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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Apr 21. 2022

「봄, 다시 봄」, 개미

서로에게 다르게 적힐 말들 3월, '봄'



2022년 3월의 한 단어 , '봄'




개미, 「봄 다시 봄」

© LUCASGREY, 출처 Pixabay


#1


“선생님, 제가 서울대 논술 입시 문제 하나 내볼게요. 한 번 풀어보실래요? 1등한 답도 알려드릴게요”


때는 2012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자그마치 10년 전의 일이다. 당시 과외중이던 학생이 내게 던진 반쯤은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한 번 풀어보겠냐니... 호승심이 일었다. 어떤 문제든 후딱 풀어줄테니 어디 한번 내보라고 했다. 독서로 다져진 문과 감성을 장착한 이과생의 참신한 답변을 보여주겠다는 호언장담도 덧붙였다.



“봄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보세요!”



문제는 뜻밖이었다. 이것이 정녕 문과의 논술이란 말인가... 답이 있는 이과의 수리 논술과는 전혀 달랐다. 각자 다를 수밖에 없고, 답이 정해지지 않은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개인마다 느끼는 생각의 차이와 경계의 모호함 속에서 어떤 한 문장이 그 애매함을 적절히 충족할 수 있을 것인가. 잠시간 고민한 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답했다.



‘스스로 겨울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계절’

© liuchi, 출처 Unsplash

#2.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답이라고 생각했다. 짧은 순간에 즉흥적으로 답한 내용치고는 철학적인 포인트도 있고, 왜 그렇게 정의했는지 썰을 풀기도 좋다고 생각했다. 과외 선생님으로서의 진중한 모양새를 풀지 않은 채 으쓱거리며 왜 이렇게 정의했는지도 말해줬다. 결국 기준은 각자가 정하는 것이고, 인간이 만들어낸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순서가 있고 어쩌고 저쩌고 ...



어느 정도 내가 쏼라쏼라 떠들어 대는 것을 듣고 난 뒤 과외 학생이 1등 답안을 알려줬다. 그 답은 다음과 같았다.



“봄 ; 보다의 명사형”


© andreazanenga, 출처 Unsplash

#3.


학생이 알려준 답을 듣고 사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봄이란 단어를 듣고서 계절을 나타내는 봄이 가장 먼저 생각났고, 그 뒤로는 그저 ‘답을 하라’는 물음표에 함몰되어 내가 가진 생각의 답을 어떻게 잘 풀어낼까에만 몰입한 채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과외 선생님으로서의 쫀심으로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던진 뒤 학생과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1등 답에는... 감성이 없어...”


© BrinWeins, 출처 Pixabay

#4.


그 뒤로 나는 ‘봄’이라는 단어를 듣거나 마주할 때마다 그 때의 에피소드가 항상 떠오른다. 당시의 고민 끝에 뱉어낸 내 대답도 학생이 알려준 이외의 답도, 의외의 답을 듣고 난 뒤 느꼈던 깨달음 비스무레한 감정들도 내게는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다.




눈 앞의 문제에만 몰입한 채 답을 찾고, 그 답을 흡족해하며 그럴싸하게 늘어놓고는 더 좋은 듣고 감탄하면서도 자존심에 꼭 한 마디 덧붙이는. 그리고 10년이 지나도록 ‘봄’이란 단어를 볼 때마다 ‘보다의 명사형’을 꼭 떠올리는 그 모습들이 참 나답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Franz26, 출처 Pixabay

#5.

이후로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보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와 그 행동이 갖는 힘도 정말 좋고,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이미지와 느낌도 너무 좋다.


글을 쓰는 지금은 ‘봄’이라는 계절이다. 겨울이 연상되는 추위도 끝났고, 몇 년전까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내 마음도 어느덧 녹아든 느낌이 든다. 꽁꽁 얼어붙은 추위가 지나고 지금은 추위에 가려 있던 어떤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해가 가지 않던 일들,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감정들...


지금은 무엇이든 그냥 좋게 보려 한다. 그동안 나의 모남과 부족함으로 인해 놓쳐버린 사람들도, 기회들도 그리고 미래의 윤택함도. 그저 아프게 얻은 또 다른 결실이라 생각해보려 한다.



 봄, 다시 봄이다.




Written by. 개미




독서모임, 우리들의 인문학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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