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풍성한 작은 학교

2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by 스라서니

옛 국민학교 교문 앞에 있던 사자상과 책 읽는 소녀상을 기억하시나요?

이순신 장군상, 세종대왕상과 더불어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사자상과 소녀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디며 성장해 온, 교육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 우리가 처음 경험했던 작은 사회의 설렘과 순수를 떠올리게 하는, 시간 여행의 문이기도 했습니다.


그 동상들과 함께한 제 국민학교시절의 기억은 세 번의 전학으로 시작합니다. 각 학교의 장소와 규모는 달랐지만, 운동장은 늘 같은 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점심시간이면 그늘진 곳을 찾아 고무줄놀이를 하며 뛰어놀던 풍경이 떠오릅니다. 즐겁게 뛰놀던 그 시간에도, 소녀상에 얽힌 무서운 전설을 떠올리며 지나칠 때면 괜히 힐끔거리곤 했습니다.

언제나 북적이던 운동장 속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던 동상들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서로 다른 네 곳의 학교 운동장이 늘 같은 공간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항상 같은 자리의 동상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니,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모습 때문이려나요. 그래서 새로 전학 온 학교에서도 크게 낯설어하지 않고, 적응하는데 큰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기억은 지금 우리가 머무는 이 작은 학교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평균 학급 인원이 다섯 명 내외인, 전교생이 30여 명인 작은 시골 학교는 전남 나주시 왕곡면에 1939년 소학교로 개교한 이래, 긴 세월을 지켜온 곳입니다. 교문 앞 선명한 색상의 사자상과 순백의 책 읽는 소녀상은 그 모습만으로도, 이곳이 아이들의 성장을 오래도록 품어온 공간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자상은 여전히 용맹한 자세로 서 있었고, 소녀상은 책을 들고 조용히 앉아 우리를 유년의 시절로 초대합니다.


왕곡초등학교의 첫인상은, 이토록 옛 향취가 물씬 묻어나는 아름다운 전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매일같이 드나들며 왕곡초의 진정한 매력은 풍경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풍경은 자연 속에서, 학교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의 기억 속 정겨운 옛 모습을 간직한 동상. 그 아래로 시선을 옮기면, 흐드러지게 피어난 가지각색의 야생화들이 우리를 반겨주는 모습에 마음이 머물고, 시선이 자연스레 멈추게 됩니다. 야생화 너머의 운동장에는 잔디가 머리를 내밀고, 그 위로 펼쳐진 드넓은 하늘은 두 팔을 벌려 우리를 환영하듯 반짝거립니다.

광활한 하늘 아래 운동장 한편의 빼곡히 서 있는 큰 나무들은 자연스레 우리의 발걸음을 그 앞으로 향하게 합니다. 나무들과 조용히 마주서 있노라면, 이곳이 학교인지 숲 속인지 헷갈릴 만큼 자연의 품이 깊게 느껴집니다. 큰 나무들을 가르고 불어오는 바람은 때때로 다른 표정의 구름을 싣고 와 운동장의 표정을 변화시키고, 풀과 야생화들을 쓰다듬는 바람은 우리의 마음마저 부드럽게 감싸줍니다.

