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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Nov 19. 2021

일과 사랑, 그리고 놀이

N차 퇴사자가 번아웃에 대처하는 자세



지옥 같은 번아웃의 골짜기를 또 한 번 넘었다. 정말 많은 걸 쏟아부었던 세 번째 회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짧게나마 휴식기를 가졌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색하다 보니 한동안 잊고 지내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 오랜만에 대대적인 회고 시즌이다. 예전에는 꽤 설레는 마음으로 하던 작업인데, 그새 겁이 좀 많아졌다. 새로운 스테이지에 대한 기대보다는 이전처럼 고생하고 싶지 않다, 상처 받기 싫다는 마음이 더 크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고 꼭 자신을 잘 아는 건 아니다. 삶의 균형이 기울어졌다는 건 알겠는데 명확한 원인은 모르겠고, 해결할 방법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일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이 증상은 번아웃인가, 우울증인가? 원인은 잘 모르더라도 일단 증상을 해결하면 좀 나아질까? 이리저리 찾아봐도 나오는 건 하나같이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한 내용뿐이다.


결국, 내 삶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삶의 어떤 영역에 신경을 더 써야 하는지, 과부하가 걸린 영역은 어디인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증상까지는 자체적으로 해소하고 어디부터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지 어느 정도 기준을 정해두면 편하다. 환절기에 목이 칼칼해지면 미리 감기약을 먹는 것처럼, 마음 건강도 관리한다. 이 모든 결정에 필요한 나만의 프레임워크를 만들려면 먼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 걸까?

세상의 좋은 것을 모두 얻을 수는 없으니, 나에게 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골라야 한다. 삶의 만족도가 높았을 때 내가 무슨 활동을 얼마나 했었고 어떤 부분이 만족스러웠는지를 기반으로 큰 그림을 그려보기로 한다. 이 방법은 에밀리 와프닉이 <모든 것이 되는 법>에서 제안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가를 이해하기에 앞서 왜 이런 활동들이 그토록 성취감이 드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 자신과 우리를 이끄는 힘에 대해 더 잘 이해할수록, 단순히 재정 목표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닌 옳은 결정을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가(연설, 회계, 연구, 일러스트레이션, 상담 등등)를 이해하기에 앞서 왜 이런 활동들이 그토록 성취감(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기 때문에, 문제를 풀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웠기 때문에, 명상에 서서히 빠져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에 등)이 드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 에밀리 와프닉, <모든 것이 되는 법> 61p



즉, 이미 하고 있거나 했었던 행동을 바탕으로 행복의 기준을 도출하는 방법이다.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활동, 오랫동안 꾸준히 해 온 활동,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활동을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간 후 상위 범주로 분류해보았다. 일과 사랑, 놀이라는 세 영역으로 나누었더니 삶의 구조가 가장 잘 보였다. 각 영역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간략하게 정의해보자면 이렇다.



일 / Work

-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

- 내 성과에 알맞은 보상을 기대하고 하는 일들

- 부족하면 도태된다


사랑 / Love

- 나를 가꾸고, 다른 존재와 교감하는 활동

- 하면 할수록 나의 내면이 단단해지는 일들

- 부족하면 공허해진다


놀이 / Play

- 즐거움과 영감을 얻기 위한 활동

- 구체적인 목표나 보상 없이도 꾸준히 하는 일들

- 부족하면 무감각해진다



이 세 영역은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고, 딱 한 영역 안에만 들어가는 활동은 몇 가지 없다. 한 영역에서 키운 관심사는 다른 영역에 영향을 끼치며 서로 시너지를 낸다. 간단히 말하자면 개인 성장의 플라이휠이 된다.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일하는 게 내 꿈이다. 오직 생존만을 위한 회사 생활이 아니라, 재미있고 보람찬 일을 꾸준히 하는 삶을 원한다. 네 번째 회사로 출근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또다시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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