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년 전에 집 정리를 하다 90년 대에 아빠가 사용하던 필름 카메라 2개를 찾았다. 그 중 하나는 상태가 꽤 심각해 수리비가 만만치 않게 들 것 같아 상대적으로 수리비가 낮았던 펜탁스 카메라를 먼저 고쳤고, 그걸 두 달 정도 들고 다닌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필름카메라를 접했다.
세운상가로 달려가 장인에 가까운 경력과 경험을 가졌다는 한 유명한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 쓰윽 한번 보시더니, 지금 이 수리에 필요한 장치(?) 하나가 마침 없다, 다음에 다시 오겠느냐, 아님 맞은편에 있는 수리 가게에라도 가보겠느냐 물어보셔서 나는 후자를 택했다.
총 수리비는 가볍게 3만 원, 그리고 사용 방법까지 같이 배워왔다.
그렇게한동안 잘 쓰고 즐겼지만 아무래도 돈이 많지 않은 이직 준비생에겐 필름 값과 인화 값이 갈수록 만만치 않게 느껴졌고 결국 필름 카메라의 표면만 좀 손에 문질러본 채 익혀보는 단계에서 연습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나름 아쉬운 기억이다.
아빠는 카메라를 수집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딸은 카메라를 좋아한다.
어릴 때 늘 집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것이 그저 당연하게만 보였던 필름들이, 토이 카메라를 지나 성인이 되어 진짜 사진찍기를 즐기게 된 나에게는 어느새 사진과 관련하여 기억하기 좋은, 멋진 추억 장치들이 되어버렸고,
그동안에는 공부해야 한다는 나름의 엄격한 룰이 있어 취미 생활을 멀리했지만
이직에 성공한 지금은 좋아하는 것들을 굳이 멀리해야 할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유롭게 카메라를 들고 다시 사진 연습 중에 있다.휴대폰 필름 애플리케이션도 이것저것 조물조물 조작해보기도 하면서.
당장 어떤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직업으로서 사진 전문 작가를 꿈꾸기에는 배움으로 채워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지라, 그냥 지금은 이 취미를 닦아 특기로서 살려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만이 반짝반짝일 뿐이다.
행복하고 싶다.
그 수단으로 쥐고 있는 건, 카메라 하나.
순간의 감상을 글로 옮길 수 있을 때 감사하고, 사진을 찍을 때 희열을 느낀다.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달은 것도 불과 얼마 전의 이야기다. 잠시나마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월 따라 겁이 많아진 나는 가장 좋아하는 것의 단점들마저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그릇이 더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은두 번째 꿈을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사람 인생이라는 건 역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
"이건 어떻게 작동시키는 거예요?"
필름 카메라를 들고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딸이 당신의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셨는지 근래 뵌 모습 중 가장 많은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사실 어떠어떠한 것들을 가르쳐주셨는지는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필름과 카메라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리고 그것에 얽힌 기억들을 들려주시던 그 모습만이 인상에 남아 선명하게 기억에 각인되었다.
나는 나의 아빠에 대하여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30년 전 당신의 세상을 바라보던 그 렌즈를 통해 이제는 그의 딸이 자기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다.
알고 싶은 게 많다.
카메라의 종류, 색감과 필름의 차이는 무엇이며 아빠는 이 작은 렌즈로 어떤 색감의 세상을 눈에 담으셨고포착의 순간에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등등.
음, 그러고 보니 내가 궁극적으로 알아가고 싶은 건 필름카메라 그 자체보다는 그시절 아빠의 일부인지도 모르겠다.
이제이 취미 생활을 깊게 파고듦으로써 일상생활의 힘듦도 극복해나가볼 생각이다. 어째 말장난 같기는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