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키노는 바로 너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할 때였다. 당시 난 초청팀 한국영화인 담당으로 많은 감독님들과 배우들의 호스트를 맡아 일하고 있었다. 그때 담당했던 감독님들은 내가 학교 다닐 때 책에서나 뵐 법한 분들이셨다.
이제는 없어져버린 해운대 그랜드호텔 로비에서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더니,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적곤 서울에 올라오면 꼭 연락하라 하고 갔다. 다른 말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번호와 연락하라는 말 한마디만 하고 갔다. 그렇게 인연이 된 감독님은 자주는 연락을 못 드려도 어쩌다 한 번씩 안부연락을 드리곤 했다.
키노책방을 준비하다 문뜩 감독님 생각이나 연락을 드렸다. 감독님은 "어쩐일이냐"는 말대신 "내일 상암동으로 와라"라고 하셨다. 그렇게 상암동의 한 평양냉면집에서 감독님과 오랜만에 만나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 저 영화서점을 해볼까 해요"
"이제 기자는 안 하고? 영화 안 찍을 거야?"
"그냥 책만 읽으면서 그러고 살고 싶어요"
"그래서 말인데, 책방이름을 '키노책방'으로 하고 싶은데 제가 감히 '키노'를 사용해도 될까요?"
"당연하지, 옛날 잡지 <키노>를 기억하는 사람 이제 없어. 지금 시대의 키노는 너야"
"아 맞다 감독님, 그나저나 포스터에 사인 좀 해주세요"
"이 오래된 포스터를 어떻게 구했냐. 서점 주소 남겨놔. 내가 얘네 데리고 가서 포스터에 사인 완성해 줄게"
그렇게 함께 오시기로 했는데, 오시기로 한 분도 오기로 한 곳도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