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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nt Jan 28. 2024

2014년, 19살의 '나'에게서 온 편지

그리고 10년 후,  29살의 '나'로부터 19살의 '나'에게 쓰는 답장

24.01.27


과거의 나에게서 받는 편지라니, 누구나 한 번쯤 상상만 해보던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믿기지가 않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이 벅차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당시 담임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런 분이야 말로 진정으로 학생을 위하는 교육자이신 게 아닐까 한다.






며칠 전, 느닷없이 "너 혹시 편지 받은 거 있어?"라는 고등학교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당최 무슨 소린지, 편지를 쓴 기억조차 없는데 무슨 편지냐고 했으나 하나둘씩 편지가 왔으니 우편함을 주시하라는 친구들의 말에 기억도 안나는 편지를 내심 기대하기 시작했다. 동생한테 전화해 오늘내일 우편함을 잘 봐달라고 했고 그렇게 다음날 사진 한 장을 받았다.



편지는 그렇게 본가를 거쳐 서울로 배달됐고, 편지를 꺼내 읽는 순간 어디 S3 Glacier 쯤에 (미안.. 컴퓨터쟁이라서..) 저장되어 있던 기억이 끄집어 와 진 듯 이 편지를 적은 순간과 감정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그 당시 감성의 사진들..


(편지를 받은 이후 기억을 더듬은 재구성이라 꽤나 많은 오류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14년 2월 말, 정식으로 3학년이 되기 며칠 전이었다. 10년 후 나에게 쓰는 편지를 써오라는 숙제 아닌 숙제를 받았고 '당장 내일의 나도 모르는데 10년 후의 나에게 무슨 편지야', '귀찮게 이런 걸 왜 해'라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건 새벽에 써야지 야자시간에 적을 수 없다며 편지지를 챙겨 집으로 갔던 것 같다. 감성에 젖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나 보다. 안 그래도 작은 글씨로 궁금하던 것들을 세상 꾹꾹 눌러 담았고 나름 그때 친했던 친구들을 기억했음 좋겠었는지 몇 장의 이미지 사진과 스티커 사진, 증명사진들을 넣어 편지봉투에 담았던 것 같다.


약간의 스포를 해보자면, 아니 애 늙은이도 아니고 19살이 무슨 "10살이나 어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만은 네 주관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게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때 당시엔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도 않았고 고2 땐 나름 성실히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는데 대체 무엇을 계기로, 왜,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지 29살의 나는 기특함과 대견함의 감정을 넘어 정말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19살의 내가 기대하던 29살의 나와 현재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한 것 같아 감회가 남달랐다.


각설하고, 19살의 나, 정확히는 고3 반 배정이 되기 바로 직전 마지막 고2시절의 나는 29살의 나에게 궁금한 게 정말 많았고 신기하게도 정녕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고2가 할 수 있는 생각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 성숙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나의 이런 본체가 어느 순간 여행을 많이 다니며 조금은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남들과 조금은 다르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편지를 읽어보니 그저 입시를 준비한다는 상황상의 제약으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일 뿐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고를 하며 나름의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찍이 나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던 놈이었고 그랬기에 지금껏 그렇게 행동해 온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참 술 마시고 놀기에도 바쁜 20살 신입생 시절, 나는 그렇게 술만 마시고 노는 건 재미없다며 그런 생활을 4월쯤에 청산하고 동아리 방에서 합주를 한다던지, 아니면 갑자기 수리 가형으로 수능을 보고 싶다며 수학공부를 하기도 했었다. 그 외엔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근교 신도시를 카메라 하나 매고 혼자 돌아다녔다. 돌이켜보면 그저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그때부터 이미 내 주관은 너무나도 뚜렷했다. '남들이 뭘 하든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라는 거.




 


그리고 29살의 '나'로부터 19살의 '나'에게 보내는 답장


2024년의 내가 2014년의 너에게.

