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돌멩이 조각 하나

2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by 스라서니

6학년 새 학기, 3월의 첫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온 첫째에게 저는 상기된 얼굴로 물었습니다.


“어땠어?”


아이의 대답은 예상밖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이상해!"


"... 이상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이는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랑 똑같아! 이상한 아이들이야!”


아이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은 돌멩이를 손에 쥐고 내밀었습니다.


“ 엄마, 봐봐. 이쁘지!"


제 눈에는 그저 조금 다듬어진 돌 부스러기처럼 보였지만, 아이의 표정은 반짝였습니다.


“ 친구가 쉬는 시간에 예쁜 돌멩이 주우러 가자고 해서 같이 다녀왔어!”


키득거리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저는 그제야 '이상하다'는 말의 진짜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길가의 벌레를 잡아와 키우거나, 예쁜 나뭇가지, 낙엽들을 수집하기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와 친구들의 감성이 닮아 있던 것입니다. 이런 감성의 아이들이 바로 '이상한’ 친구들인 것입니다. 아이에게 그 만남은 낯섦이 아니라 반가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뻐서 가져온 돌멩이라고?”


아이의 말을 듣고 그 조그마한 돌멩이를 건네받았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이리저리 굴려도 이물감 없이 손에 착 붙는 촉감을 가진, 은근히 반짝이는 흰색의 돌 부스러기였습니다.


학교 운동장, 혹은 길바닥 어디에선가 누군가의 발에, 혹은 바람에 치여 여기저기 무심히 굴러다니던 수많은 돌들, 그 돌의 부스러기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길바닥을 떠돌던 돌조각이 아이의 눈에 들어온 순간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조용히 숨었던 아이가, 따뜻한 시선 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처럼요. 두려움 속에 움츠러들던 아이는 이제, 닮은 감성을 가진 친구들과의 만남 속에서 조금씩 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첫째는 낯가림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새로이 만나는 공간, 사람과 만나게 되면, 주변을 관찰을 하며 소극적으로 있는 아이였습니다. 혼자 있을 때에는 에너지 넘치던 아이가, 낯선 곳에서는 얌전해지곤 했으니까요.

아이는 점점 고학년이 되면서 발표에 대한 부담이 커져 힘들어했습니다. 4학년때는 학급 학생이 모두 발표를 해야 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자신의 차례가 돌아온 날마다 등교를 거부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봤습니다.

어느 날 등교준비를 다 마치고는 현관문 앞에서 갑자기 가지 않겠다고 드러누우며 버티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은 안 가고 싶다’고 눈물 맺힌 강경한 얼굴로 말하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학교에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마지막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갑자기 태도를 바꾼 아이였습니다.

그동안 학교 공개 수업 때 또박또박 발표하는 모습만 보고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저는, 이런 등교거부 소동을 벌인 지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이 두려웠고,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그동안은 애써 버텨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더 이상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여섯 명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그중 네 명의 여자아이들은 새로 전학 온 친구를 반갑게 맞아주며 자신들의 소소한 세계를 기꺼이 나누려 했습니다.

아이는 학교의 아늑함과 따뜻함 속에서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 변화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조용히 드러났습니다.


서울에서는 손도 대지 않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나주에 와서는 자주 바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주 핸드폰을 꺼내 나주의 풍경을 찍고, 그중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프로필을 종종 교체하곤 했습니다. 서울에서도 풍경 사진을 자주 찍긴 했지만, 그 사진들은 늘 사진첩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주에서는 달랐습니다. 그저 아이의 눈에 담기기만 했던 장면들이 이제는 누군가와 나누고픈 풍경이 된 것입니다.

아이의 대학생 사촌 언니는 바뀐 그 프로필을 보고, “전보다 마음이 많이 편해져 보인다”는 말을 어른들께 했다고 합니다. 얼굴 없는 프로필들이었지만, 사진 속 풍경은 곧 아이의 마음이었을 테니까요.


이렇듯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었습니다.


낯선 곳으로 초대되어 서서히 젖어들고,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아이. 그 과정을 지켜보며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성장이란, 거대한 도약이 아니라 낯섦 속에서도 스며들며 천천히 빛을 드러내는 변화 그 자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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