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농촌유학으로 향한 마음
“거길 누가 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농촌유학의 거주형태를 설명하자 남편이 되묻듯 말했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데.”
"......."
단호한 제 대답에 남편은 당황해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말을 아꼈습니다. 평소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선 묵묵히 제 결정을 존중했던 남편이었습니다.
도시는 늘 선택을 종용합니다.
어느 길이 덜 막힐지,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할지. 어떠한 집이 오를지. 매일 거대한 데이터박스 안을 부유하며 어떤 정보를 취할 것인가를 요구받는 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설레는 초등학교 입학시절도 잠시, 새로운 학급과 새로운 얼굴을 맞이하는 것은 설렘을 가장한 긴장입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입력되어야 하는 새로운 데이터와 잊힐 데이터가 빠르게 교체되어 갑니다. 그렇게 잊지 말아야 할 학습이 쌓여가는 동안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잊혀갑니다. 그리고 곧 엄마들의 스마트 폰에는 가장 사랑스러웠던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이 배경화면에 자리하기 시작합니다.
저희 가족의 대화가 점점 일상을 점검받는 대화로 주를 이룰 때였습니다. 그때의 우리 가족의 전반적인 대화는 방어적이고 예민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첫째 아이가 보이는 무력감으로 고민하다가 찾은 심리상담 전문가에게서, 아이의 상태가 조금 더 심해지면 소아 우울증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 저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 상황을 염려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지금의 현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치료상담 과정 중 꽤 희망적인 발견은 아이와 엄마 사이의 정서적 신뢰는 아직 깨지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줄기 희망을 붙들고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나와 내 아이가 조금은 변화할 수 있는 지점. 그 지점의 시작은 양육자인 나 자신이었습니다. 어떤 변수들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가치관을 지킬 수 있으려면 결국 본연의 나를 찾는 치유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넘쳐나는 정보 속 일상에서의 선택은 곧 결과로 나타납니다. 신중히 비교하고 따지고 머리 아프게 고민한 끝 선택한 결과는 결과로써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바로 평가로 이어져 나를 점점 압박합니다. 이 굴레 속에서 저에겐 잠시나마라도 나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너무나도 절실했습니다.
“슬아, 엄마랑 같이 농촌으로 유학 가보는 건 어때?”
“음... 난 좋아.”
덤덤했던 첫째와 달리, 이제 막 초등학교를 입학한 둘째는 단호했습니다. 겨우 코로나시즌이 끝나고 있던 시기였고, 항상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둘째였으니까요.
“난 싫어!”
축구를 좋아하던 둘째에게 그곳에서도 축구를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며칠간 설득 끝에 마침내 긍정의 대답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음 해 농산어촌유학 공지를 기다리고, 신청서를 냈습니다. 제가 농촌유학을 결정하기까지의 다급함과 절실함을 이해해 줬던 남편, 그리고 엄마의 결정을 따라준 아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도시를 뒤로하고, 시골의 작은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전학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간절함이었고, 우리 가족이 스스로에게 선물한 모험이었습니다.
도시와는 다른 새로운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삶의 리듬을 안겨줄지, 과연 그 선택이 우리 가족에게 맞는 것인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려움과 설렘은 뒤섞인 채, 우리는 그 길에 발을 내디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