안녕? 네가 이 편지를 쓴 시점이 김연아 선수가 은메달을 땄을 때라니 새삼 시간 정말 빠르다. 상대가 형광나비던가..ㅎㅎ 수험생활은 네가 기대한 만큼은 아마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아. (사실 벌써 9년 전이라 이미 왜곡이 될 만큼 되어있어 미안해) 네가 당시에 원했던 대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골쥐 상경했고, 나름 적당한 직장도 잘 들어왔어! 평창 올림픽 자원봉사는 진짜 하고 싶었는데, 그때가 내가 마지막으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는 기회였던지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교환학생이라는 선택을 했어. 만약 휴학을 했다면 평창 올림픽 자원봉사도 하고, 교환학생도 다녀왔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땐 이 생각을 왜 못했나 몰라. 그래도 나름 우리나라에서 하는 올림픽을 외국에서 다른 나라 친구들과 보면서 '저기가 어디고 나도 저기서 스키 탔었다~' 하며 나름 또 재밌게 올림픽을 봤었어. 넌 미래의 내가 정말 궁금했었나 봐. 나도 성실히 답해볼게


1. 

첫 번째 질문이 키라니ㅋㅋ  솔직히 말하면 더 자라진 않은 것 같은데 왜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보는 애들마다 'ㅇㅇ아 키 또 컸어?!'라고 하긴 해. 그냥 받아들이고 살고 있어! 20대 초반까진 조금 그랬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턴 이 키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 사람들한테 기억도 잘 되고 옷 빨 못 받는 것보단 낫잖아ㅎㅎ


2.

엄마 아빤 다행히 건강해! 아빤 퇴직 시기가 좀 남긴 했지만 퇴직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고 걱정이 좀 많아 보이긴 해. 그래도 뭐 어떻게 또 되겠지 뭐..ㅎㅎ 이젠 나도 돈을 벌고 있고 서로가 다른 인생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거라 생각해서 어련히 준비하시겠지 하고 있어. 늘 다니던 독서실은 작년까지 두 분 중 한 분이 운영하셨다가 작년에 스터디 카페가 들어왔어. 5년 전부터인가, 독서실에서 스터디 카페로 트렌드가 좀 바뀌었거든. 그래도 그 속에서 꽤나 잘 버텨오셨던 것 같은데 결국은 좀 힘들었나 봐.. 나도 따로 떨어져 살다 보니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진 잘 버텨내고 있는 것 같아.


3.

몸무게는 너의 65키로 시절이 기억도 안 날 정도로 1학년 1학기 보내자마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어. 보통 1학년 때 술 때문에 살이 찐다던데 내가 술을 즐기지 않아서 그랬나 봐. 뭘 하지도 않았는데 살이 쭉쭉 빠지더라고. 나도 편지 읽으면서 '아 맞다, 나 고3 때 이랬지' 생각이 났네.

요새는 회사 동기들이랑 '통통기린 프로젝트'라고, 내가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며 살 찌우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 그런데 원체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 운동량에 비해 섭취량이 받쳐주질 않아서 여전히 53-56을 왔다 갔다 하고 있어. 볼살을 좀 찌우고 싶은데 이게 뭐 맘처럼 돼야 말이지.


4.

아이패드를 쓴 지도 벌써 7년째라 잘 몰랐는데 최근에 내가 경민이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편지를 썼었거든. 여전히 글씨는 정말 작더라ㅎㅎ 19살의 너랑 별반 다르지 않아.


5. 

아쉽게도 작곡은 못 배웠어. 여전히 배우고 싶다는 마음은 있긴 한데 그 정도가 예전만큼은 아닌 것 같아. 아무래도 다른 흥미로운 것들이 많아서 우선순위에서 조금 밀렸나 봐. 악기방은.. 서울에 방을 한 개 이상 가지는 것이 네가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아서 말이지..ㅎㅎ 그래도 39살의 나는 취미방 하나쯤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해. (부디..) 그래도 악기들은 나름 한 구석에 악기 Zone에 모여 있어. 이거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ㅎㅎ

밴드는 다행히 지금 회사 동기들끼리 하고 있어. 어느 순간 알게 된 건데 나는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직접 해보는 것을 좋아하지, 하나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과는 그리 맞지 않더라고. 왜 연주자는 공연하는 순간에는 빛나지만 그 순간을 위해서 뒤에선 정말 치열하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잖아. 그래서 연주자로서의 무언가는 묻어두고 음악은 음악으로서만 즐기려고 해!

보컬도 대학교 때 아주 잠시 배웠는데 연습하기가 어려워서 하다가 말았어. 자취방에서 큰 소리로 부를 수도 없고, 코인 노래방을 갈 수도 없고, 연습 장소가 마땅치가 않더라고. 근데 요새 고함 항아리라고 방음되는 통이라 해야 하나, 그걸 샀는데 흡음력이 꽤나 좋더라고? 그래서 만간 다시 한번 배워볼까 싶어.


