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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Oct 14. 2022

아리아드네의 실

@ 지유가오카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은 근사하게 생긴 황소와 아내 파시파에 사이에서 태어난, 반은 인간이고 반은 황소인 미노타우로스를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인 라비린토스에 가두었다. 이웃나라인 아테네는 미노스 왕의 유일한 아들을 죽인 죄로 9년마다 각각 일곱 명의 청년과 처녀들을 이 미노타우로스의 공물로 바쳐야만 했다.


다시 공물을 바칠 시기가 돌아왔다. 갖은 모험 끝에 자신의 아버지인 아테나의 아이게우스 왕를 찾은 테세우스는 이 희생물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겠다고 자처했다. 아이게우스 왕은 겨우 재회한 아들을 또 다시 사지로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슬펐지만 그의 고집을 꺽을 수는 없었다. 아테나의 젊은 희생양들이 크레타에 도착하자 수많은 인파가 구경을 나왔다. 이 군중들 틈에 끼여있던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보고선 한눈에 반했다.


아리아드네는 급히 사람을 보내 라비린토스를 만든 다이달로스에게 물어 미궁을 빠져 나오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리고 테세우스에게 아테나로 돌아가 자신과 결혼하겠다고 약속해준다면 미궁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테세우스는 흔쾌히 승낙하였고,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칼과 실타래를 건네주었다.  


테세우스는 라비린토스에 들어가기 전 실타래의 한쪽 끝을 문 안쪽에 꼭 붙들어 맨 뒤, 실을 풀어나가며 미노타우로스가 잠들어 있는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드디어 반인반수의 괴물과 마주친 테세우스는 무시무시한 격투 끝에 미노타우로스를 찔러 죽이고 자신이 풀어둔 실을 따라 미궁을 빠져나왔다. 나머지 청년과 처녀들도 그의 뒤를 따랐고,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크레타를 빠져나와 아테나를 향해 배를 몰았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낡은 다락방의 먼지 쌓인 골동품 같은 신화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신화학자 조셉 캠벨에 따르면 신화는 사실이 아니라 은유이다. 우리가 성경 속의 이야기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듯이 신화들은 사실들 너머의 어떤 사실을 향해 있다. 얼핏 고리타분하고 허황된 이야기로 보이는 고대의 신화들은 선조들의 ‘삶’과 ‘경험’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현대의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열심히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실은 그저 환영(幻影)이라는 의미의 '마야(Maya)’ 속을 헤매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 마야는 때로는 부모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회사와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국가와 공동체란 이름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아무 생각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 어디로도 향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리니, 그 때 우리는 메두사의 눈을 본 듯 그대로 딱딱한 돌이 되어 굳어 버리리라.
 

또한 신화는 우리의 삶이 결국 하나의 모험임을 말해준다. 모든 신화는 자신이 익숙한 곳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모험이란 기지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익숙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안하기 그지없는 일상의 미로 속에서 신화 속의 영웅은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어둡고 위험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출발한다. 그렇게 일상과 환상의 경계를 통과하여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보물을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테세우스가 무시무시한 미노타우르스가 있는 크레타의 미궁 속으로 들어가듯,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게 되듯, 싯타르타가 생노병사의 고해를 접하듯이 우리는 시험에 들게 된다.


“미궁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제 영웅이 길에다 깔아놓은 실을 붙들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알게 된다. 무서운 괴물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는 신을 만나게 되고, 남을 죽여야 하는 곳에서는 저 자신을 죽이게 되며, 외계로 나가야 하는 곳에서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되돌아오게 되고, 외로워야 할 곳에서는 온 세상과 함께 하게 될 것임을…” **


이제 알게 된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선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함을. 미로를 빠져나오기 위해선 자신만의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아야 함을. 이는 자아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는 미궁의 입구를 열 수 있는 열쇠이다. 롤랑 바르트는 <밝은 방>에서 니체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미로적 인간은 결코 진실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의 아리아드네만을 추구한다.”


덧붙이자면 아리아드네의 실은 투명한  같은 것이리라. 길을 나서기 전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모험을 떠난 후에야 어렴풋이 실마리를 찾게 되는  무엇이자 여행이 끝나고서야 비로 알게 되는 어떤 .




* 조셉 캠벨, <신화의 힘>에서

**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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