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뱃살을 먹는 동양의 이상한 나라
우리는 이제 삼겹살을 그만 먹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삼겹살이 비싸면서도 흔한 이유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흔하면 저렴한 것이 시장경제 원리인데 삼겹살은 왜 예외인걸까? 그 이유를 알고 난다면 더 이상 삼겹살의 고소한 맛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삼겹살이 다른 나라에서는 돼지를 도축한 후 버려지는 부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왜냐하면 고기보다 기름이 더 많아서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돼지고기 중 가장 비싸게 팔리는 부위고, 국내 수급량이 모자라서 수입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기름진 돼지 뱃살을 사랑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삼겹살을 이렇게 많이 소비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일본은 돼지고기 소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토양과 수질오염을 염려해 돼지를 직접 키우지 않고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일본에 돼지고기를 수출하는 나라 중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되었는데 주로 수출하는 부위는 돈가스 용인 등심과 안심 그리고 햄용 뒷다리이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기름기가 많은 뱃살 부위가 남는데 그 부위가 바로 삼겹살이 된다.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여러 부위 중 상대적으로 비싼 값에 일본으로 수출되는 부위를 제외하고 남은 삼겹살은 처분을 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시작된 삼겹살 마케팅은 삼겹살 소비 촉진 운동이라는 이름 하에 3월 3일을 삼겹살을 먹는 33 데이로 만들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라는 말도 만들었다. 못 먹고살던 시절의 기억이 있는 베이비 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당시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던 삼겹살은 '고기나 한번 실컷 먹어보자'하며 인기를 더해 갔다. 거기에 휴대용 가스버너가 보급되면서 나들이 메뉴로 삼겹살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고, 결정적으로 IMF 외환 위기가 닥치면서 갈 곳 없는 은퇴자금이 삼겹살 프랜차이즈 확산에 기여하면서 삼겹살의 수요는 폭발했다.
하지만 2000년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돼지고기의 수출길은 막혀버렸고 수출되지 못하는 부위들은 재고로 쌓여가다가 결국은 폐기되었다. 국내에서는 오직 삼겹살만 팔려나가고 다른 부위는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다양한 부위의 모든 값을 삼겹살이 감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삼겹살은 등심이나 안심 다릿살에 비해 몇 배가 넘는 가격이 형성되었고 우리는 삼겹살에 다른 부위의 값까지 얹어서 비싼 값에 사 먹고 있는 것이다.
모든 시장경제 원리가 그러하듯 소비가 바뀌면 유통도 생산도 바뀌게 된다. 그러니 우리가 삼겹살을 선택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고소하고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이 익숙한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삼겹살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이러한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을 한돈 협회에서는 돼지 한 마리를 통 소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부위를 위한 메뉴를 개발하고 광고도 한다. 나는 이제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거의 사지 않는다. 수육을 할 때는 통 삼겹살 대신 다리살로 수육을 하는데 기름기도 적당하면서 살코기와 쫄깃한 부분이 섞여있어 꽤나 만족스러운 수육이 만들어진다. 또 구워 먹어도 꽤나 맛이 좋다. 삼겹살과의 차이는 모양이 삼겹살처럼 반듯하지 않을 뿐, 맛은 삼겹살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정육점에 가면 100g 당 가격이 가장 싸면서도 가장 기름기가 적은 돼지 안심 부위를 매우 애용한다. 일식집에 가면 먹을 수 있는 아주 부드러운 돈가스가 바로 이 안심으로 만든 돈가스다. 이 담백하고 부드러운 안심은 카레나 짜장에 넣어도 너무 맛있고, 청국장이나 김치 째개에 넣어도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게다가 가격이 닭가슴살 보다도 저렴하니 나는 장을 볼 때마다 돼지 안심을 챙겨서 담는다.
현재 한국은 연간 20만 톤의 삼겹살을 수입해오고 있다. 남아도는 돼지 뱃살 처분으로 시작된 삼겹살 마케팅은 전 세계의 돼지 뱃살의 긁어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기름이 너무 많아 고기 취급을 못 받는 돼지 삼겹살. 우리는 이제 삼겹살과 이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