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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nt Jan 06. 2023

해외출장기

리더가 되는 것도 꽤 멋진 삶 같아

22.12.08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벌써 만 2년을 다 채우고 3년 차를 바라보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입사해 아는 것도 없이 재택근무만 반복하다 보니 안 그래도 빨리 가는 시간이 녹아 흘러내린 것만 같은 느낌이다.  


같이 회사를 다니고, 같이 일개미 같은 삶을 살지만서도 어느 회사에 다니느냐에 따라 회사 내에서 체감하는 레벨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같이 인턴을 했던 스타트업에 다니는 친구 중엔 나랑 연차가 같음에도 벌써 파트장을 단 친구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 3년 차는, 특히나 우리 회사처럼 조금은 연령대가 있는 조직에서는 아직 모든 것이 용인되는 막냉이 그 자체다. 직급이 없는 회사라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40대는 되어야 파트장이나 팀장 역할을 하시는 것 같다. 때문에 아직은 정말 부끄럽지만 일을 할 때 별다른 생각 없이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데에 급급한 철없는 막냉이이다.

리더? 리더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 아직 너무 이르기도 하고, 나의 꿈은 '취미 부자 일개미'이기에 단 한 번도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나에겐 너무나도 먼 미래의 일일 뿐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최근에 임원분과 컨퍼런스를 다녀오게 됐다. 조직 특성상 임원분께서 출장을 가지 않으시면 팀원은 더더욱  기회가 없기에 일부러   자리를  마련하여 팀원들에게 출장의 기회를 제공하려 하신다고 했다. 어디 멀리 가고 이런 컨퍼런스 참여하는 것을 귀찮아하시는(?) 팀장님들 덕에 우리 그룹 내에서는 팀원과 함께 가는  꽤나 흔한 조합인데,  조직,  회사에선 그리 흔한 일은 아닌  보다. 식사자리에  때마다 어떻게 이런 막내가 따라왔냐고 놀래하시는  보니 적어도 우리 그룹사 내에선 흔하지 않은 일인  확실하다.


돌아와서 다들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다고 해주셨는데, 사실 나는 가서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즐거웠다. 새로움에 항상 설레하는 사람으로서 해외를 가는 것도,  세계에서   명씩이나 참석하는 컨퍼런스에   있었던 것도 너무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너무 멋있게 사시는, 개인적으로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닮고 싶은 사람,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한정으로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지만서도 친해지는 것에 큰 미련 없는 내가 굳이 노력을 해서라도 친해지고 싶어 한다.


2년 전, 입사한 지 한 달 즈음 됐을 때다. 처음으로 임원분과 나, 동기 한 명이랑 점심을 먹으러 갔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으나 30살가량 어린 나와 내 동기한테 본인께서 요새 어떻게 지내시는지, 그리고 신입으로서 일 외적으로 앞으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면 좋을지에 대해 정말 가볍게 이야기해 주셨다.

보통 2n 살았으면  사람 나랑 비슷한  같다,  맞을  같다 하는  정도는 기를  있다. 격주로 산도 타시고,   출근  아침마다 달리기도 하시고, 로드 트립도 자주 떠나시면서도 책과 배움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곤 동족(?) 향기를 강하게 느끼면서 '취미 부자 일개미'로서의 성공한 본체를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었다. 기회가 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했으나 현실적으로 신입과 임원의 , 간접적인 connection 생기긴 쉽지 다.


작년 한 해는 신입이기도 했고 했던 일의 특성상 임원 분을 따로 마주할 기회가 전혀 없었지만, 올 한 해는 나름 조직 내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팀원들과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작년에 잠시 느꼈던 것보다 훨씬 폭넓으신 경험, 비슷한 가치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들, 긴 조직생활과 다년간의 임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을 느끼며 당시 나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늘상 회사 밖에서나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 내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고 신났었던 것 같다. (여담으로 대체로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으로 이상을 추구하는 ENTJ 성향의 사람들에 굉장히 혹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ENTJ셨다..ㅎ)


애초에 시작부터 이런 마음으로 떠난 출장이었기에 개인적으로 너무 잘 다녀올 수 있었다. 나는 그분을 조직의 최고 상사로서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어른'으로서 대했기에 편하면서도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고, 덕분에 별 얘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팀장이었을 때, 임원이 되기까지의 일들, 가족 이야기, 딸 가진 아빠로서, 사회 선배로서 해주는 이야기 등 어쩌면 꺼려질 수도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스스럼없이 해주셨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수확 중 하나는, 술이라곤 맥주나 막걸리 밖에 모르던 내가 와인과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번 호주 여행 때도 덕분에 와인을 하루에도 두세 잔씩 마셨고, 최근엔 출장 당시 마셨던 라프로익이 생각나 친구와 위스키 바에 가서 이러려고 돈을 버는 거라며 그 비슷한 종류로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른다.


비록 나이 차이가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그룹 내 막내 사원이 아닌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 주시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이런 분인걸 알았기에 내가 좋아했고, 그랬기에 나 또한 편하게 대할 수 있었던 거지만. 생각해 보면, 임원 분 입장에서도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이게 요즘 말하는 MZ 세대인가' 싶었을 거다. 일반적으로는 '임원'이라는 직책의 무게감에 압도되어 FM대로 행동하기 마련인데 막내라는 놈이 무슨 아빠 친구 대하듯 여행에서 만난 동행 대하듯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나이를 먹으며, 또 후배가 생기면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 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괜히 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지 않을지 노파심이 앞서 오히려 조심하게 되더라. 내가 먼저 그 벽을 깼기에, 어쩌면 내가 직장 상사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하고자 하는 것을 아셨기에 되려 나를 편하게 대하셨는 걸지도 모른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오고 가며 마주칠 때마다 반가워해 주신다.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고 열정을 가지게 되는 데에 사람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편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하던 과목은 선생님이 정말 잘 가르쳐 주시거나, 아니면 인간 대 인간으로 본받고 싶은 분이신 경우가 절대다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곧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가르치시던 과목이었고, 중학교 때 그렇게 싫던 수학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고등학교 때 당시에는 잘 나가던 인강 강사던 신승범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전공과목의 교수님이 최근 '베스트티처'로 뽑히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참 한결같다며 실소했다.


