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벚꽃이 한창이던 어느 날, 둘째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이게 뭐야?”
그것은 왕곡에서 처음 치른 2학년 받아쓰기 시험지였습니다. 아이는 당당한 표정으로 시험지를 펼쳐 보였고, 순간 저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며칠 전부터 허리가 그렇게 아프더라니, 이리도 많은 비가 내리려고 그랬구나!’
시험지 위엔 빨간 줄이 퍼붓듯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장마철의 소낙비처럼 거세고 선명한, 시뻘건 흔적들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저는 순간 멈칫했습니다. 그래도 이 녀석은 자신의 점수는 중간 정도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어쩐지... 시험지를 내민 그 손이 당당하다 했습니다.
” 틀린 건 다섯 번씩 써 오는 게 숙제라, 지금 해야 해! ”
‘으음... 그래.... 세 페이지 넘게 쓰느라 손이 아픈 것은 네 몫이지 뭐’
그런데 생각해 보니 받아쓰기 공부를 안 한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너 지난주에 받아쓰기 공부해 갔잖아~!”
“아니~ 그게 너무 오래돼서 까먹었단 말이야~~!!”
“.......”
듣고 보니, 일주일 전쯤 받아쓰기 시험공부가 숙제라며 가져와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처럼의 숙제이기도 했고 나주에서의 2학년 첫 받아쓰기 시험공부라, 제가 공부할 문장을 불러주며 둘째와 함께 열의를 다해 공부를 했었습니다. 틀리는 문장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반복해 가며 공부를 했었는데, 그다음 날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고 해서 의아하게 여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시험을 봤다는 소식이 없어, 저 역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시험 앞에서, 아이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아니면 알림장에 공지를 했는데, 내가 놓쳤던 건가! ‘
‘만약 공지도 없었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런 결과를 방지할 수 있는 거지’
‘내가 방심했네. 아니 둘째랑 내가 방심한 거네.’
불시에 허를 찔린 시험 결과지에 저는 적잖이 당황했고,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이 엉켜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자리를 잡고 앉아 묵묵히 숙제를 시작했습니다. 빨간 흔적이 뒤덮인 시험 결과에 채워야 할 숙제가 공책에 한가득임에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분히 손을 움직여 나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서울에서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첫째, 둘째 아이 모두 받아쓰기를 하던 시절. 시험지 위의 빨간 줄은 용납되지 않는 결과였고, 시험 전날이면 아이와 마주 앉아 몇 번이고 반복하며 공부했습니다. 그리고는 시험 당일 다른 엄마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시험결과에 촉각을 곤두 세웠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무궁한 가능성을 품은 아이들에게 왜 그토록 조급한 마음으로 몰아붙였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둘째가 내민 시험지를 보는 순간에는, 제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성적 지상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 점수를 받았지?’
빨간 폭우처럼 쏟아진 강렬한 결과만큼 제 감정이 순식간에 요동쳤지만, 아이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스스로를 책망하기보다, 숙제를 차분히 이어가며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어냈습니다.
시험지 위의 붉은 줄은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낙인이 아니라, 오히려 제 안에서 비집고 나온 성적에 대한 집착을 씻어내주는 비였습니다.
‘그렇지!... 이게 진짜 공부지... 암, 이제 찐 공부야.’
서울에 있었더라면 또다시 불안과 초조 속에 아이를 붙들고 받아쓰기 연습을 했을 테지만, 나주에서의 이 빨간 비는 달랐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아이와 제가 함께 웃으며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것은 ‘빨간 줄이 없는 시험지'가 아니라, 실수를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라는 것을요.
그래서 다시 다짐합니다.
아이의 성장을 점수로 판단하지 않고, 실수 속에서 피어나는 배움의 순간을 함께 지켜보겠다고요.
아이를 위해 선택한 농촌 유학 생활인 만큼, 서울에서 품었던 조급함은 내려놓고, 나주의 하늘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