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일지: 12월 14일, 첫 대면 독서 모임 준비 과정
11월 29일, 7년 동안 하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직접 모임을 꾸릴 생각은 없었다. 모임을 찾기 위해 스레드에 글을 올렸다가 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댓글이 잔뜩 (내 기준) 달렸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없구나'라는 생각에 카톡 오픈 채팅방을 하나 만들었다. 스레드에서 카톡으로 넘어오는 사람이 4명만 넘어도 성공적이겠다고 생각했는데, 카톡방에 13명이나 들어왔다. 기대치의 3배가 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에 행복했다. 꾸준히 오는 사람이 반 절만 돼도 매달 운영은 되겠다 싶어 아주 긍정적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운영요일, 운영시간은 투표로 정했다. 지방러들도 참석을 원해서 계획에 없던 온라인 모임도 만들었다. 그렇게 모임은 월 2회(1회 대면, 1회 비대면), 격주로 운영하기로 했다. 한 달에 한 권이라도 꾸준히 책 읽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 만든 독서 모임인데 월 2회 모임으로 목표량이 2배가 늘었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배움이 쌓이고, 감상을 공유하면서 논리적으로 말하기를 연습하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감상이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을 꾸준히 해서 내 나이에 맞게 무르익는 어른이 되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시각과 경험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것도 정말 큰 경험이 될 것 같다. 살아온 관성이 있는 지라 관심분야를 벗어난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주제든 매체든 사람이든)에 점점 게을러지고 있는데, 책이라는 매개체로 어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이 때문에 도서 선정은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경제, 철학, 문학, 에세이, 과학, 자기 계발, 인문 등 장르의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관심분야를 읽는 한 달 동안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를 얻고 싶었다. 재미를 얻지 못한다면 적어도 '내가 이 분야에 흥미를 쉽게 느끼지 못하는군' 하고 나를 알게 될 테니 그 또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장소는 우여곡절 끝에 생 라자르 역 근처에 있는 작은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 카페로 정했다. 원래는 어느 방향에서 살더라도 접근하기 쉬운 1구 쪽으로 찾으려고 했었다. 워낙 관광지이다 보니 6-8명이 되는 규모의 자리를 조용한 카페로 예약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 공공 도서관들에 공간 대여 문의 메일을 보냈었다. (덕분에 프랑스 도서관 공부는 많이 됐다! 사는 동안 열심히 구경 가봐야지!) 프랑스 행정이 워낙 극악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답변받을 기대 0으로 보냈었는데, 1순위 후보지였던 도서관이 친절하게도 공간이 없다는 답변을 해줬다. 거절임에도 답변을 받은 것에 기쁠 줄이야... 그러던 중에 참석자 중 한 분이 기차역 근처에 있는 북 카페를 추천해 주셨고, 공간도 적당히 넓고 우리의 취지를 이해해 줄 수 있겠다 싶어서 바로 예약 문의를 보냈다. 그리고 정말 빠르게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프랑스 현지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 카페에서 하는 파리 독서 모임이라니... 낭만 치사량이다... 오래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독서 모임을 의미 있게, 더 다양한 콘텐츠로 재미있게, 유쾌하게 할 수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 (책 읽기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다독가가 되어있을 텐데 말이야.) 민음사에서 정리해 둔 독서모임 가이드가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처음 오픈 채팅방을 만들고 어찌 운영해야 할지 몰라서 '감상을 돌아가면서 공유하고, 서로의 감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질문해 봐요!'로 모호하게 공지했었는데, 어떻게 하면 깊이 있는 감상 공유가 되는지 좋은 예시들이 나와있다. 다들 독서 모임이 처음이라 대화가 턱턱 막히게 된다면 가이드에 나와있는 내용들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감상 공유를 게임 같은 활동으로 추가 진행하면 더 재밌게 독서모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은 게임들도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1년 치 계획이 나와버렸다.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진심이 될 줄은 몰랐다. 이런 활동들이 나만 재밌고 다른 분들은 뜨악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긴 하지만, 기왕 모임장이 된 거 불도저처럼 추진해보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독서모임 기록들을 읽다 보니 나도 운영 일지를 작성하고 싶어졌다. 독서록과는 별개로 독서모임 운영을 하면서 느끼는 나의 마음가짐, 활동들에 대한 피드백, 운영의 변화들을 기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나처럼 독서모임을 시작하려는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나의 성장을 위해 이 글쓰기가 시작됐다. 드디어 오늘 12월 14일, 첫 대면 독서 모임이 다가온다. 만나서 자기소개하고, 도서 선정 순서를 정하고, 다음 달 읽을 도서를 선정하기로 했다. 참석자분들은 아직 모르지만 이번 달의 작은 활동도 준비했다. 나에게 모든 시작은 설렘과 함께 걱정이 동반된다. 즐기고 싶은 마음과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상충한다. 그냥 취미 생활일 뿐이지만, 잘 해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바람과 걱정들이 참여하는 분들에게도 닿아서 모두가 진심으로 아끼는 파리의 독서 모임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