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2023년 2월의 어느 날, 나주로 향하는 첫 유학길.
그날의 아침 공기에는 아직 겨울의 차가움이 묻어 있었습니다. 출발 세 시간 전, 여전히 챙겨야 할 짐들이 남아있어 쉴 틈 없이 움직이며 몸을 데웠습니다.
유학 생활에 필요한 큰 짐들은 남편과 함께 일주일 전에 미리 나주에 옮겨 두었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사소한 생필품들과 아이들의 여가 물품이 남았다 보니, 눈에 띄는 대로 짐을 챙기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지켜본 남편이 말했습니다. "더 필요한 건 택배로 붙여줄 테니까 다 싸지 말아요"
"아.!"
저는 그 말을 듣고, 그런 방법을 처음 알았다는 듯이 수긍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바쁘던 손을 내려놓고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전남 나주까지는 차로 평균 4시간 반. 자주 오가기에는 먼 거리였습니다. 매달 가족이 만날 때에도, 아이들과 셋이 서울로 올라가는 것보다 남편이 KTX를 타고 내려오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기차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몇 달을 돌아오지 못할 집을 뒤로하는 출발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제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던 것이지도 모릅니다.
서울역 대합실은 여느 때처럼 혼잡했습니다. 높은 천장 아래, 커다란 전광판이 깜박이며 울려 퍼지는 안내방송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거대한 파도처럼 대합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검은 롱패딩 차림의 사람들은 서로 부딪혀도 누구 하나 의식하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낯선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도시의 익명성 속 질서. 그 안에서 모든 이가 묵묵히, 그러나 바삐 자신만의 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소용돌이 같은 분주함이 온몸을 휘감으며 저를 긴장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아이들과 짐을 챙기며 서둘러 승강장으로 향하는 동안, 여행 가방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던 건, 아이 둘을 데리고 나주로 향하는 책임감이었습니다. 그 무게가 제 어깨를 깊이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차마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혹시 이 결정이 아이들에게 불편과 아픔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제 손에 쥔 여행가방을 더욱 움켜쥐게 했습니다.
승강장에는 이미 우리와 같은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평일 오전,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들 중에도 저처럼, 마음 한구석에 불안을 품은 채 새로운 목표를 위해 이곳에 온 이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낯선 얼굴들이지만, 모두가 같은 기차를 타고 각자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저에겐 묘한 위로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들 또한 각자의 이유로, 뚜렷한 목적지를 향해 한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던 마음속 불안이 조금씩 설렘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습니다.
잠시 후, 탑승할 객차를 확인하고 배웅 나온 남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나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좌석에 몸을 기대고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곧, '이 도시와도 잠시 이별을 하는구나, 한 동안 못 보게 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차는 속도를 조금씩 올리며 회색 빌딩 숲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한참 후, 양쪽으로 높이 서 있던 빌딩들이 서서히 퇴장하자, 이제 이 풍경을 떠나보내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습니다. 그제야 제 눈동자가 창밖 풍경을 구석구석 훑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오는 도시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긴장이 풀렸는지 전날까지 짐을 꾸렸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고 저는 피로를 떠나보내기 위해 한참을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기차는 빠르게 도시를 가르고, 시간은 서울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장면으로 우리를 데려다주었습니다.
넓게 펼쳐진 논과 밭, 저 멀리 보이는 낮은 슬레이트 지붕들, 서울에서 느껴 보지 못한 한 겨울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 해가 숨어있던 오전에 서울을 출발해서 점심이 지나 나주에 도착하는 여정이, 마치 눈이 얼어붙었던 곳에서 따스한 기운으로 눈이 녹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주역이 위치한 곳은 도심이지만, 서울의 높은 빌딩숲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바람에 실려오는 흙냄새에 기분 좋은 숨을 들이켰습니다.
“ 얘들아~ 나주에 도착했다!”
2월의 차가운 공기도 우리의 들뜬 마음을 식히지 못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설렘 가득한 발걸음으로 새로 지낼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리가 거주하게 될 곳은 왕곡면의 체험휴양마을 옆에 위치한 귀농인 임시거처였습니다. 농촌 유학은 거주지 마련되어야 학교 유학이 가능합니다. 이에 왕곡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이곳에 미리 말씀드려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거주지로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리 집이 위치한 곳은 농촌이지만 왕곡면 행복복지센터(구 면사무소), 소방서, 우체국 등이 300여 미터 거리 내에 몰려있어 작은 읍내를 이루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집 앞에는 에코왕곡마을과 나주시농업기술센터 앞 넓은 잔디운동장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잔디운동장 역시 제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너른 잔디운동장 위에 축구골대와 한쪽의 배드민턴 코트, 운동장 옆 나무들과 맞닿은 하늘까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곳이었습니다.
그 맞은편 길모퉁이에는 단정한 흰 벽체 위 짙은 갈색지붕의 단층건물, 우리의 보금자리가 한적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현관 앞 작은 데크는 우리를 맞이하는 듯 정겨웠고, 집 앞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벚꽃나무는 아직 꽃봉오리를 틔우지 못한 채 겨울의 끝자락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앙상한 가지마저 계절의 정취를 더해 주었습니다.
” 자, 웰컴 투 왕곡! “
현관문을 열자마자 우리는 설레는 감탄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아이들은 마치 집에 처음 와본 것처럼 ” 와, 좋은데! 우리 집이 된 거야? “ 하고 소리쳤습니다. 붙박이장, 싱크대, 신발장 등 집 안의 가구를 열어보기도 하고, 10평 남짓한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이 작은 공간에 최소한의 짐으로 최대한 아늑함을 살리고자, 우리는 말끔한 마음으로 각자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이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할 공간이라 생각하니 더욱 애정을 쏟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추 짐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가져온 얇은 커튼을 큰 통창에 달았습니다.
그제야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창밖의 낮은 소나무와 가로등 건너 드넓은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고, 해지는 노을은 공기마저 가슴 따듯하게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저는 한동안 넋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농촌 유학을 결정하고 여기로 오기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고민하고, 기다리고, 설득하고..., 결국엔 선택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달려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 모든 과정을 위로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 간의 피로와 긴장은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금세 회복되어, 다시 제 마음이 새롭게 다져지는 듯했습니다.
‘우리, 앞으로 잘해보자!’
서울 생활을 돌이켜보면 도시에서는 무언가 하고 있지 않으면 늘 불안했습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무엇인가 멈춰있으면... 늘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제 교육철학은 끊임없이 도전받았습니다. 주변의 이야기에 휩쓸렸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붙잡기를 반복했습니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도, 그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멈춰 서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분주한 도시의 흐름은 자꾸 저를 떠밀었고, 저는 그 속에 완전히 섞이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었습니다. 주변의 순응하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아이는 다른 모습이었으면 하는 마음과 결국 학원 정보를 탐색했던 제 행동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지난날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마음 깊이 거부하면서도, 결국은 그 생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간절했던 농촌의 삶.
이 여정이 극적인 변화가 아니어도 괜찮았습니다. 그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매일 아침의 햇살, 천천히 걷히는 안개, 여유로운 공기 속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제 가치관은 살아 숨 쉬고, 내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나주로 오며 마주한 모든 것들이 그 깨어남의 시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