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클럽 19년 4월, 열다섯번째 만남
1. 책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이란 본디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글이라면 완벽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말대로 운율이 느껴지는 산문이었다. 적절하게 숨어있는 위트와 간결하지만 단조롭지 않은 글 전개. 그리고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깊이있는 철학까지(참고로 이 책은 교보문고에서 ‘철학’으로 분류되어 있다).
하물며 모임의 대부분이 작가의 정치철학이 느껴진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 결말의 글로 읽었다는 평이 많았다. 어마어마하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되 욱여넣는 느낌이 없고, 글마저 깔끔하고 재미있으니 소화하기 편했다. 굳이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책 내용과 제목 사이에 거리가 있지 않나 싶은 정도? 이제와 고백컨대 처음에 제목만 보고 힐링도서인줄 알고 선뜻 내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읽고 난 뒤에는 대만족. 추천해주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2. 저자에서
‘나쁜 사마리아인’ 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장하준 교수가 있다. 그 뒤로 몇 권의 책을 더 출간했다. 주된 내용은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비판’이다. 스무살 무렵 이 책들을 읽고 전율을 느끼며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난다.
『후불제 민주주의』 에서 유시민 작가는 그의 저서들이 일반론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평했다. 현실에서 그의 주장과 이론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할지 궁금하다고...... 그러니까 내가 전율하며 공감하면 읽었던 이야기의 실체는 따지고 보면 ‘이웃을 사랑하라’ 처럼 지극히 맞는 말 중 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뜻이었다.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 역시 일반적인 이야기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작가가 말한 독자 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공분모’ 였을테고, 다룰 수 있는 제한된 주제와 범위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았다. 책에서 다룬 모든 주제에 위와 같은 기조가 일률적으로 적용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많은 오류를 무릎쓰고 이 책을 ‘삶-철학’과 ‘사회-공동체’로 나눠서 접근하자면 ‘삶-철학’ 부분은 너무나 좋았다. 위트가 있고, 강요가 없어서. ‘사회-공동체’ 부분은 아쉬웠다. 일반론은 있고 세밀함이 없어서.
“정부가 사회적 안전망을 충분히 구축해야 한다.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국민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국가 자체를 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꼴을 못 봤다는 생각에 증세에 대한 저항감도 크다. 지금 집권한 분들은 이걸 불식할 책임이 있다.“
인터뷰에서 인용한 그의 말이다. 묻고 싶다. 증세의 대상과 범위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지. 정치신뢰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 한국사회의 공감대는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런 질문 자체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렇기에는 이미 수 년째 체류중인 질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생각에 더 갈증이 났다. 그렇다고 이 분의 논문까지 찾아볼 깜냥은 안되니까.
오해가 쌓이고, 호오가 생기고, 저급한 비난을 받는 것이 저자와 같은 지식인의 숙명이 아닐까.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회와 공동체’에 관해서만큼은 그의 말대로 디테일을 좀 더 세웠으면 어땠을까. 비록 ‘소수독자’ 가 아닌 ‘대중’을 상대하는 칼럼일지라도 말이다.
3. 나에게서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모임을 해도 와닿는 문구와 이야기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내 마음대로 정리한 내용이라 책과 다를 수 있겠다. 지면이 허락하는 선에서 몇 개 뽑자면.
▶기억에 남는 책의 내용
: 성장에 관한 부분. 받아들이는 것은 쓰기의 영역이라기 보다 읽기의 영역이라는 부분. 설거지는 엔트로피 법칙을 거슬러야 한다는 부분. 숙의란 형식상의 절차가 아닌 공감대의 형성임을 강조했던 부분.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에 희망을 가진다는 부분. 상대가 나쁘면 나쁠수록 자신은 너무 쉽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부분 등등.
▶ 기억에 남는 모임 이야기
: 변화와 성장의 차이에 대해서 말해줬던 내용.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성장이라 착각한다는 이야기. 변화와 성장을 구분할 때 책에서 나온 정의가 꽤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 강아지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야기. 요즘 많이 고민하던 주제였는데 덕분에 생각이 많이 트였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여러가지가 눌려있는 이야기라 생각하면서 들었다.
4. 모임에서
처음으로 이틀에 걸쳐 모임이 진행되었다. 이틀동안 공통적으로 나눴던 주제는 ‘세월호 참사가 다른 참사들과 구분되는 이유’ 였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마음아픈 사건이기에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던 것 같다.
이 주제를 발제로 삼았던 이유는 세월호참사에 여러 사회적 균열점들이 숨겨져 있다는 점. 그리고 정치-언론-민심의 진행양상을 그 동안 함께 목도했던 사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그 날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 했던 여러 지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얽혀져 진행되어 왔다.
한 뼘 더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그 관점들이 분류되고 유통되는 방식에 대해서였다. 책에서 정치의 시작은 ‘구분짓기’ 라고 했다. 우리가 열띠게 토론했던 관점과 생각들이 현실에서 그 동안 어떻게 분류되고 유통되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여론과 민심을 구분짓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저자의 말대로 사회와 공동체는 정치를 통해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책 역시 그와 관련된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이 책으로 모인 우리가 현실에서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가 그 도구가 되어주길 바랬었고.
그런 와중에 빌런을 자처하며 오만한 자세로 여러 반론을 던졌던 것은 순전히 내 어리석음과 미숙함 탓이다. 그리고 욕심이었다. 우리 모임이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길 하는 욕심. 현실 어디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겠는가. 의견이 일치되기 보다는 현실에 있지만 쉽게 마주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꺼내보고 싶었다. 본디 성장이란 답이 아닌 질문 앞에 있는 법이니까.
아무튼 더 좋은 진행을 못한 것 같아 항상 아쉽고 죄송한 마음이다. 모두가 귀한 시간을 내어주어서 만든 자리인데.... 열심히 피드백을 받고 고쳐 나가려 한다. 모자라고 서툴지만 모임 덕분에 조금이나마 생각이 트이고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함께하는 모두에게도 훗날 이 모임이 그렇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욕심이려나. 아니다. 욕심어린 진심인 걸로 마무리 짓는게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