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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Oct 12. 2022

어떤 예감

@ 울란바토르


그러니까 그 때였어. 내 마음이 떨리기 시작한 것은. 평소 잊고 지냈던 어딘가 깊숙한 곳의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두근거림을 들은 것은, 그 때 쯤이었지. 내가 나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도. 텅빈 하늘을 향해 한바탕 울어젖힌 뒤 맑은 얼굴의 내가 이 세상 어딘가엔 있음을 알게 된 것도. 


무작정 떠나고 싶었지. 마구 내달리고 싶었어. 보잘것없는 주저함과 답답한 두려움을 속시원히 떨쳐버리고 저 하늘과 땅 사이를 말 타고 달리다 보면 어딘가 세상의 끝이 나오는 것일까. 저 북쪽 끝에 있다는 바다 같은 호수까지 달려가 시리도록 푸른 물 속에 비친 끝간데 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을 들여다 보고 싶었네. 


그러나 시간은 가고, 무심히 일상은 흐르고, 그 때는 미처 몰랐지. 다시 어딘가에 묶여 인생을 낭비하게 될 줄을. 구름이 떠 가듯 꿈도 가고 시간이 흐르네. 그렇게 모든 것 다 사라져도 어떤 순간은 남아, 떨림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리니.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체 시작(始作)이란 대체 무엇일까? 


"<설문해자>에 따르면 시始는 여지초女之初, 즉 ‘여자의 처음 상태’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로 처음(初)를 말하는가? 처음(初)은 또 옷감과 가위가 합쳐진 글자이다. 여자가 옷감을 자르려고 가위를 대는 작업이 바로 ‘처음’의 의미이다.” ** 


철학자 최진석의 설명에 따르면 가위와 옷감이 만나는 순간, 갈라지는 틈이 생기는 찰나, 그 교차점이 바로 처음(始)이다. 100m 달리기 경주를 할 때, 선수들은 ‘제자리에 - 차려 - 출발(탕)’란 신호와 함께 출발하게 되는데 이 때 ’탕’이란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달리는’ 사이의 어떤 순간이 처음이다. 서로 다른 성질과 상태, 질감, 형태, 느낌을 지닌 무언가가 교차하는 순간.


처음(始)에 지을 작(作)이란 글자가 붙어 있으니 처음을 짓거나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 시작이다.


시작이란 어떤 완성된 형태를 지닌 구조물과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길바닥의 갈라진 틈새, 시간의 엇갈림, 일상의 균열과 같이 미묘하고 사소한 것이다. 어쩌면 한여름 무더위가 한창인 8월의 초저녁, 가을의 예감처럼 목덜미를 스치는 한줄기 서늘한 바람과 익숙한 세상살이에 잊혀졌으나, 제 안의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문득 터져나온 빨간 석류 알갱이 같은 욕망과 한바탕 진눈깨비가 흩뿌리기 전 잔뜩 찌푸린 하늘의 예감에 더욱 가까운 것이리라.


시작은 어떤 떨림과 함께 다가온다. 만일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순간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면 이 글은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저기 끄적인 글들을 모아 하나의 형체를 부여해보리라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 책은 시작되지 않았으리라. 


무언가는 그렇게 시작된다. 여기와 저기 사이의 낮은 목소리에서, 잔잔한 수면 위에 떨어진 물방울 같은 작은 조짐과 미세한 마음의 떨림으로부터 어렴풋이, 점에서 선으로, 마음에서 행동으로, 우연에서 필연으로, 그렇게, 그렇게.




*

合抱之木(합포지목) : 아름드리나무도

生於毫末(생어호말) : 아주 작은 싹에서 나오고

九層之臺(구층지대) : 구층 높은 누각도

起於累土(기어루토) : 한 줌 흙이 쌓여 세워지며

千里之行(천리지행) : 천릿길도

始於足下(시어족하) : 한 걸음 발 밑에서 시작된다.

- 노자, <도덕경> 64장 중


**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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