직장을 다니면 이런 일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비슷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 과연 회사 내 이 사람처럼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딱히 직장 내에서 개인적으로 닮고 싶은 멋있는 사람도 없었고, 잘 보이고 싶은 사람도, 칭찬받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냥 다들 돈 벌러 다니는 곳이고, 그렇기에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그랬던 나한테 출장을 기점으로 그런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출장에서 그분으로부터 받은 직접적인 내 업무가 출장 보고서 작성이었다.


사실 말이 보고서 작성이지 '컨퍼런스 다녀와서 이런 거 듣고 왔어요!'를 소개하는 자료니, 며칠 내내 들었던 수많은 영어 세션들을 보기 좋게 요약해 전달하는 PPT를 만들어야 했다. 사실 적당히 해도 되는 일이다. 상부 보고용이 아닌 조직 내 공유용이고, 인사 상황상 더더욱 적당히 해도 되는 명분이 생겼었다. 만약 보고서 작성 업무를 주신 주체가 다른 분이셨다면 정말 죄송하지만 뺀질거리며 어떻게든 최소한의 기준만 맞추려고 했을 것 같다.. 아마도.. 근데 이 분께 만큼은 업무적으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그래도 저 잘 정리하지 않았나요?'라며 결과물로써 나를 말하고 싶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나한테 그분이 직장 내 단비 같은 존재로 다가왔듯, 그분께 내가 특별하진 못해도 일 못하는 애로 남고 싶진 않았나 보다.






임원쯤 되면 '얘가 이 자료를 만드는데 이 정도 시간과 노력을 쏟았겠구나' 하는 정도의 감이 생기나 보다. 다행히 내가 만든 자료를 좋게 봐주셨다. 내 노고도 알아주셨다. 부끄럽지만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정말 잘하고 싶어서, 돈이 아닌 '칭찬'과 '인정'이라는 보상을 받고 싶어서 주체적으로 무언가 한 것은 입사이래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은 팀원들과 함께 일을 하고 함께 공을 인정받았다면, 이건 오롯이 혼자의 일이었기에 더욱 열심히 했나보다.


너무나도 사소한 일이고, 정말 저 메일 한 통과 며칠 동안의 대화들로 직장인으로서 꿈꾸던 '취미 부자 일개미'에서 '일개미'의 정의를 다시 해보게 되었다. 여전히 '취미 부자 일개미'가 꿈이지만 취미가 아닌 일로서, 더 나아가 조직의 리더로서 인정받는 것도 꽤나 멋있는 일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비록 아직 2년밖에 안 됐다는 말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부끄럽게도, 그동안 일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항상 '남들에게 피해 끼치지 않을 정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결과물을 내자'라는 즐겜러에 가까운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고, 사실 그랬기에 이번 출장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만약 이 직장에서 큰 뜻이 있었다면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절대 가지 못했을 거다.


다녀와서 제일 크게 느낀 것은 '정말 아무나 팀장 달고 임원 다는 거 아니구나'였다. 팀장의 자리가, 임원의 자리가 생각 이상의 능력을 요함을 크게 느꼈고, 리더로서의 능력이 실무와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일 뿐 잘 수행하기 위해선 충분히 Challenging 한 일이구나라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생각 없이 일하던 내가 일을 잘하고 싶고, 그걸 넘어서 조금 더 내 생각과 논리를 담아 주체적으로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고, 직장생활의 목표가 단순히 '즐기자' 였다면 '즐기면서 일도 잘하자'라는 다짐으로 바뀌었고 그걸 넘어서 '언젠가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라는 또 다른 목표도 하나 생겼다.


말 한마디의 힘을 알기에 멘토링이나 강연 등의 제안이 오면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나의 말 한마디로 한 명이라도 선한 영향을 받아 바뀔 수 있다면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다. 리더는 팀, 조직을 이끌면서 속한 구성원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하는 사람이며, 결국 조직 내 멘토이다. 말 한마디로, 행동 하나로 조직원들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리더의 능력이고 좋은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역량이다.






이번 출장은 여러 방향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출장이었다.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끔 Trigger 역할을 해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친밀감을 쌓았으며, 임원으로부터 회사 내외의 삶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리더'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 적도 없는 내게 '좋은 리더가 되는 것도 멋있는 삶이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던 값진 경험이었다.


더불어 성향이 맞는 리더와 함께하는 것도 정말 큰 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일하는 조직원들끼리, 특히 상사와의 일의 대한 가치관이 일맥상통하는 것이, 회사 내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일을 하는 데 있어 굉장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심어준 상사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직장 내 좋은 인연을 하나 더 만든 것도, 비록 앞으로도 직접적으로 일을 같이 하는 경우는 0에 수렴하겠지만 1년을 더 같이 지내면서 틈틈이 보고 배울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앞으로의 직장 생활에서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다.


언젠가 나도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임원 분도 직장을 떠나 당신께서 가고 싶어 하셨던 여행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쯤 '사실 제가 당시 이랬다'며 이 글을 보여드릴 수 있는 날이 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당신을 통해 이런 생각을 가졌고,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이렇게 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그리고 그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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