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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Jan 28. 2020

쿠스코에서의 복잡한 하루

1년 간의 세계여행 기록⎪몽상가도 때로는 지구 나들이를 합니다.

    여행 362일 차, 2018년 4월 14일

  오늘은 쿠스코에서 쉬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짐 한 번 정리하면서 버릴 것들 버렸다. 그러고 나니 빈 공간이 생겨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은 가방 무거워질까 봐 선물은 생각도 못했었는데 여행 막바지긴 막바지인가 보다. 느지막이 숙소를 나와 산 페드로 마켓에 갔다. 동생 주려고 알파카 인형도 사고 다른 시장에 들러 부모님을 위한 조각품도 샀다. 이제는 흥정도 지겨워 적당히 비교를 하고 빠르게 구매를 마쳤다. 여행을 하면서 쓰던 물건들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들을 오랜만에 사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정말 이 여행 생활도 끝이 나고 있다.


  오후에는 혼자 쿠스코의 요새였던 삭사이와만 유적지에 가기로 했다. 택시에 내려 천천히 입구로 걸어올라 가는데 슈퍼에서 한 여성이 나에게 왔다. 쿠스코 근처 관광지를 도는 택시 투어를 싸게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거절을 했지만, 계속되는 그녀의 설득에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게는 이미 통합 입장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관광지들이 꽤 멀기 때문에 택시를 타면 좋을 것이라고 계속해서 언급했다. 어차피 딱히 정해진 일정도 없었기에, 그냥 제일 먼 탐보 마차이만 가는 것으로 해서 20 솔에 택시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조금 비싼 돈이지만 그만큼 먼 곳이니 드라이브한다는 생각으로 택시를 탔다. 그런데 웬걸 막상 도착하니 20분은커녕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탐보 마차이 규모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내게 거짓말을 한 그 사람들에게도, 호기심에 별 생각 안 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나에게도 짜증 났다. 쿠스코는 주변에 관광할 곳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이전에 다녔던 관광지들도 매한가지였지만, 더 이상 나에게는 가격을 가지고 상인들과 한 판 벌일 에너지가 없었다. 아마 그래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구경 후 다시 삭 사이와만 입구로 돌아와 20 솔을 줬다. 괜히 씁쓸했다.


  다행히 삭사이와만은 넓고 볼 것이 많았다. 그냥 처음 생각대로 여기에 계속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지난 일일 뿐이었다. 해가 많이 떨어진 오후의 쿠스코를 감상하며 운치를 즐겼다. 앉아서 조금 쉬다가,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예수상을 향해 걷기로 했다. 쿠스코에서 당했던 크고 작은 덤터기들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그저 좋은 사람들일 수 있지만, 판매자와 구매자로 만났을 때는 다르다. 특히나 관광지에서 나는 돈을 가진 하나의 먹잇감이 된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덜 뜯기기 위해 사람들의 호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때로는 호의가 아닌 돈을 내야 하는 서비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 세상은 정말 모순적이야.'


  예수상 앞에 앉아 쿠스코 전경을 보며 혼자 괜히 심오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내 시야 안으로 꼬질꼬질한 한 동물의 얼굴이 쑥 들어왔다. 알파카였다. 뒤에는 페루 전통 의상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 딸과 함께 알파카를 잡고 있었다. 쿠스코에는 이렇게 알파카를 데리고 다니며 돈을 받고 사진을 찍게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녀가 나에게 호객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석양 시간에 맞춰 올라왔다가 잠시 숨을 고를 겸 멈춰 선 것 같았다. 우연히 내 시야 속에 들어와 정체모를 무언가를 씹으며 메에 거렸다. 자신의 존재만으로 주인에게 돈을 벌어다 준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파카는 그저 검고 둥근 눈을 껌뻑거렸고 그 모습이 나의 마음을 비워주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3솔을 주인에게 주고 그 녀석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 빼고는 다 복잡했던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과연 모순적인 세상이 날 정말로 복잡하게 만든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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