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엔지니어가 바라보는 '일'
22.08.21
일에 한참 치이다 잠시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한국에서의 프로젝트는 늘 바쁘게 흘러간다. 일에 내 시간을 뺏기게 되면 여유가 없어서 내가 좋아하던 일을 잠시 내려두게 된다. 바쁜 와중에 짬이 생겼을 때 하는 일이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라던데 약속들을 뒤로하고 먼 김포에 있는 새로운 동네의 한적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새로운 동네를 거닐고 자연 속에서 일상의 템포를 조절하면서 그간의 생각들을 글로 담는 것을 정말 좋아하나 보다. 이런 걸 보면 10년 내내 E가 계속 나오는 게 마냥 신기하다. EN 성향은 내향형의 모습과 외향형의 모습을 고루 갖추고 있는 양향형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데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주니어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일이 바쁜 게 마냥 싫지만은 않다. 기계 같은 무의미한 일들의 반복이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그런 지도 모른다. 늘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공부하고 해결하고 또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공부하고 이것들의 무한한 반복이 내 일이다. 아직 우리 회사에서 아무도 해 본 적이 없는 고민이라 팀원들끼리 계속 머리를 맞대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답을 찾아나가는 중이다.
힘들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무얼 위해 이렇게 공부하나 싶기도 하지만, 다 같이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희열과 나만의 솔루션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즐거움, 이를 토대로 어느 순간 주도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안하고, 제안한 내용이 딱 맞을 때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이를 완벽하게 만들어가기 위한 공부들이 결국엔 내 커리어로 이어지는 공부이자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겉으로 보이는 삶에 비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그저 내 다른 좋아하는 것들을 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렇게 내가 살 수 있는 이유는 결국은 이 과정이 재밌기 때문이다. 재밌지 않으면 절대 절대 즐길 수 없다. 헌데 이런 과정들이 재밌다고 느껴지면 공부하는 것이 곧 일이자 취미가 되고, 어느 순간 내가 퇴근 후 하고 있는 것들이 일인지 취미인지 모르겠는, 일과 일 이외의 삶의 경계점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커리어적 관점에서 보면 좋은 현상일 수 있지만, 개인의 삶의 관점에서 보면 내 삶의 절대적인 부분들이 일이자 공부인 거라 그 외의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미루는 상황이 계속 생긴다. 내가 주도해서 벌어진 상황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른 것에 할애할 시간이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위에선 아쉽다고만 표현했으나, 때때로 아쉬움을 넘어서 내 스스로를 향한 pressure가 되기도 한다. 고시생도 아니고 내가 왜 이렇게 까지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이따금씩 든다.
이 삶이 싫다는 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요새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종종 하게 된다. 다행히도 아직까진 하고 싶은 게 많은 생기를 간직하고 있는 20대지만, 과연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도 지금의 삶을 즐긴다고 말할 수 있을지,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기에 수많은 가치들 중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가치들로 채워가며 살아가는 삶이라지만, 정작 중요한 것 들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닐지, 지금에만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 가족, 친구 등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는 것을 놓치고 내 목표를 이루는 것에만 몰두한 삶은 아닌지.
어쩌면 주기적으로 이런 생각들을 하기에 번 아웃 없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바쁜 삶 속에서도 나름의 방식대로 스스로 템포를 조절하며 놓쳤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거니까. 마음 가짐에 따라 마주하는 상황들을 받아들이는 방향이 달라진다고, 무엇이 됐던 지금처럼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살되 이따금씩 멈춰서 주변을 돌아보며 미처 챙기지 못했던 소중한 나의 또 다른 것들을 챙겨보면 된다.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글도 쓰고, 다시 재정비할 계획도 세워보고,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새로운 또 무언가를 만들어가 보려고 한다.
비단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거다. 살기 위해서, 자기 계발을 위해서, 혹은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등 각자만의 사정으로 공부를 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마 놓지 않는 게 아니라 놓지 못하는 것이겠지. 공부를 떠나서 각자만의 고충들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분들도 분명 많을 것 같다. 모두가 현명하게 각자의 방식대로 템포를 조절해 가며 번아웃에 빠지지 않고 이런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하고 작게나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