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덜 외로울까
이혼을 하고 돌아왔을 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옆에 살 수 있어서.
엄마는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의사 말에 의하면 "이 감정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는 상태"였다. 엄마는 나를 돌보느라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내가 결혼을 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외동딸이다. 아빠는 5남매의 장남이다. 엄마와 아빠가 태어나던 시절엔 식구가 많은 게 당연했다. 그러니까 엄마가 외동딸인 건 아주 이상한 일이다. 엄마의 가정환경이 어땠는지 조금은 유추할 수 있다. 그걸 여기 자세히 적기는 그렇고... 아무튼, 엄마는 외롭게 유년을 보냈다.
엄마가 중학교에 입학해야 했을 때,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 가려면 걸어서 산을 넘어야 하는데, 우리 순옥이는 몸이 가벼우니까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순옥이는 50년 동안 학교에 가지 않는다. '50년'이라고 적은 이유는, 딱 그 시간이 지난 후에 학교에 가기 때문이다.
뭐, 다시, 아무튼, 엄마는 대략 이런 삶을 살았다. 아빠는... 술주정뱅이는 아니지만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 아빠는, 엄마랑 별로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정을 파괴할 만큼 나쁜 아빠도 아니다. 그러니까 아빠는 항상 할 말이 있고, 그 말은 정당하다. 아빠는 한나라당 지지자다. 지금은 자유한국당(이름 맞나?) 지지자다. 홍준표와 안철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홍준표를 찍었다. 아빠는 문재인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나는 정치에 관해서 아빠랑 할 얘기가 없다. 아빠는 이런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그 삶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엄마가 외로운 게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를 덜 외롭게 할 의무가 있고, 그걸 지키지 않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아빠에 대한 내 감정은 복잡하다. 그러나 이혼을 하고 돌아온 아들에 비하면 아빠는 훨씬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엄마에게는 아직 살아계신 엄마가 있다. 아직? 살아계신? 아흔 살이 넘으셨고, 십 년 넘게 치매를 앓고 계시니까. 엄마는 매일 저녁 할머니가 누워계신 요양원에 간다. 엄마는 가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좋겠다고 말한다. '돌아간다'는 말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돌아간다... 아무튼 엄마의 저 말은 순전히 할머니를 위한 것이다. 할머니도 엄마에게 자주 그렇게 말하셨다. "죽고 싶어." 하지만 이 말도 지금은 못 하신다. 할머니는 말을 못 하신다.
이혼을 하고 '돌아와서' 나는 엄마 집 근처에 오피스텔을 구했다. 엄마는 내가 이혼했다는 걸 꽤 오랫동안 주변에 말하지 않았다. 아빠도. 어쩌면 아직까지도. 한 번은 아빠가 술에 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서 엄마를 붙들고 울었다고 한다. "우리 우성이 이제 어떻게 살아"라고 말하면서. 나는 잘 살고 있다. 친구 부인이 소개팅을 해주면서 "그런데, 결혼했었다고 말하지 마요. 소개해주는 사람한테 저 욕먹어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뭐, 잘 살고 있다. 아마... 나 때문에 힘들게 사는 게 누구인지 나는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돌아왔고, 엄마 집 근처에 있으며, 당연히 결혼 생활을 할 때보다 엄마와 자주 만난다.
내가 돌아와서, 엄마는 (아빠랑) 혼자 살 때보다 덜 외로울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돌아온 아들이 있어서 덜 외롭다고? 세상 어떤 엄마가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세상 어떤 엄마가 실제로 저렇게 생각할까? 아들은 물을 수 없고 엄마는 대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