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생활기
MBTI 과몰입은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나는 I형의 인간이다.
발령 받고 동기들과 서로를 갓 알아갈 때를 생각하면 무엇이든 처음의 인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마치 E의 성향인 척 참 사람들을 많이도 만나고 다녔다. 그때는 퇴근하고 약속을 잡아도 피곤하지 않았다. 발령을 받은 과의 업무가 더 지옥 같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간에 업무적으로 받은 무력감과 스트레스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며 풀고 그 과정에서 받은 힘으로 자존감을 세웠다. 그리고 그것으로 일상을 지탱했으니 그때는 잠시나마 내가 E의 성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불과 2년 하고도 4개월 전의 이야기다.
첫 끗발의 기운으로 공직에서의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 넓혀 놓았지만
사람의 본성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
쳇바퀴를 도는 일상에 가속도가 붙었다. 업무도 주변 사람들도 익숙해졌다. 문득 내면을 들여다 보았다. 시험 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비축해두었던 마음의 에너지가 이제는 고갈되어 바닥이 보였다. 어느 순간 나라고 생각해온 내가 없었달까. 그 자리엔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주며 가면을 쓴 채 얼굴도 보이지 않는 사람만이 서 있었다.
“너 정말 극 I 같더라.ㅋㅋㅋ”
자치구 대축제가 있던 날, 동기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별로 자치회 주민들을 위한 응원 대회가 있었는데 어쩌다 동대표로 끌려나갔다.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을 주도해야만 했다. 멀리서 날 알아본 다른 동 동기가 내 표정을 읽고는 놀리려고 문자를 보냈다. 극 I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주민들의 에너지를 감당하기엔 난 기력이 너무 약했다. 내향인의 당황스러움이 만인 앞에 드러난 첫 순간이랄까.
그때부터 진로를 진지하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묶여있던 축제나 행사가 올해 그 상황이 풀리면서 2, 3년 만에 재개되기 시작했다. 요즘 참 여러가지 일에 동원되고 있다. 그러자니 현실에 대한 타격감도 없지 않다. 동 주민센터의 경우에는 구청보다 주민들과의 거리가 더 가깝다. 마을 어른들을 위한 행사도 생각보다 많고 챙겨야 하는 주민자치협회, 위원들도 적지 않다. 이제 겨우 3년차에 접어든 ‘신규’인 공무원에게는, 아니지.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쓰는 게 하루하루 버거운 내향형 공무원에게는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가 좁혀지는 상황들이 버겁다.
그렇다고 내가 선택한 직업을 스스로 원망하면 이것 또한 불행을 자초하는 길일 테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많다.
선배가 말하기를,
공무원도 외향적이어야 잘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이 말 하나로 앞으로의 공직생활이 아득하다. 그러나 길은 언제나 있다.
내향인의 장점을 살려 살아남을 것인가. 직업적 외향인을 선택해 살아갈 것인가. 답도 없이 어디까지나 마음 먹기에 달린 이 고민을 주말 밤 글을 쓰며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