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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Feb 24. 2021

엄마의 기도

내가 아프다는 걸 알았을 때, 엄마의 하루에 매일 기도가 추가되었다.

올해 내 음력 생일은 영하 9도였다. 엄마는 내 양력 생일과 음력 생일마다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그리고 아침마다 꼭 미역국을 해서 먹인다. 그러면 인복이 좋다나. 이번에는 날도 춥고 코시국이기도 해서 엄마는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단다. 하지만 사람은 15명만 절 안에 들어갈 수 있었고 엄마는 밖에 붙어서 절을 드리다가 쫓겨났다고 한다. 이렇게 추운 날, 그렇게 엄살 많고 약한 사람이, 내 생일 불공을 드린다고 새벽에 일어나서 절에 가서 줄을 섰다.      

내가 아프다는 걸 알았을 때, 엄마의 하루에 매일 기도가 추가되었다. 아빠는 항암치료를 갓 끝내고, 동생은 병원에 다녔지만 차도가 없게 1년을 보내고, 나마저 마음에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엄마는 밤마다 기도를 시작했다. 매일 일기를 쓰고 염주를 세며 기도를 했다. 매일 저녁 한 시간 동안, 그 시간에는 방 안의 엄마를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스물일곱에 처음 내가 회사에 출근했을 때, 어느 부서에 배정될지 매일 걱정하던 때, 하루하루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일에 초조하고 걱정할 때, 우리 엄마는 나보다 열 배는 더 걱정했다. 아빠가 회사에서 온갖 발령과 전출에도 단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다던 엄마였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나보다 더 호들갑이었고, 별일 아닌 일에도 나보다 더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실은 내가 말하는 별 거 아닌 일들보다 그보다 더 큰일이 있다고. 내 인생을 크게 할퀴고 갈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 있다고.     

엄마를 내내 원망했다. 내가 바라던 순간에 엄마는 날 외면해왔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기대하던 엄마라서 더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가 있어. 이렇게 맘이 아픈 나를 봤으면서도 모른 척할 수가 있어. 어떻게 나보다 더 아빠를, 동생을 챙길 수가 있어. 왜 내 맘을 보듬어 주지 않았어. 왜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왜 나를 더 챙겨주지 않았어. 왜 나에 대해 몰랐어. 왜 내가 아픈 걸 몰랐어. 엄마면서, 엄마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내 바랐다. 집안일을 목숨처럼 아는 엄마가 아니라 내 마음을 좀 더 알아주기를. 집에서 따뜻한 밥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는 착한 엄마가 아니라 솔직하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봐주는 엄마이기를. 대신 엄마는 내가 힘든 날이면 김밥을 쌌고,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내 블라우스를 다렸다. 그리고 염주를 꿰며 기도했다. 나는 엄마의 선택이 늘 원망스러웠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나만 홀로 두고 도망간다고 맘속으로 내내 비난해왔다. 하지만 그때 그것이 엄마의 최선이었음을, 그리고 여전히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문득 알아버렸다.

아,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언제나 최선을 택했다는 걸.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어서 박쥐같이 아빠와 내 사이를 오갔던 것도, 묻는 것이 더 상처가 될까 봐 아무것도 묻지 못했던 어떤 일도, 내 미래가 걱정되어 어떤 꿈을 반대했던 일도. 내 마음과 똑같이 엄마의 마음에도 상처로 남아있을 일들에 대해서. 엄마라고 해서 어떻게 모든 걸 알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건, 그때 우리의 모든 선택이 모두 우리의 최선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의 사랑과 기도와 염원과 바람에도, 나의 노력에도, 우리가 함께 포기한 많은 것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불행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삶의 모습을 맞닥뜨렸다는 사실이었다.


몇 번 돌아본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꼬여버린 것만 같은 내 인생을 좀 제자리로 돌릴 수 있을까. 시간을 돌려 좀 더 일찍 병원에 가면 나아질까. 그럼 나는 언제의 나에게 병원에 가라고 말해야 할까. 고등학교 때 처음 아팠을 때? 대학교 때 시간이 많았을 때? 시험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시간을 돌리고 돌려 적당한 때를 고르고 골라도 나는 도저히 나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엄마에게 왜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냐고 원망할 수 없었다. 지금이 아니라 예전의 우리라면 그 사실을 지금보다 더 감당할 수 없었을 테니.     

내내 한결같던 엄마의 기도만큼이나 엄마는 한결같았다. 한 해도 빠짐없이 내 생일 아침마다 미역국과 불공을 빠뜨리지 않았던 것처럼 엄마는 엄마의 방식대로 노력했다. 요즘 엄마의 기도는 어떤 모양일까. 힘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모양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할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다 필요 없고 건강만 해도 좋겠다고 할까. 어떤 모양이든 그 안에 나를 위하는 엄마의 마음이 가득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힘이 많이 들어 잠이 오지 않는 날에 엄마의 염주 팔찌를 차고 자봤다. 처음 차 봤지만 엄마가 몇십 년 동안 쌓아놓은 기도 덕인지 쉽게 잘 수 있었다. 염주를 세면서 잠에 드는데 엄마의 마음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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