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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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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an 08. 2017

첫 영화

엄마가 형과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갔다. 일곱 살이었나,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88올림픽이 열리기 전이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했고, 나는 ‘영화’가 뭔지 몰랐는데, 형은 방방 뛰며 좋아했다. 가는 동안 엄마는 형에게 당부했다. “영화 끝나면 역 앞 슈퍼마켓 길 건너편에 있는 미용실로 와야 돼. 우성이 손 꼭 잡고 있고.” 나를 보고는 말했다. “이상한 아저씨 좇아가면 안 돼. 형 옆에 붙어 있어.” 영화를 보려면 되게 무서운 데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도착했다. 극장이라는 곳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팝콘이랑 콜라는 안 먹었다. 아마 팔긴 팔았을 텐데 엄마가 안 사준 것 같다. 엄마는 부자가 아니었다. 엄마는 양말도 꿰매 신었다. 그 시절엔 다 그랬을 테지만…. 상영관 문 앞의 나무 의자에 엄마랑 형이랑 나랑 셋이 앉아서 기다렸다. 엄마는 형이랑 나에게 계속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상영관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형이 덤덤한 나를 보며 말했다. “심형래가 나온다니까?” “와, 정말?” 나는 당황하며 물었다. 형이 대답했다. “응.” 상영관 문은 두껍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덮여 있었다. 푹신푹신해보였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엄마는 나와 형의 손을 잡고 뛰었다. 그 극장은 지정석이 아니었다. 빨리 가서 좋은 자리를 맡아야 했다. 엄마는 나와 형을 7~8째 줄 쯤 앉혔다. 좋은 자리가 분명했다. 심지어 스크린 중앙이었다. 엄마는 형을 보며 다시 말했다. 똑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형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듣지 않았다. 곧 실내가 어두워졌다. 엄마는 갔다. 그리고 나는 심형래를 봤다. 진짜 심형래는 아니었지만, 진짜 심형래보다 훨씬 큰 심형래였다. 심형래가 변신을 하고 하늘을 날았다. 극장에서 본 내 생애 첫 영화는 <우뢰매>였다. 

영화가 끝나고 형의 손을 잡고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고 계셨다. 엄마가 쓰고 있는 비닐봉지가 심형래가 영화 속에서 쓰던 핼멧처럼 보였다. 엄마는 변신에 성공했다. 더 예쁜 엄마가 됐으니까. 

올 초에 tv 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는데 옛날 극장이 나왔다. 검색해보니 동광극장이었다. 동두천에 있는. 나는 어릴 때 동두천에 살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엄마, 내가 어릴 때 갔던 극장이 이름이 뭐였어?” “이름은 기억이 안나. 근데 너 어릴 때 동두천에는 극장이 하나인가 두 개인가 밖에 없었어.” 엄마의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그 극장일까? 심형래가 하늘을 날아다니던, 그 극장. 


2016 07 _ 영화천국 50호


_ 주제가 '그 극장'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를 떠올리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나는 한 번도 지금의 내가 되는 순간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진짜... 없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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