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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이 Feb 06. 2021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차이를 만드는 것은 횟수다.




무카미 하루키. 

내가 아는 그는 '소확행'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고, '상실의 시대'부터 수많은 유명 소설을 쓰는 작가이고, 자신을 소설가이자 러너라고 소개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이름을 오래전 '어둠의 저편'이라는 책으로 만났다. 어둡고 어려운 내용의 소설이라 생각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한참의 여운이 남았던 기억이 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이 긴 제목의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떠올랐다. 몇 해전에 본 영화 '안도 타다오'의 첫 장면에서 안도 타다오가 흰색의 바스락거리는 운동복을 입고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자신이 복싱선수에서 어떻게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됐는지를 말하면서 아침마다 달리기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살면서 만날 일이 없는 유명한 일본인 할아버지 두 사람은 그렇게 내 머릿속에 '러너'라는 이름으로 각인되었다.




하루키는 하와이에서, 뉴욕에서 또 아테네와 일본 곳곳에서 끊임없이 달린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이 2007년이었고, 이 책에 약 20년간 달리기를 했다고 쓰여 있으니 지금도 그가 달리기를 하고 있다면 (분명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30년이 넘게 달리기를 하고 있는 그는 뼛속까지 '러너'다.


이제 막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나에게 하루키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는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해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일정 수준의 기록이 있어야 참가할 수 있는 보스턴 마라톤과 같은 곳에도 당연한 듯 참가한다. 그리고 100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하고 그 후 찾아온 '러너스 블루'를 극복하기 위해 트라이 애슬론(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한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겨울에는 마라톤, 여름에는 트라이 애슬론 대회를 주기적으로 참가하며 세계 곳곳을 누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도 왠지 나의 이 러닝 라이프의 끝에 트라이 애슬론이라는 관문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달리기도 겨우 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언젠가 달리고 헤엄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그 경기에 나도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키는 단조로운 생활패턴으로 유명하다. 매일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 전에 잠에 드는데 아침시간에는 글을 쓰고, 낮 시간은 운동을 하거나 잡무를 처리하고, 해가 지면 느긋하게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하루키는 거의 30년째 이 생활을 이어오고 있고, 작가로서의 삶을 매우 효율적으로 만들어 줬다고 말한다. 


작가가 되기 전 재즈 클럽을 운영했던 하루키는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생활패턴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해가 뜰 때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잠이 드는 그런 생활패턴으로 말이다. 이는 매우 간소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이 되었고,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는 것이 천성과 맞지 않았던 하루키는 그 생활이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해가 진 후 만남을 위한 약속은 거의 거절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나빠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 '조촐한 사치'가 허용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효율적인 이유는 에너지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재즈클럽을 운영할 때는(대면으로 하는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좋든 실든 손님을 마주하고 대해야 했고 이는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의 하루가 시작되지 않은 이른 새벽에는 내가 원하는 것에 원하는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다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 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주위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류보다는 소설 집필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된 생활의 확립을 앞세우고 싶었다.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 65p)





제임스 클리어의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횟수다.' 내가 작년부터 조금씩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새벽 기상이고 또 하나는 달리기이다. 이 두가지는 내게 즐거움을 주고 성취감을 느끼며 계속 하고싶을 때도 있지만 한 없이 피곤하고 하기 싫을 때도 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피곤하고 하기 싫을 때에도 반복을 멈추지 않고 하는 것. 그렇게 횟수를 쌓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루키가 달리기를 하며 하고 싶은 말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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