6.

한참 진로 고민이 많았을 때였네.. 너무 느껴진다.. 고생 많았어... 

근데 말야.. 아직 그때 너는 너를 잘 모르긴 했나 봐. CPA라니!! 회계사라니!!! 지금의 나는 듣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직업인데 나름의 현실과의 타협이랍시고 생각한 게 그거였다니!! 그 길로 흘러가지 않아서 정말 진심으로 너무 다행이야.


여전히 나는 도시, 건축에 너무 관심이 많고, 전공으로 공부하진 못했지만 여전히 내 행복한 취미생활 중 하나로 남겨두고 있어. 예를 들면 여행 다닐 때 건축을 테마로 돌아다닌다거나 관광이 아닌 도시의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걸어 다닌다거나 이런 것들?


진로는 정말 네가 상상도 못 한 방향이긴 해! 난 지금 컴퓨터를 하고 있거든. 고3 때 내가 비록 문과지만, 어쩌면 문과여서 일 수도 있지만, 그 사이에선 수학을 꽤나 잘하고 좋아하는 걸 알아서 경영학과가 아닌 경제학과를 지원했었고 유일하게 붙은 이 학교만 상경학부로 뽑았던지라 경제/무역/통계학과 중에서 고민하다 통계학과를 선택했어. 1학년 말쯤인가, '지리학과 vs 부동산학과 vs 컴퓨터공학과' 셋 중에 뭘 복수 전공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었어. 마음은 지리학과였지만 현실을 고려하면 컴퓨터 공학과를 선택하는 게 맞았거든. 그런데 그 당시 나는 현실을 완전히 저 버릴 정도의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던 것 같아. 어쩌면 지금이야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안에서 내 이상을 마음껏 펼치고 있지만, 그때는 몇 년 후의 돈벌이가 걸린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깐. 

지리는 정말 좋지만 굳이 전공으로 공부하지 않더라도 그냥 지금처럼 좋아해도 되잖아? 여전히 나는 지도를 찾아보고 지형을 실제로 보러 다니는 걸 걸 좋아하거든. (네가 고3 때 그렇게 서울 지도를 본 덕에 대학교 가서 지하철 게임을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ㅎㅎ) 너 또 배우는 거에 욕심 많은 사람이니깐 만약 우리 집이 조금 더 여유로웠다면, 동생이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다면 부전공이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쉽긴 하지만 뭐 이건 지금의 생각이고 나름 현실과 잘 타협한 것 같아. 아, 대신 그 당시에 '디지털 노마드'라는 것을 알게 되고서 컴퓨터를 공부하면 돈을 벌면서 직접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겠다!라고 생각해서 컴퓨터를 공부하리라 마음먹었던 걸로 기억해.


컴퓨터는 음.. 솔직히 잘하는 건 아냐. 근데 확실히 재미는 있어! 여전히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만 공부하는데, 나름 수학 문제 푸는 것 같아서 일하는 것도 재밌고 공부하는 것도 좋아해. 직장에서 반복되는 일만 하게 되어 무료해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무료할 틈도 없고 오히려 가끔은 너무 무료할 틈이 너무 없어서 문제인지라 아직까진 나랑 잘 맞는 것 같아. 돈을 벌면서도 여전히 공부해야 해서 다행이면서도 안타깝지만 그래도 나름 진로는 잘 찾아온 것 같아!


학교는.. 아쉽게도 저 여섯 개에 있지 않아ㅎㅎ 그래도 내 기억엔 서강대 빼곤 다 논술 보러 갔던 것 같아. 결론적으로는 제일 하향지원으로 썼던 학교가 됐는데, 결과적으로 수능에서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세계지리를 정말 폭망하면서.. 하향지원마저 감지덕지한 상황이 됐었어. 반수를 할까 했지만 생각보다 과가 괜찮았고 그래도 거기서 나름 잘 공부해서 잘 졸업하고 적당히 잘 취업해서 돈 벌고 있어


7.

미안해 아직이야^_^ 뭐.. 연애를 안 한 건 아니고 결혼을 하고 싶단 생각도 여전한데 네가 뭐 평범했어야지.. 10년 전부터도 특이했다 보니 결이 비슷한 사람을 주변에서 찾는 게 좀 힘든 것 같아ㅎㅎ;;


8.

