 싫었거든. 결단력 있는 건지 그냥 겁이 많은 건지 잘 모르겠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어.
사실 지금도 '일한다'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래도 오래오래 일하고 싶은 건 여전히 마찬가지야. 직장인이 되고 나서 2, 3년 후에 친구가 "전엔 결혼 잘해서 전업주부 되고 싶다는 선배들이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젠 나도 그러고 싶어."라고 이야기했을 때도 별로 공감하지 못했어. 회사에 지독하게 시달릴 때에도 일 자체를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단 한 번도 떠오른 적이 없었거든. 어쩌면 난 5년 동안 같은 고민을 하면서도 그냥 생각하기를 미루고 있는 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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