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이사
10년 전 제주에서 세 달 살기를 했다. 그때가 바로 짝꿍과 연애를 시작한 지 세 달쯤 되던 시기였다. 매번 연애를 시작하면 세 달 만에 도망가곤 했던 내게 다시 한번 연애를 끝낼 절호의 기회였다. 밤 12시까지 네온사인으로 밝은 서울과 달리 저녁 8시만 돼도 깜깜해지는 제주에서 여자 혼자 산다는 건 생각보다 무섭고 두려울 때가 있었다. 이런 나를 위해 서울에서 제주까지 자주 내려오고, 정성껏 만든 반찬까지 보내주는 짝꿍은 점점 더 내 마음의 지분을 넓혀 갔다. 도망칠 기회라 생각했던 제주살이 3개월로 인해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그리고 2024년 6월. 다시 한번 '제주살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한두 달 만이라도 제주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 생각했는데, 고정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어 아예 내려가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7월 초, 제주로 내려가기 전에 찾아본 집을 두 군데 정도 봤다. 그중 한 곳을 바로 계약했다. 혼자 내려갈 계획이라, 작은 집을 하나 계약하고 올라왔다. 그런데 올라오는 사이 함께 내려가기로 계획을 바꿨다. 둘이 살기엔 집이 너무 작아 계약한 집을 다시 내놓고, 새로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일주일 뒤, 다시 내려간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은 제주스러운 집'을 발견했다. 이미 계약한 집이 나가지 않은 상태라 이번에는 좀 신중하게 계약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 집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여곡절 끝에 먼저 계약한 집의 계약금을 돌려받았고, 마음에 들었던 두 번째 집을 계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주 전 주말에 제주로 이사를 왔다.
재택근무를 하는 짝꿍을 위해 마당이 잘 보이는 거실을 사무실 공간으로 만들었다. 하루 종일 풀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고, 마당 쪽 창문과 마주하고 있는 주방 쪽 문을 열어두면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서울에 있을 때는 자연의 물소리, 새소리 유튜브를 틀어 놓고 일을 하곤 했는데, 제주에 오니 자연의 소리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 정말 좋다.
얼마 전 한 지인을 만났다. 우리가 제주도로 이사 갔다는 얘기를 했더니 이렇게 이야기했다.
"두 분이 제주도와 인연이 깊은가 봐요. 10년 전에도 그렇게 제주도로 왔다 갔다 하더니"
같이 산지 10년째. 연애 초기 제주살이 하던 그 시절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인의 한 마디에 '그랬구나. 제주에 있을 때 정말 자주 왔었지.' 기억이 났다. 3개월 만에 끝날 뻔했던 우리의 인연을 제주라는 공간이 다시 이어주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마당, 풀벌레소리, 바람, 쏟아지는 별이 있는 제주에서의 동거 2회 차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