ㅋㅋㅋ 아직까지 걔들을 엄청나게 좋아하진 않는데 여전히 그런 느낌의 얼굴을 좋아해. 사람 취향 소나무라고 진짜 쉽게 안 변하나 봐.. 아 그래도 산들은 여전히 신곡 나오면 찾아 듣고 재작년인가 뮤지컬도 보러 갔었다!


9. 

미안.. 블로그는 20살 되고 또 어느 순간 귀찮아져서 다 비공개로 돌려버렸어. 지금 블로그 열심히 하는 친구들의 방문자수를 보니 나름 그때 열심히 했었던 것 같아서 좀 아깝긴 해ㅋㅋ 유목민처럼 이 블로그, 저 블로그 떠돌다가 지금은 기술 블로그는 티스토리에, 이런 끄적이는 글들은 브런치로 정착한 것 같아. 근데 브런치 플랫폼이 너무 작기도 하고 작가 위주로 밀어주는 시스템이다 보니 고민 중에 있긴 해. 그래도 아직은 이렇게 가보려고! 지금 와서 보니 이미 그때부터 나는 아는 사람 앞에서 나서는 것보다 모르는 사람 앞을 더 편해했던 것 같네. 아직까지 블로그에서 만났던 혜민, 재형은 여전히 안부 물으며 지내고 있어. 신기하지?!


10.

지금 너무 잘 살고 있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편지를 보고 알았어. 그럴 정도로 지금 잘 살고 있어! 지금 보니 조금 안쓰럽네ㅠㅠ 수능 보고 나서 상담도 몇 번 받아보고 했던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는 그냥 니 얼굴 그대로 잘 살고 있어! 나는 친구들이랑 사진을 찍으면 내가 젤 못 나온 내 모습을 내 실물과 가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정말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진들보다 실물이 낫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그래?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하며 그 이후로 그런 생각들이 싹 사라졌던 것 같아.

그런데 눈은 요새 다시 고민 중이긴 해.. 눈을 이마로 뜨다 보니 불편한 것도 불편한 건데 어느 순간 이마 주름이 눈만 떠도 정말 심하게 지는 것 같더라고ㅜㅜ 그동안은 별생각 없었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부터 앞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더니 다시 눈에 좀 걸리적거리더라? 근데 나는 무쌍인 내 눈이 정말 정말 좋거든? 이뻐질 수야 있겠지만 굳이 돈을 내고 불확실성을 감수하면서까지 흔한 눈이 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남자 안검하수 하는 병원, 정말 티 안 나게, 쌍꺼풀 라인도 거의 없이 안검하수만 해결해 주는 그런 병원 위주로 최근에 몇 번 찾아봤었어. 실제로 할지 말지는 조금 고민 중이긴 한데 (귀찮아서 말이지..) 아무튼 하게 돼도 불편해서 하는 거라는 거~ 이런 부분은 많이 성장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


11.

다행히 저기 적어놓은 친구들은 모두 아직 연락이 닿고 있어! 한 명은 인스타 친구로만 남은 것 같긴 한데 걔 빼고는 자주는 아니지만 아직까지 실제로 만나고 있고, 오히려 저기에 없는 친구들과 더 자주 만나는 것 같아! 근데 아무래도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처한 상황도 다 다르다 보니 만남의 횟수가 적어지기도 하고 예전처럼 대화가 막 잘 통하는 느낌은 아니더라고. 아 물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어! 어쨌든 아직까지 다들 실제로 연락을 하고 있긴 하니 신기하지?!


15.

동생은 벌써 전역한 지 두 달이나 됐고 최근에 유럽여행도 엄마랑 50일 동안 다녀왔어. 꽤나 기특하지? 그땐 그렇게 쪼만했는데 이젠 키가 훌쩍 커서 184라고 우기는 183이나 됐어. 얘 중학교 때 키 왤케 작냐고 너무 놀렸는지, 요새도 종종 내 머리에 손대면서 "야 왜 이렇게 작냐?"라고 해. 나도 173인데ㅋㅋ 다행이지 뭐.

