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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Apr 18. 2022

「수만 겹의 꽃봉우리」, 한유

서로에게 다르게 적힐 말들 3월, '봄'




2022년 3월의 한 단어 , '봄'




한유, 「수만 겹의 꽃봉우리」


© Olga_Fil, 출처 Pixabay


아침이면 창에 김이 서리고, 밤새 생긴 얼음에 창을 더 힘껏 열어야 하는 계절이 지나가는걸 느낀다. 같은 하늘이어도 청량하다 못해 투명한 얼음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어느 밤부터 바람도 날카로운 칼날보다는 무딘 솜들을 던지는 것 같다.



이렇게 계절이 지나는 시점에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다. 추울 땐, '더운게 차라리 낫겠다' 라고 되뇌이고, 더울 땐, '추운게 차라리 낫겠어' 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순간들. 물론 더 좋아하는 계절이 있겠지만, 인간은 참 간사하구나 라고 느꼈던 순간들 중 하나다. 추위에선 더위를 떠올리고 더위 속에선 추위를 떠올리는 욕심.


© kahika, 출처 Unsplash


하지만, 누군가 얘기하기를, '욕심은 말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부가적인게 아니야. 살려는 몸부림이지.' 라고 했었다. 딱 선선한 바람에 아주 춥지는 않고, 잔디와 육상 트랙이 있는 운동장을 보며 그 얘기를 했었다. 머리 위로 흔들리던 수많은 잎과 가지들이 함께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얘기를 듣기에 앞서 내가 했던 말은 '나를 포함해서 사람은 참 이상해. 언제 끝을 맞이할지 모르는데, 뭔가를 계속 바란다? 아무 문제없는 일, 로또 4등 당첨되는 정도의 행운같은거. 근데 그 욕심이 모든걸 삼킬 때가 있잖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마치 알바가 받아달라고 건넨 광고 전단지를 받은 것처럼.' 였다.


© Larisa-K, 출처 Pixabay


누군가의 마지막, 어떤 일의 종료, 특정 관계의 맺음 등을 지나오며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자신감', '다른걸 감수하더라도 이뤄내고 싶은 일의 성공', '영원하기를 바라는 관계'는 과연 욕심날 만한 대상인가 생각했던 시기였다. 헛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늘 그 욕심 옆에 따라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욕심들은 살고자 하는 사람의 본능이라니, 나 혼자 당연한 공식같은걸 붙잡고 따지다가 딱 명료한 답지를 본 것처럼 머쓱해졌었다.



사람은 간사하기도 하고, 나약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더 예쁜 꽃을 피우기를, 결실을 맺고 싶어하는 꽃봉우리같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져버릴걸 모르지 않지만, 어느 한 철 동안에는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생김새를 가진 꽃이었다는걸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어떤 날에, 어떤 시간에 피워질지 알 수 없지만 그 시간을 고대하면서 말이다.



이미 예쁘게 피어난 자신을 모르고, 바로 옆에 노란 꽃만 보며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 다만 내가 바라는건, 예쁘게 피어난 내 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지 않기를, 옆의 꽃들을 보며 '예쁘다' 라고 느껴지는 순수한 감정을 퇴색시키지 않고, 할 수 있는 노력으로 모든 꽃들을 가꾸어나가는 것이겠다.


© JillWellington, 출처 Pixabay


갑자기 또 생각나는 얘기이지만, 계절에 맞게 핀 꽃을 보고 회사에 있을 때와 달리 엄청 활기찬 목소리로, "너무 예쁘다~!!" 라고 소리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그거 왜 유난히 예쁜줄 알아?"라고. 내가 모른다고 하자 그 친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왜 어린 중고등학생들은 꽃에 관심 1도 없잖아. 어릴 때는 본인들이 꽃이라서 다른 꽃에 관심 없었는데, 이젠 아니라서 꽃 보고 좋아하는거야!" 라고 큰 소리로 얘기해주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만큼 크게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럼에도,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예쁜지 에 관심도 없고 모르던 시기가 지났더라도, 또 피우고 싶은 꽃들이 마음 속에 있을거라고, 그래서 꽃들이 눈에 들어오는걸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었다.



먼지 많은 황사, 날카로운 꽃샘추위, 일교차 등 좋지만은 않은 날씨들도 있겠지만, 유난히 꽃에 눈길이 가고, 바깥에서 몇 발자국 더 걷고 싶은 계절이 온다. 쉽지 않은 시기를 보내는 와중에, 꽃이 왜 유난히 예쁜줄 아냐고 약올렸던 친구가 쌩뚱맞게 꽃을 준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친구에게 꽃을 건넨 적이 있었다. 거기에 담긴 의미는 "언젠가 힘든 날은 거짓말처럼,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갈거고, 지금 이 꽃 보면서 예쁘다 하고 느껴지는 좋은 느낌을 가지렴." 이었으려나 하고 짐작해본다.




Written by. 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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