자연스럽게 자라난 꽃과 나무들이 저마다의 질서를 지닌 채 어우러진 모습은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습니다. 제 빛깔대로 피어난 꽃처럼, 아이들 역시 저마다의 질서를 품은 채 자라나는 곳. 작은 시골 학교의 품은 바로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SNS(밴드)에 올려주신 사진도 실제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푸른 잔디 위를 달리는 아이들, 수업 중 환히 웃는 얼굴, 중간놀이 시간에 고요한 오목 겨루기, 운동장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쑥을 캐는 작은 손길, 학교 뒤편의 광활한 텃밭을 일구는 몸짓. 뒤뜰 자두나무 아래에서 함께 익은 열매를 따는 전교생의 모습까지- 도시 속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진 속 아이의 모습들은 제 빛깔대로 품어주는 학교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3년 차 유학생활에 접어들며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면서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어느 날엔 1층 외부에 있던 남자화장실 건물 처마 밑에 제비가 찾아와 집을 지었습니다. 조금씩 나뭇가지를 가져오며 둥지를 짓는 모습도 화장실을 오가며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둥지 안에 제비가 알을 낳게 된 뒤, 둥지가 허물어진 사건이 생겼습니다. 둥지 속이 궁금했던 몇몇 아이들에 의해 둥지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깨진 알과 함께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 현장을 목격한 고학년들이 아이들을 나무랐고, 그 사건을 알게 된 교감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어미제비는 알을 떠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생명의 존엄성을 단단히 일러주셨습니다. 안타까운 사건이었으나, 아이들이 다시금 생명의 존귀함을 배우게 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 뒤 제비는 반대편 여자화장실 처마밑에 집을 지었고, 몇 주 뒤 새끼들은 무사히 태어났습니다. 먹이를 물고 온 제비 부모들이 입을 벌리며 소리치는 새끼들에게 하나씩 먹이를 나누어 주는 모습을 아이들과 함께 눈을 반짝이며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비 새끼들이 학교에 늘어진 전선 위에서 비행을 하는 모습을 몰래 숨죽여 지켜보았습니다.

한 번의 좌절을 겪은 제비가 다시 일어나 생명을 이어가는 순간들을 이곳의 아이들은 몸소 체험하며 자연스레 아이들 마음에 새겨졌을 겁니다.

학교 안의 자연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생명을 배우는 교실이자, 마음을 여는 놀이터였습니다.


돌봄 교실에서는 농장을 하시는 학부모님께 우연히 닭 알을 받았습니다. 받은 닭 알은 돌봄 선생님의 부화기로 품어져 아이들은 매일 부화기 앞으로 달려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건물로 들어설 때였습니다. 평소 들리지 않던 소리가 복도 가득히 울려 퍼져 병아리가 부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 일과가 끝난 뒤 돌봄 교실로 온 아이들의 함성과 삐약삐약 울음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쳐 ‘생명의 탄생’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모든 알들이 부화하진 못했고,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들 중 두어 마리는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 속에 나온 병아리들은 곧 기운을 되찾고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쉬는 시간마다 병아리에게 영양식을 주겠다며 파리를 잡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순간, 그곳에서만 볼 수 있었던 특별한 풍경이었습니다.

방과 후 돌봄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병아리집 상자에서 한 마리씩 꺼내 함께 놀아주고 다시 넣어주곤 했습니다. 병아리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아이들 마음속에는 ‘집으로 데려가 키우고 싶다’는 작은 꿈이 자라곤 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상자 안 생활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병아리들은 원하는 아이들의 가정에 몇 마리 분양을 시키고, 나머지는 다시 농장으로 돌려보내주었습니다.


제비의 둥지와 병아리의 부화처럼, 이곳에는 늘 생명이 깃든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길고양이를 품어줘서 새로운 생명이 학교 창고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선생님들께서 그들의 엄마를 자처하여 함께 보살핀 이후, 고양이들은 왕곡초 아이들의 미술작품에 있어 훌륭한 뮤즈가 되기도 합니다.

왕곡초 안에서 반가운 손님들은 언제 어디서건 곳곳의 스페셜 게스트가 되어 생명을 꽃피우며 우리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합니다.



아이들은 바람과 풀, 꽃과 새, 땅과 열매 속에서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 작은 경험들 속에서 자연이 건네는 풍요로움과 생명의 울림을 배우고, 선생님들의 따스한 시선과 다양한 연령의 친구들 속에서 차분히 자신을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 작은 학교가 주는 진짜 풍성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 기억들이 단순한 배움의 기록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을 닮은 성장의 풍경으로 남게 되겠지요.

자신을 온전히 품어주고 자라게 했던 ‘성장의 공간’으로서 말입니다.

세월을 품은 교문 앞의 사자상과 소녀상이 제게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듯, 아이들과 함께한 오늘의 장면들도 언젠가 그들의 마음속에 시간의 깊이를 품고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풍경을 곁에서 함께 바라볼 수 있었던 나날들 덕분에, 저도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음을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작은 학교의 품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인 저에게도 풍성한 성장의 공간이 되어 제 마음속에 조용히,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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