다행히 아직까지 매일 연락을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친하게 지내는 남매인 편 인 것 같아. 얘한테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가끔 보면 얘가 가려고 하는 길이 내가 원래 가고 싶어 했던 길이었던 것 같아서 조금은 기특하고 대견해. 나는 지리학과 vs 컴퓨터 공학과에서 컴퓨터공학을 선택하면서 '그래 네이버 지도 같은 서비스를 개발하는 사람이 되면 되지' 했었는데, 사실 또 취업의 길에서 현실과 타협하면서 당시 유망한 빅데이터의 길을 선택했거든. 그런데 얘는 교통공학과를 갔고, 컴퓨터공학 복수전공도 합격했어. 예전의 나처럼 지도 서비스를 개발하고 싶대. 근데 뭔가 얘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름 하고 싶은 것도 확실하고, 생각보다 그것에 대한 뚝심도 있고, 전공도 '교통'을 걸쳐놨고. 스토리도 좋잖아? 얘 어렸을 때 맨날 301번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가고 그랬던 거 기억나? 고속도로 번호랑 출발지, 도착지 다 외우고. 그러더니 결국 교통공학과에 갔어. 나도 지도 좋아해서 우리나라 시/도 다 외우고, 외국 수도들도 다 외우고, 한국지리/세계지리까지 했었지만 결국 지리학과에 가진 못했잖아. 그래서 뭔가 대리만족이랄까? 티는 안내지만 응원하고 있어. 걱정은 조금 되긴 하지만 뭐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12. 

ㅎㅎ 너무 귀여운 질문이네. 21살에 파리를 시작으로 유럽에 눈을 떴고 그 해 겨울에 혼자 통영과 코타키나발루를 다녀오더니 23살부턴 본격적으로 혼자 이곳저곳 쏘다니게 돼..ㅎㅎ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남미도 다녀오고, 몇 달 전에 아프리카까지 다녀왔어. 벌써 다녀온 곳만 41개국 113도시네. 남미는 총 두 달 중에 엄마랑 이모랑 같이 한 달 반을 여행한다? 엄마가 나보고 '이미 남미 같이 가준 것만으로도 네가 할 효도는 다 했다'라더라ㅋㅋ 나도 갈 때는 걱정이 많이 됐는데 지금은 모든 게 다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아서 아주 잘 한 선택이라 생각하고 있어. 어학연수는 아직이지만 다행히 어학연수를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영어실력인 것 같아서 다른 방향을 꿈꾸고 있어. 그땐 몰랐을 워킹홀리데이나 해외취업 같은 방향으로. 생각보다도 멋지게 살았지?


13. 

돈은 그래도 다행히 먹고 살만큼은 벌고 있어..ㅎㅎ 어쩌면 그때 보다 현실감각을 더 잃어서 흥청망청까진 아니지만 좀 많이 쓰는 편인 것 같아., 그래도 뭘 배운다던지 새로운 걸 해본다던지 나름 의미 있는 곳에 돈을 쓰고는 있는데 하고 싶은 게 한 두 개여야지 줄이는 게 쉽진 않아ㅎㅎ 그래도 올해부턴 좀 제대로 모아보고 투자에도 좀 관심을 가져보려고 노력하려고!!


14.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추억 가득한 선생님들의 이름을 들어보네. 그때는 일타 선생님들이었는데 신승범쌤은 어느 순간 사라지셨고, 이기상쌤은 여전히 건재하신 것 같아. 1학년 때 유나랑 중계동 메가스터디인가.. 직접 가서 모의고사 해설강의 듣고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고 왔었어! 새록새록하다





나 그래도 네가 생각하는 대로, 아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 주관도 엄청 세고 훨씬 더 열심히, 그리고 많이 책도 읽고, 자기 개발도 하고, 여가활동도 즐기고, 좋아하는 일들, 하고 싶은 일들 틈틈이 잘 즐기면서 살고 있어. 건강 챙기려고 운동도 하고, 하고 싶은 일들 하면서, 그다지 사람들 눈치 안 보고 행복하게 살려고도 하고 있어!! 정말 신기하게도 지금의 내 생각이랑 다른 게 하나 없어! 여전히 똑같아! 하고 싶은 일들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거든. 외국에서 일해보는 거나 글을 쓴다거나 이런 것들이 그 꿈을 위한 작은 목표들인 거고. 내가 왜 이렇게 굳이 일들을 벌려가며 피곤하게 사는 건가 했는데 그게 원래 나였다는 걸, 단시간 형성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돼서 너무 기쁘고 과거의 네가 대견하고 기특해. 정말 감회가 새로워.


