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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Oct 14. 2022

테라 인코그니타

@ 요코하마


그건 무엇이었을까. 말로 설명하기엔 어려운데, 그렇다고 글로 표현하기도 힘든 그것.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눈을 감았다 뜨면 덧없이 사라지는 그런 것을 어떻게 네게 들려줄  있을까.


그저 드문 드문  두마디 말로 웅얼거리다 마는 . 재빨리 낚아 채려 하면 이미  만치 앞서 가고 있는 . 주머니 속에 깊숙이 감추어 두어도 이내 작은  사이로 포르르 날아가 버리는 그것을 대체 무어라 할  있을까.


하얗고 둥근 링크 위를 그들은 스쳐 지나갔다. 유연하게 얼음판을 지치며,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때로는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면서. 사실 그런 것 따윈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방긋 웃고 쉴새없이 재잘거리면서.   




요코하마의 밤 길을 걷고 있었다. 날은 흐렸고 뿌연 달빛은 구름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드러내곤 했다. 해가 지길 기다리며 걸었지만 이미 날은 저문 지 오래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아카렌가 창고에 다다랐다. 현재는 쇼핑몰로 운영되고 있는 오래된 붉은 벽돌의 창고 앞에는 한시적으로 아이스 스케이트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가설된 담장엔 지구와 우주의 풍경을 담은 영상이 흐르고,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도 따라 흘러갔다.
 

추위에도 즐겁게 달뜬 연인들과 넘어지면서도 웃음 짓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익숙한 듯 낯선 감정을 느꼈다. 그건 마치 길을 잃은 듯한, ‘Lost’의 감정. 당혹스럽지만 외롭지만은 않은 달콤쌉싸름한 기분. 


언젠가 고3이 되기 싫어 휴학한 뒤 학교를 가지 않고 산책하던 오전 바닷가의 텅빈 도로와 군대를 제대하는 날, 정문 앞 자판기 음료수를 하나 뽑아들고 부대 밖으로 나서던 어느 초여름 햇살의 감각과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었지만 또 어딘가로는 향하겠지, 하는 청춘의 막연하고 멋 모를 낙관주의 같은 것들.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는 ‘미지의 땅’이란 뜻의 라틴어이다. 중세 지도의 가장자리, 아직 유럽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는 위의 단어가 새겨졌다. 늘상 지나는 모든 길이 문명으로 깔끔하게 포장된 현대의 우리에게 남아있는 미지의 땅은 어디일까. 그날의 나는 무얼 찾아 헤맨 것일가. 마흔이 넘어서야 자신의 첫 소설을 쓴 미셸 투르니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쓰고 있는 모자 밑에는 회백질의 굵직한 계란이 하나 들어 있는데 그것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대륙, 아니 하나의 별, 아니 하나의 태양계를 이루는 것이어서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 그것의 탐사는 가장 희한하고 가장 어지러운 여행의 권유인 것이다.” *


그리고 이렇게 부연한다.


“그리하여 마흔 살에 나는 책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 때는 다만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책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갓난아기의 말짱하게 새 것인 뇌가 좋긴 좋지. 그렇지만 일생에 걸친 배움, 경험, 암중모색의 탐구, 인내 같은 것도 중요하거든. 처음에 천부적으로 받은 게 있고 다음에 그걸 가지고 우리는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청춘인지도 모른 채 젊음을 허비하게 될 이십대 중반의 청년은 군부대 정문을 나선 뒤 어디로 향할지 망설이다 캔 뚜껑을 톡 따서 입 안에 털어넣었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거친 탄산과 함께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예감으로 가슴 한켠은 몽글몽글해졌다.



* / **

- 미셸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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