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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Oct 11. 2020

주제의 발견

@ 뮤제오 피카소


아테네로 돌아가던 테세우스 일행은 도중에 낙소스 섬에 들러 휴식을 취했다. 아리아드네가 잠이 든 사이 테세우스는 그녀를 섬에 놓아둔 채 떠나버렸다. 잠에서 깬 그녀는 자신이 버림받은 것을 깨닫고 슬픔메 잠겼다. 왜 테세우스가 생명의 은인인 아리아드네를 버린 것인지는 여러가지 설이 전해지나 확실치 않다. 다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해진다. 


낙소스 섬은 디오니소스가 좋아하는 섬이었다. 섬에서 슬픔에 빠진 아리아드네를 발견한 디오니소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위로하고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다. 그녀를 사랑했던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가 죽은 뒤 자신이 결혼 선물로 주었던 왕관을 하늘로 던져 올렸다. 그렇게 아리아드네는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삶은 슬픈 것이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게 실타래를 건네주었으나, 정작 자신이 미궁에 뺘져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비탄에 잠겨 사랑을 저주하거나, 자신의 운명에 분노하지 않았다. 아리아드네를 사랑했던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노래한다. “자기가 사랑한 것을 자기가 먼저 미워해서는 안 되는 법, 나는 너의 미로이니라.” * 


자신의 운명을 사랑했던 아리아드네는 보이지 않는 실을 놓치지 않았고, 그렇게 자신의 실을 따라 미로를 빠져나와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낯선 사내의 등을 따라 바르셀로나의 낡은 골목길을 걷다 높은 담벼락과 오래된 주택가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이다 보면 난데없이 피카소 미술관의 입구가 나온다.


전시된 그림들은 그냥 휘이 둘러보았던 것 같다. 미술관 내부는 촬영 금지였을까,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 그곳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은 없다. 다만 피카소가 파리로 떠나기 전 유년 시절에 그렸던 그림들 - 자신의 스타일을 찾지는 못했으나 천재성을 예감케하는 - 과 노후에 아틀리에에 틀어박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연구하며 그렸던 연작들이 기억에 남는다(양이 질을 만든다).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였던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린 ‘아비뇽의 여인들’과 스페인 내전 당시 게르니카 지역의 참사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담아낸 ‘게르니카’란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모두가 찬사를 보낸 천재 피카소에게 감히 ‘실패’라는 평가를 내린 이가 있으니, 바로 비평가이자 작가인 존 버거이다. 


그는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란 책에서 피카소를 미완의 천재로 평가한다. 위대한 화가이자 피카소의 라이벌이었던 마티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에게는 오직 한가지 생각 밖에 없다. 당신은 이 생각을 지닌 채 태어나고, 평생 이 고정된 생각을 발전시키며, 여기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만약 평생 이처럼 ‘한가지 생각’을 붙들고 늘어져 그것을 작품과 삶으로 완성해내는 것이 예술가에 대한 일종의 정의가 될 수 있다면, 피카소에 대한 존 버가의 평가는 옳을지도 모른다. 피카소의 그림은 그의 형형한 눈빛처럼 반짝였으나, 때때로 그것은 삶의 깊이를 담아내지 못하는 재기 넘치는 놀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감히 내게 20세기의 천재를 평가할 권한은 없을 것이나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 ‘게르니카’를 만났을 때, 모네와 마티스, 고흐와 로스코의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감동은 내게 없었다. 그리고 이것 또한 말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천재도 평생 자신의 주제를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쉬지않고 그림을 그렸다. 하물며 나와 같은 범인(凡人)이야 말해 무엇하랴. 




* 프리드리히 니체, <디오니소스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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