근데 왜 고작 19살인 너한테 나 그래도 그동안 잘 살았다고 자랑하는지 잘 모르겠어. 요새 조금 힘든 일들이 있었는데 위로받고 싶었나 봐.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하라는데 내가 요새 살짝 자신감을 잃은 것 같거든. 음 내가 최근에 회사에서 팀을 옮겼어. 나는 지금 시점에 팀을 한 번 옮기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옮겼는데 그 팀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같진 않다 보니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이었나? 너무 성급하게 결정했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원래의 '나'가 아닌 조금은 '딥해진 나'로 지내고 있었고, 이런 딥해진 나를 두고 '왜 요새 이렇지?'라며 자책하고 있는 상황이었어. 뭐랄까, 나는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능숙한 사람이라 여겨 왔는데 생각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걸 힘겨워하는 것을 보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고 한 발 더 나아가서는 내가 앞으로 그려오던 나의 미래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이었어. 왜냐면 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살고자 했었거든. 근데 사실 익숙하고 편안 환경을 선호하는 건 인간의 본성인 거고, 일주일 밖에 안 됐으니 당연히 겪는 감정인 거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는 것도 알고 그저 단순하게 '그동안 내가 모르던 새로운 나'를 알게 된 것일 뿐인데, 분명 건강한 나였으면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건강하지 못한 나이다 보니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


그리고 사실 어제 이 편지를 읽었을 때 내가 늦잠을 자서 어딜 같이 놀러 가기로 한 약속을 깬 일이 있었어. 그것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친구와 한 달 전부터 잡은 약속이었거든? 내가 내 의사를 표하지 않고, 그것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약속을 어긴 게 살면서 처음이었어. 아니 무슨 대학교 1학년도 아니고 늦잠 자서 여행을 못 갔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이런 일이 왜 하필이면 어제였던 건지 진짜 나한테 화가 잔뜩 났었어.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화가 나. 사실 왜 그랬나 생각해 보면 내가 요새 약간의 스트레스성 반응처럼 "새벽에 5분만 자고 세수해야지" 라며 5분 후로 알람을 맞춰놓고 바닥에 누워있는 습관이 생겼어. 근데 그 상황에서 알람을 못 들어서 5분 후에 못 일어났고, 바닥에서 잤으니 충전을 못해서 배터리가 나갔고, 그렇게 아침에 알람도 못 듣고, 전화도 못 받은 상황이 생긴 거지.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금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이런 나를 알면서도 굳이 컨트롤하려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경향이 있어.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해야 할 것보단 하고 싶은 걸 하고. 안 그래도 최근에 이런 내 충동적인 모습이 싫었는데 그 싫은 모습으로 인해 이런 상상조차 못 한 일이 터지니까 상대한테 미안하기도 말도 안 되게 미안하고 스스로한테도 화가 너무 났던 거지. 미안함, 짜증남, 화남, 자괴감 등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스스로 주체를 못 하고 있던 상태에서 이 편지를 읽게 된 거야. 나 정말 웬만하면 '담에 안 그러면 되지 뭐~'하며 훌훌 잘 털고 나오는 편이거든. 정말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닌데 근 한 달간의 내 모습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


근데 10년 전의 내가, 19살의 내가, 어려움을 겪었다면, 아님 지금 닥쳤다면 잘 헤쳐나갈 거라 믿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하라잖아. 넌 그저 혹시 29살의 내가 취업을 못하고 허덕이고 있진 않을까, 시험을 준비하는 중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보험처럼 써 놓은 문장이었겠지만,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던 건지 정말 신기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런 상황에 놓여있었고 너의 저 한 문장이 환한 대낮에 굳이 땅굴 속에 들어가 있던 나를 다시 땅 위로 끌어올려준 느낌이었어. 정말 너무 큰 위로가 됐다? 그래,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고, 당연히 사람이라면 실수할 수 있고,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딥한 내가 될 수도 있고, 그럼에도 훌훌 털고 원래의 나로 잘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인데 왜 그동안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려 한건지.. 한발 치 물러서 나를 바라보며 애쓰는 나를 토닥토닥 안아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야. 정말 너무 고마워.


저 때부터 저런 생각을 해온 걸 보니 아마도 엄마의 영향을 조금씩 받기 시작했을 무렵인가 봐. 엄마는 여전히 멋진 사람이야. 10년 전이었으면 실험실을 계속 다니고 있었을 시기이겠지? 엄마는 실험실을 그만두고 방통대를 다니면서 심리학 학사를 다시 따더니 요새는 청소년 애기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 지금의 삶을 더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정말 보기 좋아. 진작에 문과를 왔으면 더 잘 살았을 것 같다고 했던 적이 있거든. 당시에 자식들에게만 목매던 다른 엄마들과 엄마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좀 다르다는 걸 조금씩 느껴가던 시기였던 것 같고, 결국 50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이 본인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서 그런가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게 살고 있는 것 같아.


그전부터 이미 이모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엄마는 그런 이모를 꽤나 부러워했던 것 같아. 근데 나랑 남미도 두 달, 동생이랑 유럽도 두 달 다녀오면서 나름 아줌마들 사이에선 꽤나 인싸인 여행자 아줌마가 됐어! 그 때 부터 산티아고도 걷고 싶어 했었는데 아직 거기까진 못 갔어ㅜㅜ 현실적으로 시간을 오래 내기 어렵다 보니 아직은 올레길 정도만 같이 다녀왔네. 그래도 벌써 엄마랑 같이 걸은 코스만 7개나 돼! 최근에 엄마 무릎이 더 안 좋아졌단 이야기를 들어서 엄마 무릎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산티아고를 정말 꼭 같이 가고 싶은데 언제 가면 좋을지 정말 고민이야. 만약 내년에 퇴사를 하게 되면 꼭 같이 가려고!  


네가 적은 말들을 엄마한테 보내줬는데 이렇게 답이 왔어. 엄마는 여전히 너 편이야. 요새 나를 지지해 주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가족의 힘을 정말 많이 느끼고 있어. 물론 여전히 아빠의 말은 나의 가치관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요새는 대화란 게 좀 된다? 내가 워홀을 가니, 대학원을 가니 어쩌니 하면, "그래도 회사에서 해볼 수 있는 건 없을까?"라고 하면서도  "근데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야지 뭐"라고 하시거든. 신기하지? 내가 한두 번 말한 게 아니라 그런가 이제는 좀 받아들이신 것 같아. 어느 날은 아프리카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에 가는 예능을 봤는데, '아 얘도 언젠가 여길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대. 나 진짜 몇 달 전에 다녀왔잖아ㅎㅎ 아무튼 나의 가스라이팅(?)이 먹힌 건지 네가 걱정하던 것보다 아빠도 많이 유해졌고, 열린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 아, 그래도 나도 직장인이다 보니 돈이나 직장생활같이 조금 현실적인 부분에서 가끔 도움을 받기도 해.

아무튼 그땐 가족의 중요성을 잘 몰랐는데 조금 힘든 일이 있어도 이런 나를 멋있어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뒤에서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날 힘이 되더라고.

 

다른 건 몰라도 엄마를 만난 것만큼은 여전히 정말 말도 안 되는 너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전생에 꽤나 좋은 일 하면서 살았었나 봐. 엄마가 아니었음 나도 그냥 흔한 애들처럼 인생에 대한 큰 고민 없이 하라는 대로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이런 평범한 루트를 따르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해.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 삶이 엄청나게 다른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정해진 루트라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이 그 루트 안에 있는 걸 거거든. 결과는 같을지언정 이유와 목적이 다른 거지. 정말 너무 감사하는 부분이야. 내 할 일 하느라 엄마한테 신경을 잘 못썼는데 앞으로는 엄마한테 좀 더 잘해보려고. 사랑한다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리고 네 말대로 39살의 나에게 쓰는 편지도 썼어. 아무래도 39살의 나와 29살의 나는 19살의 나와 29살의 나에 비하면 엄청 큰 변화는 없을 거라 궁금한 게 그렇게 까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편지지를 3장을 썼.. 네?ㅎㅎ;; 아쉽게도 이번엔 누가 보내줄 수는 없으니 늘 편지 보관해 두는 노란 앨범에 넣어두고 2034년 1월 25일 일정에 알림을 등록해 놨어. 10년 후의 감정은 또 어떨지, 여전히 비슷할지, 지금의 나와는 어떤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너무 기대돼.


아무튼 10년 전부터 멋진 생각을 가져줘서 고마워. 덕분에 아직 1년 남았지만 9년 동안의 20대를 내 미래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그 속에서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하고 싶은 것들도 틈틈이 해오며 니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멋지게 살아온 것 같아. 또, 덕분에 39살의 나도 너무 기대가 돼. 그러니 앞으로의 10년도 지금처럼 열심히,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내며 열심히 살아가 볼게. 진심으로 고마웠고, 고맙고, 앞으로도 고맙기를 바라며.


2024년 1월 27일.

2024년의 내가 2014년의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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